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관광철도 공사장 인명피해 커

서울-문성휘, 오중석 xallsl@rfa.org
2015-12-21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백두산 천지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중석: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 내부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북한당국이 내년 8월까지 완공을 목표로 다그치고 있는 ‘백두산관광철도’ 공사가 안전대책 미비로 인해 사고로 얼룩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오중석: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네, 안녕하세요?

오중석: 요즘 북한당국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백두산광광철도’ 공사에서 유난히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진 게 있나요? 사고가 많은 이유에 대해 좀 설명해 주시죠.

문성휘: 네, 그러지 않아도 ‘백두산관광철도’ 공사장에서 건설자들이 비참하게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를 현지 소식통들이 자주 전해오고 있습니다. 위연-삼지연사이 ‘백두산철도’ 공사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우여곡절을 겪어왔습니다.

오중석: 네, 제가 좀 알아보았는데 기존에 있던 ‘백두산관광철도’가 1994년에 있은 대홍수로 완전히 파괴된 이후 여태껏 그냥 방치돼 왔다면서요?

문성휘: 그렇습니다. 사실 ‘백두산관광철도’라는 이름은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그냥 위연-삼지연 철도였고요. 이 철도가 건설된 것은 1980년대 초입니다. 이 철도는 높은 산줄기들에 둘러 막혀 광궤(廣軌), 즉 대형 철길로 건설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중석: 네, 그런 철길을 ‘백두산관광철도’라고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준 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군요. 언제부터 그런 이름을 불렀나요?

문성휘: 북한이 ‘백두의 혁명전통’을 떠들고 김일성 주석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벌렸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게 1970년대부터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삼지연으로 가는 철길이 없어 백두산 답사는 버스나 자동차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에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압록강을 따라 삼지연으로 가는 철길을 따로 건설을 했는데요. 1980년대까지 이 철길로는 과거 일제가 만든 ‘니키샤’라는 소형 증기기관차가 달렸습니다.

그마저도 1980년대 말 일제가 만든 소형 증기기관차가 다 낡은데다 석탄사정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1989년부터 1992년 4월까지 북한은 이곳의 철도를 전기화했습니다.

철도 전기화가 완공된 199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종태 전기기관차공장’에서 새로 만든 ‘백두산호’ 소형 전기기관차에 직접 올라보고 아주 잘 만들었다며 노동자들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면서 철길의 이름을 ‘백두산관광철도’라고 지어준 겁니다.

오중석: 네,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문 기자, 1992년에 전기화된 ‘백두산관광철도’가 1994년에 대홍수로 파괴됐다면 불과 2년 남짓 운영되다 말았다는 얘기인가요?

문성휘: 네,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관광철도’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전기화가 된 후 열차는 제대로 뛰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동유럽사회주의 붕괴로 북한의 경제난이 가속화되며 전력난도 더 극심해졌기 때문입니다.

1994년 말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하여 북한은 파괴된 철도를 복구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 굶주린 인민들이 구리로 된 철도 전기선까지 마구 잘라내다 중국에 팔아먹으면서 철길은 완전히 황폐화 되었습니다.

오중석: 그렇게 파괴되고 버려진 철도를 20년 만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복구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얘기이군요.

문성휘: 네, 그렇습니다.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도 ‘백두산관광철도’ 복구공사를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삼수발전소’ 건설이 끝난 2007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8돌격대’ 3만 명을 철길복구 건설에 돌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구공사는 시작 된지 불과 3달 만에 중단되고 말았는데요. 이게 워낙 작업량이 방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도 엄두를 못 냈었다는 거죠.

오중석: 네, 압록강 연선을 따라 예전의 자리에 다시 철길을 놓는 작업이라면 공사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왜 인명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건가요?

문성휘: 한마디로 지금의 공사는 광궤철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협궤였는데 이걸 넓은 철길로 바꾸자니 노반을 넓히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산을 깎고 모래를 파서 노반을 넓혀야 하는데 이런 난공사에 안전장치라곤 하나도 없다는 거죠.

올해 8월 장마철 때 낙석에 의해 사망한 사람들이 양강도 여단에서만 26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중에는 8월 19일 산사태로 한꺼번에 11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고 하고요. 양강도 여단에서만 피해가 이 정도였으니 다른 여단들의 사고를 모두 합치면 지금까지 사망자는 수백 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소식통들의 주장입니다.

오중석: 얼마 전에도 양강도 여단이 맡은 보천군 가림리 공사구간에서 흙구덩이가 무너져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면서요?

문성휘: 네, 사고가 난 날짜는 11월 27일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는데요. 얼어붙은 땅 겉면을 지붕삼아 굴을 파는 형식으로 모래를 채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흙천정이 붕괴됐다는 거죠. 이 사고로 양강도 여단 돌격대원 30여명이 파묻혔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즉각 구조에 나섰지만 워낙 기계수단이 없이 수작업으로 파내다 보니 묻혔던 돌격대원들 중 13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였다고 하고요. 이런 사고는 암반까내기 작업이 진행되는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천군 가림리 위쪽 구간을 맡은 자강도 여단에서도 12월 초 큰 바위가 굴러 내려 돌격대원 3명이 사망하고 2명은 팔을 절단하는 사고를 입었다고 합니다. 자강도 여단에서는 12월 14일에 땔감 마련을 위해 중국쪽으로 넘어가 통나무를 도벌하던 돌격대원 3명이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아직 풀려나지 못하는 사고도 있었고요.

오중석: 중국에까지 침범해 땔감을 도벌할 정도라면 북한 당국이 돌격대원들에게 땔감을 전혀 보장해 주지 않나요?

문성휘: 땔감은 모두 돌격대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 산들은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일 정권이 식량과 맞바꾸기 위해 통나무들을 무분별하게 도벌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인민들은 뙈기밭을 일구어 식량난을 이겨내고 있고요.

북한에서 가장 추운 지방이 양강도인데 그것도 지금같은 엄동설한에 땔감조차 보장되지 않아 추위로 떨며 밤을 샌 돌격대원들이 몸도 풀지 못하고 작업장에 내몰린다고 합니다. 몸이 얼어 감각이 무뎌지면서 더 많은 사고를 당하고 있다고 하고요.

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내년 8월까지로 공사를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작업장에 인력이 너무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도 인명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입니다.

오중석: 네, 백두산관광철도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북한당국이 인민들을 그렇게 열악한 작업현장에 내몰고 있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엄동설한에 마땅한 안전대책도 없이 까다로운 작업현장에 나서야 하는 주민들의 사정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문 기자 오늘 얘기 잘 들었고요. 다음 시간을 또 기대하겠습니다.

문성휘: 네, 감사합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