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8월 15일, '광복절'을 맞으며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광복절의 의미와 광복절과 관련된 행사들을 짚어봅니다.
- 함경북도와 양강도 주민들이 돈 벌이를 위해서 둘쭉 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안전사고도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 북한이 주장하는 ‘광복절’의 의미
박성우 :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 8월 15일, 남북한이 다 아는 날이죠? '광복절'을 맞아서 한국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됐습니다. 광복절 기념식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는데요. 북한에서도 올해 광복절에 여러 가지 행사들이 진행되었죠?
문성휘 : 네, 한국은 해마다 광복절을 성대히 기념하는데 비해 북한은 단순한 기념보고회 같은 행사가 전부이고요. 올해는 특별한 행사 없이 광복절을 조용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북한이 광복절을 크게 경축한 건 2005년, 조국광복 60주년을 맞으면서였는데요. 이때는 다양한 경축행사들과 함께 '조국광복 60주년 기념주화'도 발행했습니다.
박성우 : 꺽이는 해, '정주년'이래서 그런거죠?
문성휘 : 네, 이렇게 꺾이는 해, 북한에서 '정주년'이라고 하는 이런 해를 제외하고는 '광복절'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휴식일에 불과합니다.
박성우 : 휴식일이라 해도 한국에서는 광복절이면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한다든지, 이렇게 정치계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행사를 하거든요. 북한도 민간차원의 행사들이 있는지요?
문성휘 : 북한은 수령절대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순수한 민간단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민간차원의 행사란 있을 수가 없고요. 설사 중학교나 대학 같은 곳에서도 어떤 행사를 진행하자고 해면 중앙의 지시가 있어야 하는데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마음대로 행사를 조직할 수가 없습니다.
워낙 '정주년'이 아닌 해에는 광복절 행사를 거의 조직하지 않았는데, 올해의 경우는 지금까지 계속 되는 큰물 피해로 북한도 복구사업이 바쁘니까 특별한 행사를 조직할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그런데 꼭 '정주년'이 아니라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해방의 의미를 새겨주기 위해서라도 광복절 행사, 이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문성휘 : 물론 그렇지만 광복절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차가 상당히 큽니다.
한국에서 광복절이라고 하면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이 아닙니까? 또 그와 함께 민족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 수난의 날이기도 하고요. 이런 큰 틀에서 8.15, '광복절'을 보는 남북한의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과정과 해방의 의미를 보는 시각차입니다.
박성우 : 과정과 의미의 차이다?
북한에서 8.15, 광복절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활동으로 일제를 물리치고 조국을 광복시킨 날이라고 선전하고 있고요. 해방과정 자체가 김일성이 일제를 물리친 과정이고 그 결과에 의해 조국광복이 이루어졌다, 또 미군에 의해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성우 : 광복을 시킨 주체가 김일성이다. 그리고 미군에 의해서 분단이 시작됐다, 이 말이군요? 그런데 북한이 소련에 의해 광복되었다거나 한반도의 분단에 소련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가요?
문성휘 : 네, 김일성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88국제여단에 속해 있다가 소련군이 북한을 해방시킨 지 한 달도 더 되는 9월 20일에 부인 김정숙과 어린 김정일을 데리고 귀국하지 않았습니까? 소련 구축함 '뿌가쵸브호'를 타고 귀국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런 사실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구권이 허물어진 1992년부터는 백두산 주변에 위치한 간백산 밀영에서 김일성이 직접 조국광복 대작전을 지휘했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요.
8.15는 김일성에 의해 조국이 광복되었고 김일성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인민의 정권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 그러니까 광복절의 의미가 일제치하에서 조국이 해방된 날을 기리는 것보다 김일성의 왜곡된 업적을 선전하는 날이다, 이 말이군요?
문성휘 : 네, 맞습니다. 그러다나니 광복절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라든지, 북한의 국경절, 노동당 창건일에 밀려서 큰 빛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들도 이날은 어쩌다 하루 편하게 쉬는 날로 여기고 있고요. 북한은 개인들이 국기를 상징하는 '인공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인공기'를 파는 상점 같은 곳도 없고요. 그러다나니 공장이나 기업소 차원에서 간혹 인공기를 게양하지만 개인들은 남한처럼 태극기를 내 건다든가 이런 의식이 없습니다.
박성우 : 조국광복의 의미도 왜곡돼서 개인숭배 수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분단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 둘쭉따기에 나선 주민들 사고 잇달아
박성우 : 이번엔 다른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둘쭉 따기에 나섰던 대홍단 주민 3명이 길을 잃는 바람에 지방대의원 선거에 참가하지 못해서 조사를 받았다, 이런 소식 저희 자유아시아 방송이 최근에 보도했는데요. 요즘이 둘쭉을 따는 철인가보죠?
문성휘 : 네, 북한의 특산품인 '둘쭉술'이 남한에서도 가끔씩 팔리고 있지 않습니까? 둘쭉 나무는 해발 1200메타가 넘는 산중에서 자라는 떨기나무입니다. 둘쭉의 맛은 포도와 비슷하면서도 향이 더 진한데 7월부터 8월 중순까지가 둘쭉을 따는 적기입니다.
박성우 : 북한이 둘쭉 가공시설들을 갖추고 있고 둘쭉 농장도 운영한다, 이런 말도 있던데요?
문성휘 : 네, 삼지연 무봉 국영농장이 전문적인 둘쭉농장인데요. 여기서 생산된 둘쭉이 '삼지연둘쭉가공주공장'과 '혜산둘쭉가공주공장'에 공급돼서 유명한 '둘쭉술'과 '발효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 '발효주'는 어떤 술입니까?
문성휘 : 네, 발효주는 한마디로 '와인', 그러니까 포도주와 같은 의미입니다. 포도주와 꼭 같은 방법으로 만드는데 둘쭉을 발효시켜서 만들었다고 북한식으로 '발효주'라고 이름을 붙인 겁니다.
이런 둘쭉을 따기 위해 올해 북한의 양강도와 함경북도 주민들이 무리를 지어 삼지연이나 백암군, 연사군 일대로 모여들고 있다는 데요. 이렇게 주민들이 둘쭉 따기에 나선 원인은 둘쭉 농장인 삼지연 무봉국영농장이 완전히 파산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협동농장은 자체로 생산한 알곡을 분배받는 형식으로 운영되는데 국영농장은 이와는 달리 국가가 배급을 주면서 일을 시킵니다. 국영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배급을 받기 때문에 농민이라고 부르지 않고 농업노동자라고 부르는데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당국이 무봉국영농장 농업노동자들에게 배급을 주지 못하다나니 농장이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무봉농장은 해발 1200메터인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알곡작물을 심을 수가 없고요. 유일한 생산물이 둘쭉인데 이러한 둘쭉은 식량으로 쓰일 수 없으니깐 주민들이 모두 흩어져버렸다는 겁니다.
박성우 : 그럼 둘쭉 가공공장들은 어떻게 운영하는 겁니까?
문성휘 : 그러니까 지금처럼 주민들이 둘쭉 따기에 너도 나도 나서는 겁니다. 둘쭉가공품은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이기도 하고 또 김정일과 북한 고위간부들에게 특별히 올리는 1호제품, '둘쭉술'을 만드는 원료입니다. 그런데 들쭉생산이 중단되었으니 이젠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둘쭉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둘쭉을 따서 가져 온 주민들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한다든가, 아니면 밀가루나 옥수수 같은 식량을 제공하면서 둘쭉을 수매 받는다는 거죠.
박성우 : 식량난 때문에 북한에서도 자본주의적 수매방식이 생긴 셈이군요?
문성휘 : 예, 그렇죠. 이렇게 주민들이 둘쭉 따기에 나서면서 그로 인한 사고도 빈발하고 있는데요.
양강도 백암군에서만 한 달 새에 6명의 주민들이 둘쭉 따러갔다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삼지연군과 대홍단군에서도 이런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는데요.
함경북도 연사군에서는 두 가족, 8명의 주민들이 둘쭉 따러갔다가 행방불명되어 북한 당국은 이들이 두만강을 건너 탈북 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박성우 : 네, 알겠습니다. 둘쭉 때문에 북한에서 참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 다는 걸 알 수 있겠습니다. 문 기자 오늘 얘기 잘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 또 기대하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