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 학생들이 절대 웃으면 안되는 날은?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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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안되는 인터넷실’ 김일성 대학 외국인학생을 위한 인터넷 실이지만 인터넷 연결은 되지 않았다.
‘인터넷 안되는 인터넷실’ 김일성 대학 외국인학생을 위한 인터넷 실이지만 인터넷 연결은 되지 않았다.
/한 알렉산더 페이스북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33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최고 명문대학인 김일성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러시아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고려인인 한 알렉산더 학생은 2년 전 김일성종합대학에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여름학기를 수강했습니다.

(진행자) 알렉산더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전화기를 사용했나요?

(알렉산더) 인터넷을 못 썼기 때문에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진행자) 그럼 북한에 있는 동안 외부로 전화나 이메일, 인터넷 검색 이런 것을 전혀 못했어요?

(알렉산더) 평양에는 러시아 대사관이 있어요. 우리는 가끔 대사관을 가서 인터넷을 이용했어요, SNS로 부모님께 메시지를 보냈어요. 사실 (러시아) 대학교에서 온 다른 친구들은 북한에서 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SIM 카드를 사서 쓰는 걸 봤어요, 국제전화 연결도 가능했어요, 부모님께도 전화하는 걸 봤어요.

(진행자) 평양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보냈나요?

(알렉산더) 먼저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한국어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기숙사에 와서 점심을 먹고 평양을 구경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호주에서 유학 온 대학생과 가까웠는데, 이 학생과 평양 구경했어요, 그 호주 친구는 여행업을 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평양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유럽이나 호주나 미국에서 북한을 관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관광객이 북한에 도착하면 여행 안내를 했습니다. 통일투어라는 여행사였습니다.

(진행자) 저녁이나 밤엔 어떻게 지냈어요?

(알렉산더) 저녁에는 기숙사로 돌아와서 숙제를 한 후 파티를 했어요, 러시아 학생들은 다른 외국학생들 보다 파티를 좋아하기 때문이예요. 다른 캐나다 동포와 호주 친구, 라오스에서 온 대학생과 도타(DOTA)라는 컴퓨터 전략게임을 자주 했어요.

(진행자) 북한학생을 파티에 초청할 수 있었나요?

(알렉산더) 북한 학생을 초대했는데, “네,네” 라고 대답은 했지만 파티에 오지는 않았어요.

(진행자) 북한 친구와 친해진 친구는 없었나요?

(알렉산더) 호주 대학생과 함께 사는 북한 학생과 친했는데, 저에게 러시아 생활은 어떤지 같은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평양 어디에서 사는지 질문했는데 그 학생은 부모님과 평양 보통강 근처에서 살았다가 돈을 벌고 다른 직업을 얻은 후에 평양 여명 거리로 이사 갔다고 했어요.

(진행자) 북한 학생들에게 김일성 대학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나요?

(알렉산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5년 동안 갔다 온 후 통역가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영어를 잘했고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진행자) 그 북한 학생이 당시 몇 살이었어요?

(알렉산더) 25살이었고 저는21살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친해지지는 못했어요, 3주라는 짧은 기간이었고, 그 북한 친구는 대부분 시간을 호주 학생과 지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가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알렉산더) 제가 주로 질문을 했는데, 평양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북한에는 추석, 설날 말고 어떤 명절이 있냐 등의 질문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을 기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연수 기간 중에 김일성이 사망한 날(1994년 7월8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제가 재밌는 농담을 했는데 북한 대학생은 웃지 않았습니다. 그 학생은 오늘은 김일성 주석이 돌아가신 날이어서 웃으면 안된다고 대답했습니다. 학생들은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학생들, 교수들은 그날 김일성 동상에 가서 절을 했어요. 꽃을 놓고 그 다음에는 공부하러 캠퍼스에 갔어요.

(알렉산더) 또 하나 기억에 나는 일은 평양 거리를 다닐 때 평양 주민들이 제게 말을 자주 걸어왔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공식적인 옷(교복) 입고 평양을 구경했는데 거리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왜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가슴에 달지 않고 돌아다니느냐” 라고 자주 물어봤습니다. 나는 해외에서 온 외국 대학생이라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여러 번 물어봤어요. 외국 유학생들이 다른 (관광)외국인들 보다. 평양을 더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SIGNAL MUSIC)

(진행자) 모스크바에서 한반도를 전공하는 고려인 대학생의 김일성 대학 유학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 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33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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