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0주년 북·해외 장마당세대 온라인 토론③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0.08.10
ethiophia_korea_village_b 에티오피아 코리안 빌리지 안내 간판이 마을 한구석에 쓰러져 있다. 이 마을은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고국에 돌아온 뒤 정착해 살면서 형성됐다.
/연합뉴스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28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에서 성장한 후 해외에 정착한 청년들 그리고 북한에서 태어난 후 한국을 새 삶터로 선택한 장마당세대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한국전쟁을 어떻게 배웠고 70년이 지난 오늘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나눴습니다.

(진행자) 독일, 미얀마, 카자흐스탄, 탄자니아, 미국, 한국에 살고 있는 20대부터 40대까지인 장마당세대 대화 중 주요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 카자흐스탄, 미얀마, 독일, 미국의 한인 장마당세대가 전하는 현지인들이 보는 한국전쟁의 의미

(진행자)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70년이 지났습니다. 각자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고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소개해 주시죠.

(이재욱/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등 중앙아시아 거주는 20년됐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자랐고, 대학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다녔습니다.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한 정책과 교육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예전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어떤 외교적 성과를 올렸는지, 얄타협상까지 각 나라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소련의 입장에서 배웠습니다. 러시아에서 저는 외교문제 전문대학인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대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당시 교수님들 중에는 외교관으로 활동하셨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수업시간에 한국전쟁 및 냉전시대의 외교활동 및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준 기억도 있는데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과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과 북한은 서로 적대하고 싸우고 있는 당사자 들이고 러시아와 미국은 그들을 코치하는 형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서로에게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이 남아있는 한국과 북한과는 달리 상당히 객관적이고 건조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한국전쟁은 그들에게 이미 지나가버린 미-소 냉전시대의 주요 사건 중 하나로 생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왠지 이제껏 감정을 소비해온 우리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리 했나 하는 허무한 느낌도 있었어요.

(이재욱/카자흐스탄) 러시아에서 학교 다닐 때 북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 외교관 자녀들이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한국전쟁이나 다른 한국과 북한 관계 등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해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한 번도 대화를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이 많이 삽니다. 이곳에서 고려인들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의 고향은 북한으로 대답합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언젠가 남북이 통일되어서 자신들의 고향인 북한과 현재 교류 많은 한국이 함께 잘 살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남북 통일의 기대가 큽니다.

(최재희/미얀마) 안녕하세요, 저는 미얀마 양곤대학 최초의 한국인 박사 과정에 있는 최재희라고 합니다. 이번 온라인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반공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세대부터 통일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은 세대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세대간 다른 교육 받으며 생각도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일관되게 교육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미얀마는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과 같이 한국과 북한과의 아픈 역사가 있는 나라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되게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영화를 아주 많이 봅니다. 그 중에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본 미얀마 친구들은 한민족인 남북이 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북은 왜 과거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느냐 라는 미얀마 친구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그냥 할 말이 없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그 순간을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얀마은 우리와는 달리 135개 소수민족이 있지만 소수 민족 간의 평화를 위해 매년 3-4번씩 소수민족의 대표들과 미얀마 정치 지도자가 만나는 <판롱회의>라는 정치행사를 진행합니다. 우리나라도 어떠한 결과가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자주하고 남북 민간교류도 많아 지기를 희망합니다.

(윤희진/하와이) 하와이는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인구대비 한국전쟁에서의 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이번에 제가 소속된 하와이 평통협의회에서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서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선물상자’를 전달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한국 전통술과 마스크, 기념품 등을 넣어서 참전용사 할아버지들께 전해드렸습니다. 대부분이 아흔이 넘는 고령이셨는데, 할아버지들이 기억하는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면서 세계 1등 국가가 된 한국을 보면 감격스럽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습니다.

(김익재/독일)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인 김익재입니다. 독일은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고 이후 의료지원으로 부산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한독기술학교’를 세우는 등 한국전쟁 이후 한국 국민들에게 교육 지원을 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접근을 통한 변화’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동독과 서독이 분단 이후 경제적으로 계속 교류하면서 가까웠고 대결보다는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결국 통일로 이어졌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한반도를 자신들과 비슷한 분단국가라는 특성을 가진 곳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미북회담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했고 계속해서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태균/아프리카 탄자니아) 아프리카에서 인도주의 지원단체를 세워서 운영하고 있는 김태균입니다. 여러분들은 커피의 본고장 에티오피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코리아 빌리지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이름은 ‘코리아 빌리지’이지만 한국인들이 살지 않는 곳,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빈민촌인 이 코리아 빌리지는 바로 한국 전쟁과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전투병력을 파견한 아프리카 유일의 나라입니다.

한국전쟁에 전투병력을 파견했던 아프리카의 유일한 나라, 에티오피아 – 코리아 빌리지를 아십니까?

에티오피아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의 주도하에 황제의 친위대를 포함하여 6천037명이 대한민국에 파견합니다. 황제 직속의 제1근위 사단이었습니다. 2차대전을 겪었던 에티오피아 전투부대 중에서도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황제는 한국전 파병부대에 각뉴부대Kagnew라는 칭호를 내립니다.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라” “적을 초전박살하라”는 뜻입니다. 공산 집단의 침략을 격파하고 혼돈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하라는 황제의 명령입니다. 또한 황제는 부대에 명령을 내립니다 “이길 때 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이들을 실제로 절대 충성을 맹세했고 한국전쟁에서 단한번의 패배도 단한번의 항복도 하지 않았습니다. 238번의 전투를 치렀고, 교전 때마다 승리했다. 6천037명의 파견되어 전사자 121명이 전사 536명의 부상자가 있었지만 모두 승리했습니다. 강뉴부대는 전투에만 공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월급의 일부를 모아 ‘보화 보육원’이라는 고아원을 만들어서 1956년까지 전쟁고아들을 보살폈습니다. 휴전 후에도 평화유지와 재건이라는 목적으로 한국에 남아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에티오피아에 극심한 가뭄이 들고 1974년 쿠테타가 발생하면서 에티오피아는 공산 정권이 들어섭니다.

새로 들어선 공산 정권하에서 황제는 죽고 강뉴부대 참전용사들은 숙청의 대상이 됩니다. 몰락한 에티오피아 황제의 직속부대였으며 동시에 한국전쟁에서 공산군과 싸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재산과 지위를 다 빼앗기고, 그들을 강제로 빈민촌에 모여 살게 만듭니다. 그 빈민촌의 이름이 바로 코리아 빌리지입니다. 2019년 초에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 생존자는 153명이었고, 지금은 몇 분 남아계시지 않습니다.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에는 2006년 2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내어 준 에티오피아 제국의 군인들에게 감사한다."라고 쓰인 참전 기념탑이 세워졌습니다.

* 한국전쟁참전용사- 쉬퍼로우 게브레 볼드: “내 비록 온 몸에 총탄이 박히고 팔다리를 잃었지만 한반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자부심으로 한 평생 살았습니다. 가난이 대물림 되서 자식 교육도 못 시키고 있지만 한국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믓합니다.”

* 한국전쟁참전용사- 테레다 메르샤 : “한국이 잘 살게 됐다니 내가 더 고맙습니다 우리는 한국을 제 2의 고향이라 부릅니다”

(SIGNAL MUSIC)

(진행자) 남북한 청년들이 과거 배웠던 한국전쟁, 그리고 지금 이해하는 한국전쟁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28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