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주재 첫 한인 미국외교관이 꿈이예요”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0-06-2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5월 NCNK가 주최한 화상 회의에 참석한 이규민 회장(맨오른쪽 가운데).
지난 5월 NCNK가 주최한 화상 회의에 참석한 이규민 회장(맨오른쪽 가운데).
/NCNK 화상회의 캡쳐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21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북한 출신 장마당세대에게 통일 후 북한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번엔 미국에서 자란 한인 장마당세대의 통일 후 꿈을 물었습니다.

(진행자)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국제사회의 평화 건설과 유지, 분쟁 방지를 위한 연구 활동이 주목적으로 미국 의회에 의해서 1984년에 출범한 미국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입니다. 한인 2세 청년인 이규민 연구원의 직장이기도 합니다. 대학 때 북한인권동아리 활동이 졸업 후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대학 때 전공이 뭐였죠?

(이규민 연구원) 정치학과였습니다. 예일 대학을 다니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시겠지만 예일대학은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 ‘링크’(LiNK)라고 하는 학내 동아리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2013년에 대학을 입학해서 2018년에 졸업했습니다. 링크 활동을 하면서 예일 대학을 방문한 탈북민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졸업 논문도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정착과 사회통합이 주제였습니다.

(진행자) 이규민 연구원은 예일 대학에 입학한 것은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운명과 같은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예일 대학의 학내 단체인 링크는 2004년에 만들어 졌습니다. 지금은 미국 서부로 본부를 옮겼는데요, 해나 송 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소개한 링크입니다.

(Hannah Song) 해마다 열리는 미주한인학생총회 (KASCON)가 2004년 예일대에서 열렸을 때 주제가 ‘북한’이었습니다. 막 미국으로 돌아온 짐 버터워스 씨가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그린 기록영화 ‘서울 트레인’의 동영상을 보여주었고, 북한에 살고 있던 삼촌 일가 7명을 탈출시킨 재미 한인작가 이혜리 씨의 증언을 듣고, 참석했던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든 단체가 링크입니다. 지금은 캐나다, 이탈리아, 한국, 영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 165개 이상의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 커다란 단체로 자랐습니다. ‘북한 자유’를 위한 깃발 아래, 모두가 뭉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진행자) 처음에는 소규모의 재미한인 대학생 인권단체로 시작한 링크. 이제는 한인을 넘어서 백인과 흑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함께하게 됐고 학생 뿐만 아니라 직장인까지 포함해 30대부터 70대까지 폭넓게 참여하며 역동적인 인권옹호단체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이규민) 대학교 때 저보다 나이가 어린 탈북자들을 많이 만나봤는데요. 자유를 찾기 위해서 가족을 떠나서 중국을 건너서 동남아 여러 국가를 거친 후 남한이나 미국에 정착했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북한 인권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규민) 동기생들 보다 1년 늦게 졸업한 이유도 중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1년 했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를 돕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한국의 비정부단체가 주선으로 탈북자들 위해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을 했습니다.

(진행자) 중국 공부할 때 탈북민이나 북한 유학생과 교류하기도 했나요?

(이규민) 중국에서 탈북민들은 못 만났고요, 하얼빈에서 공부할 때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유학 온 북한 대학생들을 본적은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 대학생들과 관련한 기억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이규민) 아시다시피 북한에서 온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지내잖아요? 교실, 복도에서 스치듯 보고 탁구 한 번 정도 친적이 있는 정도입니다. 북한 유학생들이 워낙 폐쇄적으로 지내서 그들과 친교를 쌓기는 어려웠습니다. 예일 대학에서는 오로지 북한인권이라는 부분만 관심이 집중했었는데요, 중국에서도 공부하고 일본에서도 연구를 계속하면서 북한 사회를 더 깊이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워싱턴 디시에서 본격적으로 북한을 연구하면서 북한은 단순한 사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행자) 남북한이 통일이 돼서 북한에 가게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이규민) 제가 정말 자주 생각하는 환상이나 꿈이 있는데요, 만약 통일이 되고 북한이 열리면 저도 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통일된 사회의 통합을 돕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 남한,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텐데요, 모든 나라에서 공부해본 경험과 언어를 할 수 있는 장점을 발휘해서 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북한과 한국,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개선시키고 이해를 돕기 위해 역할을 하고 싶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일까요?

(이규민) 외교관이라든지 민간인으로서 비정부단체 민간구호단체 요원으로 분쟁해결,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이규민 연구원은 지난 5월 미국의 민간단체 전미북한위원회(NCNK)을 통해 공개한 한인 이산가족 관련 보고서에서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이 북한의 가족을 다시 만나는 문제가 미북 간 정치, 외교 사안에 가려져선 안된다고 지적하면서 미국 정치인들과 행정부가 이산가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규민 연구원은 한국에 정착한 3만 1천 여명의 탈북민과 다른 나라에 정착한 수 만 탈북민들도 북한에 가족이 있는 이산가족이라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인권 문제를 계속 연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SIGNAL MUSIC)

(진행자)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21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