‘기생충’의 반지하, 북한에선 어디? –봉준호 감독에게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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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내용]

(김명희) 한국의 반지하를 북한으로 표현하면 ‘땅집’입니다. (전효진) 북한의 반토굴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규민) 북한에서 가장 천민이 사는 곳이 하모니카 땅집이거든요.

(Jeffrey Sosland 어메리칸대학 교수) “Parasite” was a great movie! 북한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재능있고 특출난 사람들의 창작물이 수면위로 떠오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연미. 북한인권운동가) 북한에서 이제 한국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꾸민 이야기라고 못믿겠다고 할 수 있을거예요. 대신 차량으로 가득찬 서울의 대로나 한국의 대표 상점에 진열된 상품들 등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보여주면 북한 주민이 더 놀랄거예요.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4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이번 주는 지난주에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지난 2월 9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LA시에서는 지구촌 최대 영화제인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CUT: 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

(진행자)한국 영화 ‘기생충’이 영화제 최고상인 작품상과 국제영화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으면서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세계적인 화제가 됐습니다. ‘장마당세대’와 함께 아카데미 최고상을 받은 한국영화 ‘기생충’을 살펴봅니다.

(‘기생충’ 첫 장면) (기우) 망했다 이제, 공짜 와이파이 못쓰네. 윗집 아줌마가 아이피 타임 (와이파이 공유기) 암호를 거셨다. 드디어

(진행자) 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면서 영화의 첫 장면인 한국의 '반지하'도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지상층에는 집주인이 살고 지면에 턱걸이 하듯 내걸린 창문 아래부터는 도로보다 낮은 살림공간인 반지하가 있습니다. 한국 빈부격차를 상징합니다.

(진행자) 한국의 ‘반지하’와 같은 처지인 북한의 장소인 어디인지 장마당세대에게 물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 정착한 지 3년 됐다는 새댁 김명희 씨는 한국의 반지하를 북한으로 표현하면 ‘땅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명희) 그렇죠, 저도 장마당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1990년대 초반 생인 20대 후반 나이라서요.

(김명희) 북한에서는 막연한(살길이 막막한) 집들이 많죠. 한국의 반지하와 비슷하게 아파트 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땅집에서 사는 사람’ 이라고 해서 겨울에 땔나무가 없어서 집안에서 아예 동복 다 입고 이불 밑에서 춥게 겨울 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행자) 19살까지 북한에서 살다 한국에 정착한 20대 중반 여대생인 전효진 학생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효진) 남한의 반지하는 북한의 반토굴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 보셨어요?) 내가 살아본 것은 아닌데 흔히 볼 수 있어요. 반토굴이 도시에는 거의 없구요. 주로 시골, 농촌에 있어요. 북한에서는 그 집 담장의 높이를 보면 잘사는 집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 정착한 영화감독 1호 황해북도 봉산 출신 김규민 감독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진행자) 감독님께서 북한에서 같은 주제로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반지하’라는 공간으로 북한의 어떤 장소를 선택하실건가요?

(김규민) 북한에서 가장 천민이 사는 곳이 하모니카 땅집이거든요. 북한과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북한의 부자들은 대부분 평양에 살잖아요, 시골에서도 가장 저렴한 하모니카 땅집에 사는 사람들이 남한의 반지하 집과 같다. 하모니카 땅집이 뭐냐면요, 한지붕 아래 칸만 나눠가지고 주방, 방, 주방, 방 이렇게 되어 있는 집이 4집에서 8집까지 있는 한 채의 집이예요, 가장 일반적인 서민이 사는 집이예요.

(진행자) 북한 주민들이 한국영화 ‘기생충’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를 장마당세대를 통해서 살펴봤는데요, 이 영화를 본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에게도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북한 사회를 생각해 볼 수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워싱턴 디시의 어메리칸 대학교 제프리 소스랜드 (Jeffrey Sosland) 경제학교수입니다.

(Professor Jeffery) 기생충 또한 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측면을 담은 영화였기에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도 한국의 ‘기생충’과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Professor Jeffery) 북한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북한 사회에서도 재능있고 특출난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들의 창작물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폐쇄적인 체제 때문에 영화라는 예술적 창작 영역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신다는거죠?

(Professor Jeffery) 공산주의 체제의 대표격인 구 소련 시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주는 음악과 소설이 억압적인 체제 때문에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북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한국과 미국의 언론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황유진 기자에게도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에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RFA 자유아시아방송에서 한국어 기사를 영어로 번역과 수정, 편집을 담당하는 황 기자는 아버지가 한국인 그리고 어머니가 미국인이고 미국서 나고 자라다가 대학교 때 한국으로 유학간 후 한국에 있는 여러 방송사에서 영어로 방송을 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진행자)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받았을 때 당신의 심정은 어땠나요?

(황유진) 한국에 있을 때 KBS, EBS, TBS, 아리랑 방송국에서 방송을 했었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의 이런 언론사에서 방송을 했다는 것이 이력에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의 영예를 받았을 때 한국영화 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과 문화의 전반적인 위상도 올라갔다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부터 대한민국 언론에서 미국을 알렸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한반도와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으니 저에게도 (‘기생충’의 성공이) 개인적인 승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축하하며 올린 글과 사진을 주한미군에서 2월12일 ‘기생충' 수상이 한미동맹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KatchKapshida(같이갑시다)를 덧붙인 내용을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축하하며 올린 글과 사진을 주한미군에서 2월12일 ‘기생충’ 수상이 한미동맹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KatchKapshida(같이갑시다)를 덧붙인 내용을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진행자) 북한 출신의 김규민 감독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기생충’과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이런 영화를 북한에서 만들 수 있을까요?

(김규민) 저는 No라고 생각합니다.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사회의 ‘치부’가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죠. (16’30”) 북한에서 ‘기생충’과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두번째 이유는 북한은 모든 영화를 만들 때 개인의 창작적 열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예요. 영화는 감독인 제가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만드는 것이잖아요. 그래야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지는거구요.

(진행자)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장식에서 상을 받은 후 소감으로 말한 그런 의미이겠군요. (CUT 봉준호 수상 소감: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김규민) 북한은 그렇지 않고요, 당국이나 독재자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 주민들을 동원해야 된다고 할 때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영화를 제작하거든요, 그러니 애초에 이런 영화가 북한에서는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SIGNAL MUSIC)

(진행자)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 4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