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수해복구 끝내려면 아직 멀어

서울-문성휘 xallsl@rfa.org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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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풀러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대변인이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북한 수해복구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패트릭 풀러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대변인이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북한 수해복구 현장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알아보는 ‘북한은 오늘’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문성휘입니다.

11월 12일 저녁 6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부인 광화문과 시청광장에 백만명의 인민들이 촛불을 들고 떨쳐나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군중들은 청와대까지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김일성 광장에서 모인 백만 명의 시위대가 김정은 타도를 외치며 김정은의 집무실 앞까지 행진했다는 의미입니다.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위에 나선 인민들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은 인민의 손에서 나온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인민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헌법대로 대통령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북한의 법도 한국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자기 운명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운명을 개척할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이는 북한이 헌법을 대신해 성경처럼 교리화 한 주체사상에서 철학적 원리, 한마디로 근원으로 삼는 구호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인민들에게 주인의 의식이 있는가요?

바로 4년 전 한국의 인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이 원칙을 훼손했다고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씨 봉건왕조는 3대에 걸쳐 북한의 인민들을 파쇼적으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인민들은 굶어 죽으면서도 반항 한번 못했습니다. 민주주의가 파괴된 북한과 민주주의를 회복한 한국의 자화상은 이렇게 큰 차이가 났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절대로 공짜가 아닙니다. 그만한 대가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한줌의 재가 된 열사도 있고, 파쇼에 목숨으로 항거한 광주의 용감한 시민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불씨가 되어 백만, 천만의 불길을 지핀 것이 오늘날 한국이 찾은 민주주의입니다. 저 북녘 땅에도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 확신하면서 ‘북한은 오늘’ 시작하겠습니다.

11월 13일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이 2면을 통째로 북부지구 수해복구와 관련된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위대한 당의 현명한 령도 밑에 이룩된 북변 땅의 기적적 승리” 제목부터 이렇게 요란했습니다.

읽어보니 사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과 건설자들, 인민들이 모두 떨쳐 일어나 두만강 유역에서 수해복구를 시작한지 50여일 만인 11월 5일까지1만2천여세대의 소층(5층이하), 단층살림집 건설을 완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한심한 것은 “조국의 북변 땅에서 우리 당의 인민사수전, 인민복무전의 승전고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며 “이 모든 전화위복이 위대한 김정은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자랑을 늘여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지 소식통들이 전한 이야기들은 노동신문의 맥락과 너무도 차이가 많았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번 북부지구의 큰물피해는 8월말, 9월 초 사이 폭우가 내릴 때 북한 당국이 두만강 주변 저수지 수문을 개방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인민의 생명재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저수지의 수문을 열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수천채의 살림집과 공공건물들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북한과 꼭 같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두만강 맞은 켠 중국의 마을들입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역시 8월말 장마 때 북한 당국이 저수지 수문을 개방하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북한보다 이른 9월 8일경부터 복구 작업을 시작했는데 인력은 몇 명 없었고 굴삭기를 비롯해 기계수단들이 대거 투입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수해로 허물어진 살림집을 건설하던 10월 중순에 중국은 기계수단들을 동원해 큰물피해를 말끔히 가셨다는 게 소식통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 사람들이 나와 구경을 할 정도로 인산인해였다고 합니다.

북한이 언론을 통해 연일 수해복구 소식을 전했지만 소식통들은 맞은 켠 중국의 수해복구 모습을 보면서 건설자들의 상실감이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당초 10만 명으로 알려졌던 복구 인력은 40만 명이었다고 그들은 강조했습니다.

이들 40만 명은 현장에 직접 투입된 인원이고 보조 인력으로 동원된 사람들까지 합치면 동원인력은 백만 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언급했습니다. 11월 13일자 북한의 노동신문도 그런 사실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습니다.

노동신문은 이번 북부지역 수해복구에 동원된 인원을 인민무력성 산하 각급 부대의 장병들, 함경북도돌격대와 피해를 입은 6개의 시, 군 돌격대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세포등판 개관을 맡았던 922돌격대도 참가했다고 거론했습니다.

또 황해남도 물길건설돌격대와 청천강-평남관개물길 건설돌격대, 6.18돌격대, 백두산청년돌격대, 려명거리 건설돌격대까지 합류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일일이 열거한 건설인원을 제외하고도 청진철도국 교량건설대 수천 명도 동원됐습니다.

또 북한의 제1, 제2발전소 건설사업소와 간석지 건설사업소의 인원도 모조리 끌어 모아 복구현장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고 소식통들은 설명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모래와 자갈을 생산한 함경북도 도시건설사업소, 도시경영사업소들도 있습니다.

이외 철강재생산에 동원됐던 김책제철소와 성진제강소, 통나무생산을 맡은 연암 임산사업소와 백암 임산사업소, 새로 짓는 살림집의 가구를 맡은 평양가구공장까지 합치면 동원된 인원의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소식통들은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수재민 지원을 구실로 전국의 매 가정세대들에서 고철, 담요, 된장과 마른 산나물을 지원하라고 강요해 사실상 북부지역 수해복구에 북한의 전체 주민들이 동원된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간고한 노력 끝에 수해복구가 시작된 지 50일 만인 11월 5일까지 겨우 살림집 1만2천여세대를 지었다는 건데 이게 세상에 자랑할 대승리라는 것입니다. 회령시에 5층으로 짓는다던 살림집들은 철강재가 모자라 3층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김정은은 큰물피해를 복구를 마감 지을 날짜를 10월 25일까지 한달 간으로 지정해 주었습니다. 중국에서 환히 보이는 회령시와 무산군, 온성군 남양노동자구에 5층짜리 현대적인 살림집을 지어 수재민들에게 주라는 것도 김정은의 지시였습니다.

그러나 철강재가 없어 살림집들은 3층에서 모두 중단됐고 대신 주변에 단층살림집들을 지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덧붙였습니다. 특히 살림집 건설이 끝났음에도 학교와 유치원, 병원과 같은 공공시설들은 철강재가 없어 건설이 더디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자랑찬 승리를 거두었다는 50일, 비록 이 기간에 살림집 건설은 완공했지만 아직 공공시설들과 산시태가 발생한 지역들에 옹벽 쌓기까지 끝내려면 갈 길이 멀다고 소식통들은 지적했습니다. 수해복구가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정은에게 하루 빨리 영광의 보고를 올린다며 북한의 언론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고 있는데 대해 소식통들은 진짜 수해복구가 어떤 것인지는 중국을 통해 보면 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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