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쎈언니들이 얘기하는 ‘북한 그리고 나’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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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쎈언니들이 얘기하는 ‘북한 그리고 나’
/RFA Photo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45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미국에서 똑소리 나게 살고 있는 네 명의 한인 청년 여성과 미국 생활 6년 째인 청진 출신 에블린 씨의 유쾌하면서 진지했던 통일수다 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진행자) 아르헨티나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황지영 씨는 미국에서 살았던 다른 분들과는 경험의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남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황지영) 제가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나이 계산하지 마시고요, 제가 88올림픽 때 몇 달 전에 아르헨티나로 갔어요, 그 당시에 외갓집이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800킬로미터 (1천5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사셨어요. 거기로 갔는데 제가 스패인어 한 마디도 못하고 금요일인가, 토요일인가 도착하고 월요일에 학교로 갔어요. 스패인어 한 마디로 못하는데 거기서 막 이렇게 아이들이 굉장히 궁금해하고 저희 사촌동생이 있어서 동양인들이 새롭지는 않지만 저는 새로 온 사람이니까 아이들이 관심이 많았고, 근데 애들이 저한테 88올림픽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는데 저는 그 가사를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흥얼대면서 제가 가사를 지어내서 불러주면 애들이 막 박수치고 그랬거든요, 왜 그랬는 모르겠지만 이사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서른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저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중국사람이었어요, 치나로 불렸구요, 조금 더 아는 채 하는 사람에게는 ‘핫보네사’ 그게 일본사람, 근데 이렇게 한국 얘기하면 한국이 어딘지 모르고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양인과 접촉해본 사람이 얼마 없었으니까 그냥 중국으로 시작하고 그냥 동양인으로 끝났는데, 제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사 갔을 때는 제 정체성이 혼돈됐어요, 그 당시 3만 2천 명 정도 한국 사람들 끼리 충돌이 있었어요. 한인 자체가 이슈였는데 더 커서 대학교 다니고 직장생활하면서 한반도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을 만나면 “너는 한국 사람이라며? 북한에서 왔어, 남한에서 왔어?”그러면 저는 거기서 생활한 경험이 있으니 중국사람이라고 부르면 반응을 할 수 있잖아요, 인종차별 같은거, 상대방이 장악하려고 하면 제가 대처하려고 하면 “그렇게 한반도를 잘 안다면서 북한 사람들이 해외로 못 나온다는 것을 모르니?”하고 쏘아 붙이면서 끝냈거든요, 거기서 대화가 끝났어요, 제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보니가 이게 굉장히 어리석은 방식이구나, 내가 그 사람의 입을 막는게 아니라 대화를 했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진행자) 미국에 정착한 남한과 북한 출신 장마당세대 여성들의 <북한 그리고 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미국 지방정부 공무원인 박유정 씨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정치 참여 운동에서부터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행동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미국에서 살면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박유정) 대학교 때 즈음에 아무래도 사회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보니까 탈북자분들이 쓴 증언집들이 비공식(un-official)으로 만들어진 게 학생들 사이에 퍼졌어요. 그래서 그것을 읽었을 때 북한의 심각한 인권 실상을 조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글이라는 것‘을 읽고 책을 덮었어요. 너무 마음이 어려워서, 그래서 대학교 때 ‘인권 문제를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할 때쯤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연설을 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교류에서) 안보 쪽으로 돌았고 그때 북한이 언급될 때는 북한이 안 좋은 쪽으로 비춰지면서 또다른 반공교육이 미국에서 이루어졌었기 때문에 조금 혼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진행자) 직업상 미국 정치인도 많이 만날테고, 한반도 문제에 관심 많은 미국인들과도 대화를 많이 할텐데요. 현장에서 느끼는 미국인과 미국 정치인의 북한관은 어떻습니까?

(박유정) “남북한이 다르다”는 정도는 미국인들이 아는 시절에 미국에 이민 왔지만, 북한의 여러 부분을 설명해야 하는 부분은 있었던 것 같아요. 북한에 이런 문제가 있고 국제사회는 이런 책임을 져야되고 이런 얘기를 제가 다 알지 못해도 (주변 미국인들에게) 했어야 했고 그런 지식을 얻고자 책이나 학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굉장히 많이 나눠져 있더라구요, 그래서 여러가지를 읽어볼 수 있었 것은 장점이었지만 조금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어느 학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른 학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게 정권이 바뀌면 한국처럼 뭐가 바뀌고 그래서,,계속 어떻게 보면 더 어려웠기 때문에 계속 발을 들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는 정치참여나 시민참여 운동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정치인들을 만나면 연방 정치인들에게는 이게 국제외교 그리고 안보문제가 논의될 때 한국 문제가 언급되어지고 그리고 또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오래했던 유태인협회, 이런 분들하고 얘기할 때는 우리보다 더 앞서서 전문가들과 전문기관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면서 세계가 그런 방향으로는 가고 있는 거구나. 그런 상황에서 제 역할은 시민으로서 든 어떤 활동가로서 든 작은 일에서부터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구요.

(진행자) 청진 출신의 에블린 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10대 소녀가 혼자서 미국까지 오게된 특별한 사연을 소개해 주세요.

(에블린) 저는 북한에서 저희 어머니와 함께 탈북했어요, 눈이 펑펑오고 강이 얼어 있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지키는) 군인에게 엄마가 몇 백 달러를 쥐어주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 “이 아이는 중국에 잠깐 구경하고 올거다”라면서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떠나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고 국경을 건넜어요. 강이 얼어서 그 위로 눈이 펑펑오는데 그 군인이 경계서고 있는 지역에서 국경을 넘었죠, 국경의 철조망을 넘을 때 장갑도 찢어지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는 별로 무섭지 않았어요, 저희 어머니는 오히려 북한의 감옥 경험이 있어서 나보다 더 무서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감옥 가본적도 없고, 공개처형 장면도 본 적 있어요, 어린 마음이니까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에) 오히려 흥분했어요. 중국으로 넘어와서 엄마와 일주일 정도 있다가 제가 먼저 떠나게 됐어요, 저희 어머니는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어서 중국에서 사업을 마무리해야해서 중국에 남아야 했고 저는 어린 나이라서 한 시라도 빨리 중국을 떠나야 했거든요. <계속>

(SIGNAL MUSIC)

(진행자)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제45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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