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탄핵 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0:00 / 0:00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은 남한의 대통령 파면과 관련한 북측의 반응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는지요?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 10일 남측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했죠. 북측 노동신문이 이 사안을 다루는 태도가 10일을 전후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부원장님의 평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고영환: 남측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이뤄진 지난 10일 이후 북한 노동신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탄핵 사태와 관련한 사진들이 지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촛불시위 인파와 탄핵 요구 영상을 무더기로 싣고 주민들에게 남조선 정국의 혼란을 전달하려 애쓰던 이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탄핵 결정 이튿날 노동신문은 남한 정세를 다루는 제5면 중간에 '남조선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 최종선고'라는 기사를 자그마하게 싣는데 그쳤습니다. 노동신문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하루 전인 지난 9일자에 "보수진영에서도 탄핵 가능성은 100%라는 비명이 터져나온다"고 전하는 등 전례 없이 상세하게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청와대 악녀', '역도'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방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는 물론 이전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도 남한에서는 이른바 반동정부들이 반인민적이며 반북한적인 정치를 펼치는 데 항의하며 항상 반정부시위들이 전개됐으며 이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도 이러한 반정부 투쟁 선상에 있다고 보도해왔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항상 북측 신문방송이 이러한 시위 장면을 보여주며 보도하니 남한에서는 저런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헌법재판소라는 곳에서 대통령을 탄핵, 즉 파면을 하니, 이 소식은 단 세 줄로 간단히 보도한 것입니다.

이는 시위까지는 괜찮은데 이런 시위로 하여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까지 크게 보도하는 데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반정부 시위로 하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보도하는 것이 북한 지도부로서는 현 상황으로 보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자: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남측의 대통령 파면 소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왜 조심스러운 일인가요?

고영환: 앞에서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북측 매체들은 대통령 탄핵 전 촛불시위는 광범위하게 보도하다가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즉 파면을 당해 일반시민으로 돌아가고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보도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정부 시위까지는 보도할 수 있지만, 그러한 시위로 하여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일반 가정으로 돌아간 사실, 즉 북한으로 보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부정부패와 주민들을 굶주리게 한 죄로 자리에서 물러나 평범한 평양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일이 남한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될 경우 그 후과를 북한 지도부가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노동당과 군대의 간부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조선에서는 대통령도 잘못하면 인민들에 의해 탄핵되는구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모자라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감옥도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을 북한 지도부가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런 위기감은 북측 관영매체들이 석 달 넘게 탄핵 사태 보도를 이어오면서 점차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만명 규모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최고 지도자의 부패와 실정을 성토하는 모습이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부작용이 걱정스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인민들이 시위로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세하게 알려지는 경우 '남한 인민들이 대단하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놀랍다', '김정은도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북한 인민들이 하는 것이 체제 안정에 위협이 되니 탄핵 사실을 짤막하게 보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사실 이번 탄핵 사건은 북한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어떻게 재판관들이 최고 지도자를 파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품으실 텐데요.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대통령 탄핵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인민들이 자유선거,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이라고 하여도 집권기간에 부정부패 행위를 저지르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하면 인민들이 반대시위를 하고, 이러한 인민의 여론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가 법리를 따져 탄핵 결정, 즉 파면 결정을 하면, 대통령은 이에 승복하면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러는 것이 자유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 외신들은 한국에서 평화로운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이 시위로 특별검사가 국회에서 임명되고,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한 권리를 남용했거나 의무를 다했는가를 따져달라고 하고, 이에 헌법재판소는 법을 놓고 잘잘못을 따져 대통령에게 자리에서 물러나 법의 심판을 받으라고 한 사실, 그리고 대통령이 이를 승복하고 자리에서 물러나 평시민으로 돌아간 사실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을 비유해서 말씀드리자면, 김정은이 국가의 돈과 권력을 남용해서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로 인해 최고인민회의가 파면안을 발의하고 통과시켜 이를 최고재판소에 넘기고, 최고재판소는 국무위원장이 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는지 따져 본 후 잘못이 있음을 인정해 김정은을 당위원장, 국무위원장, 최고사령관 직에서 물러나라고 판결하고, 이에 김정은은 모든 권좌에서 내려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박성우: 중앙일보는 14일자 보도를 통해서 북한에서도 탄핵과 비슷한 성격의 시도가 있었다면서 '8월 종파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위원님도 동의하시는지요?

고영환: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탄핵'을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은 탄핵을 "죄상을 들어서 시비를 가리며 책망하거나 규탄하는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김정은을 이런 것에 연관시키는 건 최고의 불경에 해당합니다.

물론 수령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휘 전 직업총동맹 위원장을 비롯한 김일성 반대세력은 1956년 당시 김일성의 해임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시도된 탄핵 기도를 북한은 '8월 종파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연안파, 소련파, 그리고 국내파 등이 연합했지만 무력을 쥐고 있던 김일성파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시도된 처음이자 마지막 탄핵 시도로 불릴만한 사건이 바로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인 셈입니다. 그 후부터는 김일성 일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항상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라는 누명을 쓰고 숙청되었습니다.

그때 만약 김일성이 탄핵당하고 구소련처럼, 그리고 중국에서처럼 개혁파가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하였더라면 북한은 오늘날 남한보다 더 발전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국에 와서 여러 번 하였습니다.

박성우: 1956년 북한의 '8월 종파사건'을 2017년 남한의 '탄핵' 시도와 1:1로 비교하려면 형식과 절차가 여러모로 맞지 않는 점이 있죠. 하지만 최고지도자를 나름의 절차를 거쳐 주석직에서 물러나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볼 때 '탄핵'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방금 지적하신 대로 당시 김일성이 제거됐다면 현재 북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