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위기의 ‘조총련 구하기’ 안간힘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0.04.23
2010.04.23
MC: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한때 북한의 거대 해외조직으로 명성이 높았던 조총련이 와해상태에 빠지자, 북한과 총련은 '동포 되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진행에 정영기자입니다.
요즘 나날이 줄어드는 조총련계 한인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과 총련 지도부가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조직을 탈퇴하는 사람들과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련 지도부가 ‘동포 되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21일 전했습니다. 이 매체는 지난 21일부터 총련을 살리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지도부가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연속기획물 ‘승리와 단결, 투쟁과 전진의 3년’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 신문은 2007년 5월 총련 제21차 전체 대회에서 제시한 ‘동포 되찾기 운동’이 벌어진 결과 많은 성과와 경험을 얻었다면서 2012년까지 총련을 '원점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북한에 보조를 맞춰 총련도 반세기 전 총련이 결성되던 수준만큼 동포들을 규합하겠다는 것입니다.
외부 소식에 어두운 북한 주민들은 현재 조총련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지금 조총련은 70~80년대 잘 나가던 그런 총련이 아닙니다. 기존 회원수는 자꾸 줄어들고, 2세대 총련계 자녀들 가운데는 한국대학을 가고, 한국에 투자를 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총련은 1955년 5월 25일 도쿄의 한 가운데서 북한의 지도아래 결성됐습니다. 결성당시 조총련 회원은 47만 명에 달했고, 총련 중앙 조직 아래에 48개 지방본부와 260여개의 지부, 그리고 1천300여개의 분회 등을 둔 대규모 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공안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조총련의 수는 1997년에 19만 9천명, 2009년에는 9만 명 선으로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조총련 세력이 이처럼 작아지는 이유는 90년대 초에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미련을 버린 일부 사람들이 떠나간 데도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시인하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2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은 북일 수교협상을 위해 평양에 간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시인했습니다. 당시 이 회담에 참가했던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납치문제를 인정하는 순간,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 했다고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통 큰 지도자'답게 납치문제를 시인했지만, 그로부터 확산될 일본 사람들의 반북 감정을 계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일본은 북한에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 등 일본인에 대한 생사확인과 송환을 요구하며 공방을 벌였고, 일본 내에서는 북한에 추종하는 조총련에 대한 나쁜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조총련이 급격히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핵개발에 엄청난 돈을 퍼부으면서도 자기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김정일 위원장이 또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는데 대해 대부분 총련 사람들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총련의 고위 간부들조차 사석에서 북한을 비판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심하게 욕하는 것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매해 총련에 요구하는 돈도 문제입니다. 90년대 초까지 총련은 매년 수 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북한에 보냈습니다. 북한에 가족, 친척들을 보낸 조총련계 상공인들은 북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국 헌금’과 기업이득금, 무역거래 대금 등으로 모은 돈을 보냈습니다. 어떤 상공인은 도쿄 시내의 금싸라기 같은 건물까지 팔아가면서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1959년 ‘만경봉’호에 가족 친척들을 실어 북한에 보낸 총련 상공인들은 북한의 요구가 커질수록, 왜 재일교포 북송 사업이 진행됐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유지되던 조총련이 지금은 와해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심지어 조총련 간부들까지 한국과 교류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조선일보’가 보도한 데 따르면 현직 조총련 부의장인 양수종(73)씨의 손녀는 한국에 있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는가 하면, 또 어느 총련 고위 간부의 딸은 한국인에게 시집가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과 쌍벽을 이루면서 앞으로 한국과 교류를 위해서는 2세나 손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 북한에 합영 합작 형식으로 투자했다가 거금을 날린 조총련 상공인들은 “북한은 투자대상이 아니라 투자 고려대상”이라고 저울질 하며 최근에는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어느 한 총련의 사업가는 인천에 세워진 경제자유구역내에 5억 달러를 투자하고 그 관리를 위해 아들을 한국에 보내 국적을 취득시켰습니다. 북한에는 돈을 거저 주면 줬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투자할 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총련 2세들도 이제는 이념에 젖어 총련계다, 민단계다 하면서 경쟁할 것이 아니라 세계화된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식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북송된 가족, 친척들 때문에 북한당국의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세대들은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는 의식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총련 2세들의 눈에는 한국이 더 이상 군사독재 국가로 보이는 게 아니라 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한 성공한 민주국가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멀어지는 조총련 민심을 잡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총련조직을 재건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노동당과 총련 지도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로 증폭되는 북한에 대한 회의감,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총련의 민심을 과연 북한 지도부가 다시 붙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진행에 정영기자입니다.
요즘 나날이 줄어드는 조총련계 한인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과 총련 지도부가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조직을 탈퇴하는 사람들과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련 지도부가 ‘동포 되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21일 전했습니다. 이 매체는 지난 21일부터 총련을 살리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지도부가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연속기획물 ‘승리와 단결, 투쟁과 전진의 3년’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 신문은 2007년 5월 총련 제21차 전체 대회에서 제시한 ‘동포 되찾기 운동’이 벌어진 결과 많은 성과와 경험을 얻었다면서 2012년까지 총련을 '원점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북한에 보조를 맞춰 총련도 반세기 전 총련이 결성되던 수준만큼 동포들을 규합하겠다는 것입니다.
외부 소식에 어두운 북한 주민들은 현재 조총련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잘 모르겠지만, 지금 조총련은 70~80년대 잘 나가던 그런 총련이 아닙니다. 기존 회원수는 자꾸 줄어들고, 2세대 총련계 자녀들 가운데는 한국대학을 가고, 한국에 투자를 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총련은 1955년 5월 25일 도쿄의 한 가운데서 북한의 지도아래 결성됐습니다. 결성당시 조총련 회원은 47만 명에 달했고, 총련 중앙 조직 아래에 48개 지방본부와 260여개의 지부, 그리고 1천300여개의 분회 등을 둔 대규모 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공안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조총련의 수는 1997년에 19만 9천명, 2009년에는 9만 명 선으로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조총련 세력이 이처럼 작아지는 이유는 90년대 초에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미련을 버린 일부 사람들이 떠나간 데도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시인하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2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은 북일 수교협상을 위해 평양에 간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시인했습니다. 당시 이 회담에 참가했던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납치문제를 인정하는 순간,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 했다고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통 큰 지도자'답게 납치문제를 시인했지만, 그로부터 확산될 일본 사람들의 반북 감정을 계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일본은 북한에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 등 일본인에 대한 생사확인과 송환을 요구하며 공방을 벌였고, 일본 내에서는 북한에 추종하는 조총련에 대한 나쁜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조총련이 급격히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핵개발에 엄청난 돈을 퍼부으면서도 자기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김정일 위원장이 또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는데 대해 대부분 총련 사람들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총련의 고위 간부들조차 사석에서 북한을 비판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심하게 욕하는 것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매해 총련에 요구하는 돈도 문제입니다. 90년대 초까지 총련은 매년 수 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북한에 보냈습니다. 북한에 가족, 친척들을 보낸 조총련계 상공인들은 북한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국 헌금’과 기업이득금, 무역거래 대금 등으로 모은 돈을 보냈습니다. 어떤 상공인은 도쿄 시내의 금싸라기 같은 건물까지 팔아가면서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1959년 ‘만경봉’호에 가족 친척들을 실어 북한에 보낸 총련 상공인들은 북한의 요구가 커질수록, 왜 재일교포 북송 사업이 진행됐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유지되던 조총련이 지금은 와해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심지어 조총련 간부들까지 한국과 교류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조선일보’가 보도한 데 따르면 현직 조총련 부의장인 양수종(73)씨의 손녀는 한국에 있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는가 하면, 또 어느 총련 고위 간부의 딸은 한국인에게 시집가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과 쌍벽을 이루면서 앞으로 한국과 교류를 위해서는 2세나 손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 북한에 합영 합작 형식으로 투자했다가 거금을 날린 조총련 상공인들은 “북한은 투자대상이 아니라 투자 고려대상”이라고 저울질 하며 최근에는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어느 한 총련의 사업가는 인천에 세워진 경제자유구역내에 5억 달러를 투자하고 그 관리를 위해 아들을 한국에 보내 국적을 취득시켰습니다. 북한에는 돈을 거저 주면 줬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투자할 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총련 2세들도 이제는 이념에 젖어 총련계다, 민단계다 하면서 경쟁할 것이 아니라 세계화된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식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북송된 가족, 친척들 때문에 북한당국의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세대들은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는 의식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총련 2세들의 눈에는 한국이 더 이상 군사독재 국가로 보이는 게 아니라 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한 성공한 민주국가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멀어지는 조총련 민심을 잡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총련조직을 재건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노동당과 총련 지도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날로 증폭되는 북한에 대한 회의감,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총련의 민심을 과연 북한 지도부가 다시 붙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