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청취자 여러분은 ‘꼬부랑국수’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북한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텐데요. 오히려 즉석 국수라는 말이 더 익숙할 겁니다.
2000년대부터 북한에서 즉석국수가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어 주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해주고 있다고 하는데요. 변화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정영 기자가 북한의 즉석국수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배급에 기대어 사람들이 살아가던 시절.
‘꼬부랑 국수’는 평양 주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배급이었습니다. 그것도 지방 사람에겐 안주고 수도 시민들에게만 주던 특권이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다년간 방송원으로 출현했던 평양 출신 김춘애 씨는 꼬부랑 국수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김춘애 씨: 80년대 중반에 평양시민들에게 꼬부랑국수가 식량으로 공급된 적 있었습니다. 15일간 식량으로 꼬부랑 국수를 공급받았는데 퇴근해 오면 꼬부랑 국수가 없어졌습니다.
꼬부랑 국수는 밀가루를 기계로 뽑은 국수인데, 생김새가 꼬불꼬불하다고 하여 북한 사람들은 꼬부랑 국수라고 불렀습니다.
1970년대 말 재일본 조총련계 사업가가 투자해 평양 만경대구역에 세워진 밀가루가공공장(애국국수공장)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꼬부랑 국수에는 스프와 건더기는 없었습니다. 사각 벽돌장처럼 생긴 꼬불꼬불한 면을 물에 넣고 팔팔 끓이다가 면이 풀어지면 거기에 양파나 야채 등을 넣고 간장을 쳐서 먹었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돼지 비게를 넣기도 했지요.
그런데 꼬부랑 국수는 군것질이 부족했던 아이들의 간식으로 많이 사용됐습니다.
김춘애씨: 원래 꼬부랑 국수는 씹으면 씹을수록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있거든요.
간식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아이들은 꼬부랑국수를 몰래 가져다 생으로 부숴 먹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추억이 녹아 있는 꼬부랑 국수. 그나마도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시작되면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2000년 들어 북한에서도 면과 스프(감미료)가 들어 있는 진짜 라면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홍콩 기업이 북한에 투자해 설립한 ‘대동강즉석국수공장’에서 북한판 라면인 ‘즉석국수’가 생산되기 시작한 건데요.
당시 북한 관영 <평양방송>은 이 공장에서 ‘봉지즉석국수’(봉지라면)와 ‘고뿌즉석국수’(컵라면)를 생산하는데 원료 투입부터 제품 포장까지 모두 자동화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생산량은 고작 10톤. 2천 5백만 주민이 맛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한 평양출신 탈북 여성은 “1990년대 말에는 중국 라면을 대성백화점에서 구매할 정도로 귀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여성: 만경대 견학 갔을 때 라면을 선생님에게 내놨는데, 와~ 아이들이 깜짝 놀랐어요. 저거 누가 가져왔는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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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이 열리면서 북한에 한국 라면이 대대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관계자들은 북측 근로자들에게 줄 연말 보너스로 한국 라면을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이때부터 한국 라면은 장마당에서 팔리고, 중국 라면과 북한 토종 평양 즉석국수를 제치고 언제나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에 한국 라면은 북한 라면에 비해 3배 가량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평양 라면은 ‘노동자 라면’으로 불리며 외면당하기도 했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지금은 사라진 개성공단.
개성공단은 중단된 후에도 장마당에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한국산 신라면, 진라면, 삼양라면이 팔리면서 북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라면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이 입수한 북한 유아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된 소갈비 맛 즉석 국수는100그램짜리에 467킬로 칼로리라고 겉 포장지에 적혀 있습니다. 주원료는 밀가루, 농마가루, 소갈비 국물, 소고기 맛내기, 검은 후추가루 등 13가지의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즉석 국수를 직접 시식해본 남한에 정착한 한 탈북 남성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탈북 남성: (북한)라면은 우리하고 비슷한데, 양념은 소고기 맛, 돼지고기 맛 그런데 내가 한번 먹어봤는데 된장 맛이 나는지 조금 이상하더라고.
북한 사람들의 입맛에는 익숙할 수 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탈북남성은 “라면에는 스프와 말린 버섯과 파 등 야채도 들어 있다”며, “북한 라면에 있는 건더기는 자연산이기 때문에 고유의 풍미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들의 주식을 백미밥과 밀가루 음식으로 전환한다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침에 따라 각지에 즉석국수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해 사리원 즉석국수 공장을 소개하면서 “인민들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 생산이 미처 따라서지 못할 형편”이라는 지배인 박철웅의 자랑도 전했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고추장맛과 소고기맛, 닭고기맛, 후추맛즉석국수 등 즉석국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남포시와 청진시, 혜산시 등 각도에도 즉석국수공장들이 생겨나 자기 고장의 특색을 살린 즉석국수를 개발 생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파병 대가로 받은 밀가루가 이 공장들의 생산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꼬부랑국수로 시작된 북한의 면 음식 문화는 이제 즉석국수,즉 라면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비록 품질과 종류에서는 아직 한국과 차이가 있지만, 북한 주민들의 식생활과 소비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