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영화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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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영화관 서울 시내 한 영화관 모습.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기자: 이제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가을이 됐구나 하고 피부로 느끼게 되는데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 준비하셨나요?

정진화: 네, 5일간의 추석 연휴도 있었고 해서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서울 시내에 있는 남산에 올라가 케이블카도 타고 친구들을 만나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남한의 영화관은 갔던 그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자: 요즘 코로나19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활동은 자제하라고 하는데 영화관은 운영을 하는가 봅니다.

정진화: 맞습니다. 하지만 식당도 그렇지만 영화관도 많은 인원이 모이는 건 안 되는데 거리두기를 하면서 그러니까 두 명이 앉으면 다음 두 좌석은 비우고 이런 식으로 영화관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기자: 북한 청취자들은 남한 영화관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요.

정진화: 네. 사실 대한민국에는 영화관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남한에 와서 사람들이 영화관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집에서도 원하는 영화를 다 볼 수 있는데 일부러 시간 내고 돈 내면서 왜 영화관까지 가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가 잘 안됐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이 아빠, 엄마랑 영화관에 다녀왔대요. 영화관에 가서 팝콘 먹고 콜라도 마셨대요” 이러면서 우리도 영화관에 가자고 조르는 거에요. 그래도 그 이후 한참은 제 생각을 고집하면서 영화관에 가지 않았는데 “겨울왕국”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그 주제가가 저도 따라 부를 정도로 엄청 인기였어요. 그런데 아들이 이 영화는 무조건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한대요. 그래서 처음 영화관에 갔죠. 그러면서 영화관에 1관, 2관, 3관, 4관 이렇게 한 건물 안에 여러 개의 상영관이 있는 걸 처음 안 거죠.

기자: 그러니까 생각했던 영화관 모습과는 달랐다는 말씀이군요.

정진화: 그렇죠. 사실 북한영화관은 영화관 자체가 하나의 스크린 그러니까 영화관이 한번에 하나의 영화를 상영하는 구조로 되어있는데 남한 영화관은 어떤 영화관에 가도 몇 개의 관이 따로 있고 각 관마다 동시에 각각 다른 영화를 하는 거죠. 그리고 대한민국은 영화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정해져 있어요. 예를 들면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 이 영화는 19세 이상 관람가 이렇게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아이들 따로 부모들 따로 영화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자: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15세 이상 관람가라면 영화 내용이 폭력적이든가 아니면 정서상 15세 이하 청소년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니 못 본다 이 말인데 보통은 어린이 영화는 부모가 함께 보지 않습니까?

정진화: 저도 처음에는 아이들이 보는 영화라고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와 함께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부모가 함께 보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랑 함께 온 경우나 또는 혼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는 경우는 아이들만 들여보내는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경우엔 키가 작잖아요. 그래서 상영관마다 아이들 키에 맞게 방석을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그런 배려는 참 좋은 것 같았습니다.

기자: 남한 영화관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정진화: 예전에 북한에 있을 때는 개별적으로 영화관에 간다는 건 거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고 영화를 보는 것도 하나의 문화생활 특히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때 처음 영화관을 이용한 후로는 영화관에 자주 가는데 사실 같은 영화라고 해도 영화관에서 보는 거랑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죠. 그리고 가족끼리 영화관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각각 영화를 보고 나면 서로가 기다리는 시간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놀이시설을 갖춘 영화관도 있고요. 도서관처럼 많은 책을 구비해놓은 영화관도 있고요.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면 영화와 관련한 여러가지 행사도 준비해서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이나 아이나 영화관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는데 팝콘 그러니까 옥수수 알을 튀긴 것과 콜라 음료수를 파는 매장입니다.

기자: 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영화 보는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나요?

정진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어린이, 학생, 청소년, 성인에 따라서 가격이 다 다릅니다. 영화는 한편에 보통 8,000천인데 이 돈이면 담배는 두 갑을 살수 있고요. 버스나 지하철은 6번정도 탈수 있는 가격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되는 가격일수도 있어요.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문화누리카드’를 주는데 올해는 10만원이 충전되어 있습니다. 또 그 카드 자체가 할인이 되다 보니까 만약 영화만 본다면 한달에 한번은 볼 수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누구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는 말이군요?

정진화: 그렇습니다. 문화누리카드는 영화만 보는 게 아니고 책도 구입할 수 있고 공연도 관람할 수 있고 기차표를 살 때도 사용할 수 있어서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가 이번에 본 영화는 어떤 거였습니까?

정진화: 네. 제가 이번에 본 영화는 최근 남한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는 “모가디슈”라는 제목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습니다. 모가디슈는 아프리카 위치한 소말리아의 수도입니다. 1991년 당시는 남북한 모두 유엔가입을 위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때였는데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났고 통신선마저 끊긴 고립된 도시에서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그린 영화입니다.

기자: 실제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해서 흥미로웠겠습니다.

정진화: 네. 사실 1991년이면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시기라서 그런 내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22년 장기집권을 한 바레 대통령을 반대하는 군부 반란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차단된 아프리카에서 북한 대사관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평소에는 원수처럼 지냈던 남한 대사관에 스스로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는 줄거리가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기자: 간단히 이번에 본 모가디슈 영화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소개를 해주시죠.

정진화: 북한대사가 한국 대사관에 가서 도와달라고 했을 때는 사실 한국 대사관도 외부와 모든 것이 차단되고 정부군 몇 명이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한국 대사관 인원보다 두 배는 더 많았고 사실 남북한의 입장에서 서로를 쉽게 받아들이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대사가 왜 하필이면 여기로 왔냐고 하자 북한 대사가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대목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넘어 탈북 했을 때 그 넓은 중국 땅에서 갈 곳이 없어 방황했던 생각이 났던 겁니다. 우리는 탈북자의 신세니 갈 곳이 없었다 해도 저 사람들은 나라의 위임을 받고 외국에까지 파견된 사람들임에도 얼마나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으면 적대관계인 한국 대사관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기막히고 또 한번 북한 당국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한테도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장면이 너무 슬펐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기자: 보통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며칠은 여운이 남는데요.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정진화: 요즘 인터넷에 ‘모가디슈’에 대한 평이 엄청 많이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국 대사관 대사를 지내신 분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하는 말이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남북한이 함께 대사관을 탈출해 안전한 장소로 피신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체제가 다르다 보니 남과 북이 각각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도 다르고 남한의 도움으로 생존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엔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며 언제까지 저렇게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에 안타까웠습니다.

기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정리를 해 주시죠.

정진화: 이제는 정말 영화를 취미로 보고 영화로만 보고싶습니다. 다른 영화를 보면 내용에 심취되어 본다고 해도 마음이 아프거나 아픈 추억을 되돌아보는 영화가 별로 없는데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는 늘 아픈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북한주민들도 자유롭게 살고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당당하게 사는 그런 모습을 그린 영화, 그런 현실의 북한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봅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오늘은 최근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참여자 정진화, 진행 이진서 에디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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