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황당한 ‘월미도 방어’ 주장
20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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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뒤집어보는 ‘북한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최민석 입니다. 오늘도 정영기자와 함께 합니다. 정영기자,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영: 지난 7월 27일부터 한국에서는 전쟁첩보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됐습니다. 6.25전쟁시기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낙동강까지 밀렸던 유엔군이 전세를 뒤바꾼 가장 성공적인 작전으로 알려진 인천상륙작전을 옮긴 영화인데요. 이 영화를 두고 북한 대남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력사적 사실을 날조한 영화”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맥아더 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매체가 맥아더 장군의 이런 말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데요.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북한에서 배워주는 ‘인천상륙작전’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최민석: 예, 세계 전쟁사가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을 북한만이 ‘실패한 작전’이라고 주장하고 있군요. 정영기자, 먼저 북한 매체의 내용부터 알아보실까요?
정영: 북한 대남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7월 30일 “아큐식 사고방식의 극치 -《잊혀진 승리》놀음”이라는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한국에서 ‘인천상륙작전’ 영화가 개봉된 지 사흘 만에 나온 공식 반응인데요.
중국의 작가 노신이 1921년에 쓴 ‘아큐정전’에서 나오는 주인공 바보 아큐처럼 어리석다고 세상 사람들을 비난한 겁니다.
최민석: 청취자 여러분들도 아큐정전이란 소설을 아실 겁니다. 세상 사람들을 아큐처럼 어리석은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군요.
정영: 네, 한국에서는 지난 27일 첩보전쟁영화 ‘인천상륙작전’를 개봉했지요. 이 영화에는 미국 할리우두의 유명 배우 리암 니슨, 한국의 인기 배우 이정제, 김범수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최민석 기자도 보려고 합니까?
최민석: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만, 미국에서 개봉되면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정영: 저도 보려고 합니다. 현재 인터넷에 인천상륙작전 예고편이 나와 있는데요, 잠깐 녹음을 좀 듣고 이 영화 소개를 하시죠.
<영화 인천상륙작전 녹취>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발발. 한달 만에 영토의 대부분 점령당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단번에 전세를 뒤집었던 단 하나의 작전!
이 영화는 6.25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유엔군이 낙동강 계선까지 밀렸을 때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해서 전세를 확 바꾼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국 해군첩보부대 군인들이 활약을 했었는데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해군 첩보부대 군인들이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기뢰 지도 등 정보를 빼내기 위해 적후에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당시 작전을 수행했던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데요. 올해 88세의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입니다.
이들은 월미도와 인천에 잠입해 북한 해안포대의 위치와 규모를 수집했는데,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당초 인천상륙작전은 성공 확률이 5천대 1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민석: 왜 그렇게 성공확률이 낮았지요?
정영: 거기는 바다의 간조와 만조차가 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천으로 상륙하려면 세 날짜를 택해야 했다고 합니다. 9월 15일, 10월 11일, 11월 3일이 적합했다고 합니다.
최민석: 그리고 시간 제한도 있지요.
정영: 맞습니다. 상륙날짜로부터 2~3일 동안 마무리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배를 끌고 들어가다가 3일이 지나 물이 찌면 큰 군함이 서해바다 갯벌에 박히게 됩니다.
최민석: 좌초가 되지요. 빼낼 방법이 없게 됩니다. 북한 말대로 월미도를 3일동안 지켰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할 수 없게 됐겠지요.
정영: 그래서 미합동참모본부와 해군 해병대도 인천상륙작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성공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미 합동참모본부에서도 해군참모총장을 파견하면서까지 맥아더에게 상륙지점을 다른 곳으로 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상륙작전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군뿐만 아니라 인민군도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곳을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상륙작전을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이에 관한 녹음도 잠시 들어보시죠.
<인천상륙작전 예고편 녹취>: 인천행을 위해 맥아더는 대북첩보전을 지시하니, 그 작전의 이면에는 북한군으로 가장한 해군첩보대가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1950년 9월 15일 시작되었는데요, 맥아더 장군은 7만 5천여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을 투입했습니다. 결과 작전개시 보름 만에 38선을 완전 가로지르면서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민석: 이 작전이 세계 전쟁사상 두 번째로 큰 상륙작전이지요. 첫 번째는 2차 세계대전시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고, 두 번째는 인천상륙작전입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정영: 북한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월미도를 떠올립니다. 월미도란 북한 영화가 있습니다. 1983년도인가 ‘월미도’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영화 내용은 리대훈이라는 해안포 중대장이 단 4문의 포로 맥아더의 5만 대군과 맞서 월미도를 3일동안 방어했다는 겁니다.
최민석: 완전 개 뻥이네요.
정영: 북한 대남웹사이트도 이번에 어떻게 주장했냐 면요.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최민석: 북한이 말하는 것은 하도 거짓말을 많아서요. 이런 것은 놀라지도 않습니다. 언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실패한 작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정영: 근거 없는 말입니다. 세계 전쟁사가 인정하는 승리인데 맥아더 장군이 말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북한이 월미도를 3일 동안 고수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의 자료를 보니까, “제1단계로 9월 15일 오전 6시 한미 해병대는 월미도에 상륙하기 시작하여 작전개시 2시간만에 점령을 끝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최민석: 제가 알기로는 한미 해병대가 월미도에 상륙할 때 본격적인 전투가 없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북한군이 쓸려나갔고, 대부분 포로가 되었습니다.
정영: 그런데 북한 월미도 영화를 보면요. 북한 해안포 중대원들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결사전을 벌이다가 모두 희생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실제로 돌아오면요. 인천에도 미군이 쉽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인천에는 인민군 약 2천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미군과 한국군이 쉽게 쭉 밀고 들어가서 9월 29일에는 서울을 수복했고, 작전개시 2주만에 38선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전선과 후방이 잘리게 되었고, 낙동강계선까지 나갔던 인민군 약 10만명이 완전 포위 속에 들었습니다.
여기서 도주한 인민군은 3만명도 안됐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영웅으로 알려진 최현, 그러니까 현재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아버지인 최현도 군단을 이끌고 낙동강까지 내려갔다가 포위되어 태백산맥을 타고 후퇴했습니다. 그러다가 김일성이 “제2전선을 펴라”는 지시를 받고 패잔병들을 이끌고 산속에서 숨어살게 되었습니다.
최민석: 그게 한국에서 유명한 빨치산이지요. 그렇습니다. 북한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인천상륙작전’을 자기들이 승리한 작전이라고 주민들에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인천상륙작전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게 될 것입니다. 정영기자, 수고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