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의 ‘자폭정신’
2016.11.07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노부모의 자폭정신’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방 벽에 ‘자폭정신’이라고 쓰인 족자가 걸려 있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내던진다는 ‘자폭정신’은 ISIS 즉 이슬람국가와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이 몸에 폭탄을 두른 자살테러 조직원들을 세뇌시킬 때 쓰는 문구처럼 들립니다. 헌데 테러단체의 교육현장에 걸려있을 법한 ‘자폭정신’ 족자가 북한 가정의 방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도 모든 가족이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유독 노부모의 방에만 걸려 있습니다. 가족 모두 혼신을 다해 살아가자는 가훈은 아닙니다. 요즘 북한에 이런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사실 상당수 북한 노인들은 군대 생활을 하면서 당을 위해, 수령결사 옹위를 위해 ‘자폭정신’으로 무장해 살아와 그다지 낯설지 않은 표현입니다. 그렇다고 이 족자를 노인들이 직접 써서 벽에 걸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한 지붕아래서 같이 사는 장성한 자식들이 쓴 것입니다. 노부모에게 죽는 날까지 젊었을 때의 ‘자폭정신’을 잊지 마시라고 그랬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의 일부 가정에서 노부모의 방에 ‘자폭정신’ 족자를 걸어 놓은 이유는 부모를 봉양할 수 없으니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생활이 어려운데 노부모 약값에, 수발을 들다 보니 장사 나가기도 어렵고 가정 형편이 더 곤궁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노부모가 ‘자폭정신’으로 결단을 내리길 노골적으로 재촉하는 족자입니다. 21세기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려장’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고려장은 왕조시대 생계가 버거웠던 서민들이 입을 덜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노부모를 산 깊숙한 곳에 내다버리는 반 인륜적인 풍습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이런 비극적인 일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1924년 9월 13일자 동아일보는 ‘평안북도 성외동에 사는 한 주민이 생활고가 극에 달하여 그 부친을 생매장했다’고 보도하고 자식의 불효를 꾸짖었습니다. 신문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지로 내모는 것도 비난 받아 마땅한데, 하물며 제 부모를 죽음의 길로 몰고 간 것을 어찌 용서할 수 있느냐’는 글로 공분을 자아냈습니다.
노인이 되면 경제적, 신체적으로 약해지고 정신력도 이완됩니다. 남한의 노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선진국 협력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됐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 주요 원인은 빈곤, 질병, 소외 등 세 가지로 분석됩니다.
북한 노인도 이러한 요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빈곤과 질병의 경우는 남한보다 북한 노인이 겪는 정도가 심할 겁니다. 그리고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소외는 최근 북한 가정에서 불고 있는 ‘자폭정신’ 족자가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의 전 세계 각국의 자살 통계를 보면, 최빈국인 네팔이나 아이티와 같은 나라에서는 노인 자살이 거의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노부모를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온 가족이 서로 보듬고 살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남한은 노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각 지역 보건시설이나 학교에 상담소를 설치하고 의료제도를 개선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나라 재정이 부족한 데다 사회적 인식도 낮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젊을 때 자폭정신으로 결사 옹위해 온 당과 수령은 나 몰라라 하고, 험난한 세월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들은 이제 노부모에게 자폭정신을 주입시킵니다. 실제 함경북도의 한 노부부가 최근 나무에 목을 매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아마 자식들의 ‘자폭정신’ 강요에 그래야만 했을 것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오늘도 북한 노인은 방에 걸려 있는 ‘자폭정신’ 족자를 응시합니다. ‘소중한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자폭정신을 발휘해 결단을 내려야 하나’ 하고 깊은 고뇌에 빠져듭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