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연말에 하는 우체국 일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1.12.21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연말에 하는 우체국 일 우편집중국 내 안전구호.
/RFA Photo-정진화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함경남도 함흥 열차방송원이었던 정진화 씨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워싱턴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는 소식. 지금부터 열차방송 시작합니다.

기자: 2021년도 며칠 안 남았는데 서울 분위기는 어떤가요?

정진화: 네. 주변을 보면 한해를 마감하는 시기라 아무래도 여느 때보다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텔레비전 홈쇼핑들은 일제히 모든 물건을 싸게 (눅게) 파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12월 말이면 거리의 곳곳 그리고 지하철 특히 교회나 성당들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화려한 성탄절 트리들이 너무 예쁩니다. 나무에 여러 장식을 하는 건데 밤이면 불빛이 반짝거리고 각종 장식을 달아놔서 보기만 해도 너무 화려한 성탄절 트리가 사람들을 반겨줍니다.

기자: 그렇죠? 그런데 북한 청취자들은 이런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정진화: 아니요. 저희가 북한에 있을 때는 성탄절도 몰랐지만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던 이름 아닙니까? 크리스마스는 12월25일, 한마디로 예수님 탄생하신 날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오직 지도자만 믿고 따르도록 주민들을 교육하고 하나님,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도 않지만 탈북민들이 생기면서 하나님,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이 사람들이 북송 돼서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할까봐 조사 과정에서 성경책이 나오면 처형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습니까?

정진화: 네. 저는 사실 이맘때 즈음이면 하던 일들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 해와는 달리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기자: 어떤 일인가요?

정진화: 네. 얼마전에 우체국(우편국)에 3개월, 그러니까 장기간이 아니고 단기간 일자리가 나와서 신청을 했는데 제가 합격이 되었어요. 알고 보니까 해마다 12월부터 2월사이에는 여느 때보다는 우편 물량이 늘어나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생긴다는 겁니다.

기자: 청취자들이 아르바이트라면 무슨 말인가 하지 않겠습니까? 설명 좀 해주세요.

정진화: 네. 흔히 알바라고도 하는데 정규직이라기 보다는 임시로 하는 일을 말합니다. 북한에는 아르바이트가 없기도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도 잘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에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중 5일은 회사에 나가고 주말이나 휴식하는 날에 임시로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자: 남한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죠?

정진화: 네. 정말 많이들 합니다. 한국은 어떤 직업도 본인이 찾아서 하는데 요즘은 한가지 직업이 아니고 또 다른 일을 하고 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계속 일을 하는 거죠.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남한 사람들이 “북한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면 나라에서 다 직업을 해결해 준다니 얼마나 좋을까?”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사실 그 본질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지 농촌에서 태어나면 평생을 농촌에서만 살아야 하고 탄광에서 태어나면 탄부가 되는 그런 직업을 나라에서 해준다는 게 뭐가 좋은 건가요? 남한에서는 직장을 찾을 때 자기 적성에 맞는 곳이 어딘지 선택한 다음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는 대학에 가서 공부도 해야 하잖아요. 정말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가려면 그만큼 준비를 하고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하고는 비교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번에 잠시지만 우체국 일을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신 것인지 소개를 해주시죠?

정진화: 네. 예전에는 편지를 많이 보냈는데 요즘은 이메일을 많이 쓰니까 편지는 적어요. 그런데 대신 물건을 보내잖아요. 직접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수도 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주문도 하고 인터넷 주문을 하는데 그런 짐들을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제가 이번에 해봤습니다.

기자: 집에서 배달 오는 것만 받다가 이제 어떻게 우편물이 분류돼서 가정에 오는지 알게 됐겠군요?

정진화: 네, 북한에서는 구역이라고 하는데 서울에는 북한의 구역에 해당하는 구가 25개가 있는데 총 3개의 우편집중국이 맡아서 우편물을 정리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쌀도 있고 생수도 있고 이맘때는 김장을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배추를 가져다가 집에서 절임부터 해서 김장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생산지에서 절임 배추를 배달합니다. 그런 물건은 무거우니까 앞으로 주문을 할 때 무거운 것은 한 번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 아무래도 무거운 짐을 다루는 일이라 남자들이 많았겠네요?

정진화: 아니요. 저희 팀에는 여자만 있었습니다. 여성만 6명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하필이면 여자의 몸으로 야간에 하는 이런 힘든 일을 하냐? 요즘은 사회복지사도 괜찮고 또 환자나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도 괜찮다더라 했더니 그분들이 자기 적성에는 맞지 않고 밤일이지만 이 일이 편해서 선택했다는 겁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 자체를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서 남한이 참 좋은 세상이다. 그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값진 현장 체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낮에 일하고 밤에 자야 할 텐데 야간 근무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까?

정진화: 낮과 밤이 바뀐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저는 한국에 와서 내년이면 20년이 되는데 한 번도 밤일을 안 했거든요. 이번에 정말 내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간 작업이라 일당을 좀 많이 줬어요.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정말 서울의 밤은 바쁘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 야간 작업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시간대가 어떻게 되는 거죠?

정진화: 저희가 하는 일은 12시부터 아침 7시 20분까지입니다. 가장 달콤한 잠을 잘 시간인데 90분 일하고 30분 휴식을 합니다. 실제 일하는 시간은 5시간 반 정도 되는데 밤일이라 일당을 많이 줬습니다.

기자: 일이 끝나는 시간은 보통 출근이나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 학교 보내야 할 시간이라 여성 분들이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정진화: 네, 그런데 그분들은 애들도 다 커서 사회생활도 하고 평생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일을 한다는 겁니다. 또 젊은 분들도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다른 일보다 일당을 많이 줘서 한다는 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자: 이제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정리를 해 주시죠.

정진화: 사실 북한에 있을 때는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의 목숨은 귀중히 여기지 않고 오직 돈만 귀중히 여긴다는 잘못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온 후 일상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사회보다 더 사람의 목숨을 귀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일했던 작업장만 봐도 일보다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구호가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우편국이다 보니 짐을 운반하는 소형차가 많은데 과속하지 말라, 다른 차를 앞서가지 말라 이런 안전성 구호가 일터 곳곳에 있단 말입니다. 노동장갑, 신발도 공급하고요. 특히 주 5일을 근무하고 2일은 무조건 휴식하는 일정으로 일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북한의 근로자들도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정진화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진화: 네, 고맙습니다.

북 열차방송원의 남한 이야기. 오늘은 연말에 하는 우체국 임시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참여자 정진화, 진행 이진서 에디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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