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재래시장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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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재래시장 깡통시장 풍경.
/정진화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정진화: 네, 얼마 전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부산의 자갈치 시장 주변에 재래 시장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재래 시장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기자: 부산의 재래시장이라고 하면 국제시장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요.

정진화: 네, 국제시장도 있고요. 길 건너에는 자갈치 시장이라고 해서 부산광역시를 대표하는 어시장이 있고 또 깡통사장도 있어서 국제시장 그 주변이 온통 볼 거리가 많아 재미있는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기자: 깡통시장이란 이름이 재미난대요. 이름에 어떤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진화: 저도 처음에 깡통이라고 하면 북한 식으로 해석하면 빈통이다. 깡통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해서 무슨 의미인가 궁금했는데요. 이 깡통 시장은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까 캔으로 된 음식이 많이 들어왔대요. 그런 구호품을 부대에서 가져다 팔았는데 그 이름이 남아서 깡통시장이라고 했고 그 옆의 시장이 바로 국제시장이었습니다.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은 연혁이 비슷하고 위치도 가까운데 국제시장에는 미군에서 가져오거나 또는 전쟁통에 피난민도 있고 물자도 부족하고 하니까 어디서 빼내온 물자 같은 것도 많고 그 시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고 해서 국제시장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란 말을 들었습니다.

기자: 국제시장이 생겨날 초기엔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는 아셨나요?

정진화: 솔직히 한국에 와서 처음 들었던 것이 ‘굳세어라 금순아’란 노래가 있는데 거기 보면 흥남 부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국제시장이나 또는 1.4후퇴 때 북한 흥남 부두에서 배를 타고 내려온 피난민들의 이야기는 한국에 와서야 구체적으로 듣게 됐습니다.

기자: 굳세어라 금순아, 아주 옛날 노랜데요. 가사가 어떻게 되죠?

정진화: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이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 진다.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기자: 노래 가사가 아주 구슬프네요. 다리 얘기도 나오고요.

정진화: 영도 다리는 부산에 있는 다리 이름이고요. 피난민들이 홀몸으로 내려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가족으로 내려왔다 해도 아무것도 가지고 내려온 것이 없으니까. 그 시장거리에서 날품팔이를 해서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기자: 시장에 가보니까 어땠습니까?

정진화: 지금 국제시장은 옛날의 모습은 없고 일반 시장과 같은데 부산역에서 내려서 두 역전을 가면 남포역이 있고 그 다음이 자갈치 역입니다. 역들 이름 자체가 옛날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이름으로 돼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고요. 자갈치 시장, 국제시장, 깡통시장이 나란히 있습니다. 책방, 거리 이름도 그렇고 유람선을 탈수 있는 것도 그렇고 하나의 문화체험의 거리로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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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 건물. /정진화 제공

기자: 국제시장 옆에 어시장이 있다고요.

정진화: 특히 자갈치 시장은 지하 2층 까지는 주차장이고 지상 7층까지 수산물 센터, 회 센터, 노래방, 그리고 자갈치 시장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실도 있고요. 자갈치 시장이 하나의 큰 기업처럼 돼 있으니까 자갈치 시장을 운영하는 사업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구경할 수 있으니까 관리 사업소도 있고 7층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부산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제가 2002년 남한에 와서 몇 년 뒤에 갔을 때도 이런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까 정말 멋지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특히 국제시장이나 깡통시장은 옛날의 흔적은 볼 수 없지만 이름을 통해 많은 것을 추억해 볼 수 있는 시장이었습니다.

기자: 자갈치 시장이란 이름만 들어도 물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 같은데요. 어떤 생선이 많던가요?

정진화: 이번에 갔을 때는 갈치와 가자미가 많았어요. 서울은 코로나 때문에 생선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여기는 직접 바다에서 공수해 오니까 가격이 너무 싸고 갈치는 가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쌌습니다. 자갈치 시장 건물 밖에도 장사꾼들이 엄청 많거든요. 회를 떠주는 집, 생선을 구워주는 집 해서 어시장의 분위기를 확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선이 너무 싼 것을 보니까 부산에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자: 어시장에서 원하는 물고기를 사서 옆에 있는 식당에 가져 가면 바로 회도 떠주고 얼큰하게 매운탕도 끓어주고 하잖아요.

정진화: 그렇죠. 그리고 이런 시장에 가면 생선이 바다에서처럼 펄펄 뛰는 생선이에요. 수족관에 살아있는 것을 넣어뒀다가 저거 잡아주세요 하면 그 자리에서 회를 떠주는 거예요. 도미, 전어 등 자기가 원하는 생선을 그 자리에서 회를 뜨면 바다와 가까운 지역이라 서울에서 먹는 것보다는 훨씬 졸깃하고 신선했습니다.

기자: 남한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다고 알고 있는데요.

정진화: 여기는 입구에서부터 영문도 있고 일본어도 있고 해서 어떻게 보면 서울의 명동 시장과 비슷해요. 외국인과 남한 사람을 모두 볼 수 있고요. 외국인도 그냥 저거 주세요 하면 되니까 많이 볼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가져가는 분도 볼 수 있었고 해서 시장이 서울의 청량리 시장이나 명동 시장과는 또 다른 멋진 시장이었습니다.

기자: 북한의 장마당 하고 비교하면 같은 재래시장이라도 많이 틀리죠?

정진화: 그럼요. 북한 시장은 자그마한 시장 안에서 채소 팔고 옷 팔고 육고기 팔고 이렇게 하는데 특히 정말 한국에서도 자갈치 시장이라고 하면 어시장으로 유명하잖아요? 특히 이번에 가보니까 7층 건물 외벽에 “부산 자갈치 시장”이라고 써 붙였는데 많은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어시장이다 보니 그 풍경이나 건물이 남달라 보였습니다.

기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오늘 부산의 재래시장 다녀온 소감 정리를 해주시죠.

정진화: 네, 국제시장은 북한 사람들의 추억에도 있는 그런 시장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950년 한국 전쟁 때 장진호반 전투에서 많은 분들이 사망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흥남에서 피난민들을 태워서 한국까지 온 그런 유래가 있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당시 북한에서 떠난 사람이 10만여명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그분들이 와서 국제시장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을 뿐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돈 많이 벌고 진짜 부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북5도청도 보면 80세, 90세, 100세 된 분들도 있는데 속초에 가도 있지만 가장 첫 번째 미군 군함을 타고 실향민으로 와서 정착했던 곳이 바로 부산의 국제시장 주변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도 있고 노래에도 있지만 1950년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은 다시 없어야 하겠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제시장을 돌아본 것은 남달랐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오늘은 부산에 있는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 그리고 깡통시장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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