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뉴저지주 한인 천주교회 박창득 신부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09.09.15
2009.09.15
사진- 박창득 신부 제공
박 신부는 식량지원을 위해 그동안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한편 가톨릭 사제로서 평양의 장충성당 사제관에 상주하며 북한 주민을 사목하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북측 당국의 불허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7순이 넘은 박 신부는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뒤 간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현재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면서 RFA 초대석 회견에 응했습니다.
문: 북측에 있는 분들이 라면식당보다는 라면공장을 세워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창득 신부: 처음에 거기서 제안해서 국수공장 만들었습니다. 94년에 요청받아 95년말에 만들어5,6년 계속하다가 다른 기관에 이양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가톨릭교구에 이양했습니다.
문: 라면공장은 국수공장과 다른 것이겠죠?
박 신부: 다른 거죠. 라면공장을 원래 하려 한 것이 아니고 라면식당 5곳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는 라면 공장을 세우면 좋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와서 제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 라면공장 건립하러 작년에 북한에 들어가 협의했지만 라진 지역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저희 방송에 밝혔었는데요.
박 신부: 일이 안되는게 [북쪽이] 약속을 지키질 않아요. 다섯 곳을 약속하고 여기서 매일 라면 5백봉지를 공급하기로해 한달치를 보냈습니다.그걸 한 곳에 공급하면서 북측에 현장 사진과 시식과 사진찍을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한 군데 데려가더니 그 다음 번에도 같은 곳을 데려가더라구요. 다섯군데 중에 한 군데만 보여줬습니다. 다른 데는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다른 데는 아직 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런 상태라면 제가 계속 후원자들로 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 그러니까 5곳을 개점했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네 군데는 개점이 돼 운영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말이네요.
박 신부: 확인을 못했죠.
문: 라면 식당 원래 취지는 어린아이나 노인 등 어려운 주민을 상대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는데 실제 농촌지역이나 외딴 지역보다는 살기가 낫다는 평양 시내에 북측이 굳이 세워달라고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박 신부: 그 사람들 말과 현실을 보면 물자를 수송하는 기관이 모두 평양에 집중돼 있거든요. 그래서 평양에 설치하면 다른곳에 공급이 가능합니다. 자동차도 없고 휘발유도 없는 그런 어려움 때문에 그런 핑계를 대죠. 사실 지방에 조그마하게 세우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시설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라면공장은 시작하지 않았는데요, 약속을 잘 안 지키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문: 이곳 가톨릭 교계나 그밖에 헌금하는 분들도 라면이 북한에서 수혜자들에게 직접 나눠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겠죠?
박 신부: 물론입니다. 그걸 정확하게 알려주고 사실대로 보여주고 하지않고 어떻게 도움을 청합니까? 어려운 사람들 도와달라고 하는 일인데. 거기서 먹는사람들은 노동자들과 연로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공급하기로 한 것인데 약속을 안 지키니까 못하는 거죠.
문: 박 신부께서 1995년부터 국수공장을 세운 뒤 벌써 15년 가까이 대북 지원을 해 오셨는데요, 건강도 안 좋으시고 북측의 추진도 화답되지 않고하면 결국 앞으로 이런 라면, 국수 등 식량지원 활동 전망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박 신부: 전망은 어렵지만 별 상관은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서서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있어 그렇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다만 연락이나 신용관계만 지켜지면 계속할 수 있습니다.
문: 북한에서 직접 신부님과 함께 논의 협의한 분들은 종교단체 소속인가요?
박 신부: 정부단체나 종교단체라고는 할 수 없고 회사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운영이 불가하기 때문에 솔직히 얘기해서 정부단체라고 봐야죠. 그 내용을 자세히 얘기하면 그분들이 곤란해 집니다.
문: 올 2월에 김수환 추기경님 서거때 추모회에서 추기경님과의 관계를 회고하셨는데요, 평양 국수공장 설립전에 추기경님을 뵙고 도움받으셨고, 추기경께서는 북한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하셨는데요.
박 신부: 애정도 애정이지만 평양교구장 서리직을 맡고 계셨습니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행정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교황청에서 서리직 맡겼고요. 추기경께서 우리 일을 도우고 계셔서 북에 갈 때마다 인사드리고 보고하고 했습니다.
문: 북한에는 장충성당에 사제관이 있지만 상주하는 사제는 없지않습니까? 그래서 박 신부님께서도 2005년 저희와 회견하셨을 때 “북한 지원차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방문 중에 성당 사제관 대신에 호텔에 묵어야 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박 신부: 사제관 제가 입주하기 위해 노력은 많이했지만 안됐습니다. 북한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건데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은 거지요.
문: 북한 당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장충성당 회장이란 분이 2005년도 미국내 친북 언론과 회견에서 북한 천주교에는 3개 지구협회에 500여개 예배처소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러면 1,500여개의 가정 예배 처소가 있다는 얘긴데, 외부 사제를 초빙해 이렇게 많은 처소에서 일년에 한 두번이라도 정식 미사를 드리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얘기도 있는데요.
박 신부: “이북에는 종교체제가 없다, 천주교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없는 것이고, 개신교도 있다지만 실제 없는 거다”라고 비난이 있으니까 북에서 만든 얘깁니다. 가정 예배소, 기도소 5백개가 있다 몇개가 있다 식으로 얘기한 거죠. 아무 근거가 없는 얘깁니다.
문: 대북지원으로 방북하면 늘 거기서 미사를 드렸다고 하셨었죠?
박 신부:네, 가면 꼭 미사를 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그런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북한을 지원하는데는 미국내, 한국내 신자들의 도움이 없으면 못하는 데 도움을 받기위해서는 내가 적어도 여기서 미사는 해야 한다. 미사도 하지 못하면서 지원을 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 그래서 그것만은 보장을 해라.” 그래서 가기만 하면 꼭 미사를 했습니다.
문: 라면 얘기로 돌아가서, 북한에 라면을 기증하겠다는 남쪽 회사가 별로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박 신부: 제가 남한 라면공장 몇 곳을 접촉했었는데 제공가격이 중국것 보다 비싸요. 그리고 중국 라면은 기름기가 많거든요. 북한 사람들은 기름기가 필요해서 중국 라면을 선호하더라구요. 남한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면 몰라도 돈 주고 살 필요는 못느꼈습니다.
문: 라면 식당에 제공한 라면은 포장이 된 완제품입니까?
박 신부: 완제품을 주는 거죠. 식당은 봉지만 뜯어서 물에 삶아 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국수지만 라면과 비슷한 꼬부랑 국수를 만들어 전달하면 훨씬 가격이 저렴하고 많은 양을 제공할 수 있겠다싶어 공장 건립을 생각했습니다. 기계도 알아보고 만드는 곳도 답사했는데 북측이 약속한 것을 이행 안해 다 중지된거죠.
문: 신부님 아픈 사실을 북한 사람들이 알까요?
박 신부: 한 두사람은 알겠죠.
문: 통화나 연락이 돼야 알지 않겠습니까?
박 신부: 간접적으로 연락되는 길 있습니다.
문: 빨리 쾌차하셔서 북한주민 도와주는 활동이 활발하게 돼야 할텐데요.
박 신부: 저를 도와주는 신부님들이 미국에 계십니다. 준비는 돼있습니다. 저쪽에서 연락만 오고 조건만 잘 지켜주면 면 재개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또 남북관계도 풀릴것 같으니 도와 줘야죠.
문: 생각하시는 가장 큰 조건은 어떤 것입니까?
박 신부: 약속 지키는 것이죠. 다른 것 없습니다. 약속지키고, 현장을 보여주고 사진을 찍게하고.그게 조건이죠.
MC: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가톨릭 교계로서는 처음으로14년전 북한 평양에 국수공장을 세웠고 2년전에는 평양에 라면 식당을 열어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어려운 근로자들을 상대로 라면 음식을 제공한 미국 뉴저지주 한인 천주교회의 박창득 신부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
문: 북측에 있는 분들이 라면식당보다는 라면공장을 세워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창득 신부: 처음에 거기서 제안해서 국수공장 만들었습니다. 94년에 요청받아 95년말에 만들어5,6년 계속하다가 다른 기관에 이양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가톨릭교구에 이양했습니다.
문: 라면공장은 국수공장과 다른 것이겠죠?
박 신부: 다른 거죠. 라면공장을 원래 하려 한 것이 아니고 라면식당 5곳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는 라면 공장을 세우면 좋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와서 제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 라면공장 건립하러 작년에 북한에 들어가 협의했지만 라진 지역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저희 방송에 밝혔었는데요.
박 신부: 일이 안되는게 [북쪽이] 약속을 지키질 않아요. 다섯 곳을 약속하고 여기서 매일 라면 5백봉지를 공급하기로해 한달치를 보냈습니다.그걸 한 곳에 공급하면서 북측에 현장 사진과 시식과 사진찍을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한 군데 데려가더니 그 다음 번에도 같은 곳을 데려가더라구요. 다섯군데 중에 한 군데만 보여줬습니다. 다른 데는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다른 데는 아직 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런 상태라면 제가 계속 후원자들로 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 그러니까 5곳을 개점했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네 군데는 개점이 돼 운영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말이네요.
박 신부: 확인을 못했죠.
문: 라면 식당 원래 취지는 어린아이나 노인 등 어려운 주민을 상대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는데 실제 농촌지역이나 외딴 지역보다는 살기가 낫다는 평양 시내에 북측이 굳이 세워달라고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박 신부: 그 사람들 말과 현실을 보면 물자를 수송하는 기관이 모두 평양에 집중돼 있거든요. 그래서 평양에 설치하면 다른곳에 공급이 가능합니다. 자동차도 없고 휘발유도 없는 그런 어려움 때문에 그런 핑계를 대죠. 사실 지방에 조그마하게 세우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시설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라면공장은 시작하지 않았는데요, 약속을 잘 안 지키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문: 이곳 가톨릭 교계나 그밖에 헌금하는 분들도 라면이 북한에서 수혜자들에게 직접 나눠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겠죠?
박 신부: 물론입니다. 그걸 정확하게 알려주고 사실대로 보여주고 하지않고 어떻게 도움을 청합니까? 어려운 사람들 도와달라고 하는 일인데. 거기서 먹는사람들은 노동자들과 연로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조건으로 공급하기로 한 것인데 약속을 안 지키니까 못하는 거죠.
문: 박 신부께서 1995년부터 국수공장을 세운 뒤 벌써 15년 가까이 대북 지원을 해 오셨는데요, 건강도 안 좋으시고 북측의 추진도 화답되지 않고하면 결국 앞으로 이런 라면, 국수 등 식량지원 활동 전망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박 신부: 전망은 어렵지만 별 상관은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서서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있어 그렇게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다만 연락이나 신용관계만 지켜지면 계속할 수 있습니다.
문: 북한에서 직접 신부님과 함께 논의 협의한 분들은 종교단체 소속인가요?
박 신부: 정부단체나 종교단체라고는 할 수 없고 회사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운영이 불가하기 때문에 솔직히 얘기해서 정부단체라고 봐야죠. 그 내용을 자세히 얘기하면 그분들이 곤란해 집니다.
문: 올 2월에 김수환 추기경님 서거때 추모회에서 추기경님과의 관계를 회고하셨는데요, 평양 국수공장 설립전에 추기경님을 뵙고 도움받으셨고, 추기경께서는 북한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하셨는데요.
박 신부: 애정도 애정이지만 평양교구장 서리직을 맡고 계셨습니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행정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교황청에서 서리직 맡겼고요. 추기경께서 우리 일을 도우고 계셔서 북에 갈 때마다 인사드리고 보고하고 했습니다.
문: 북한에는 장충성당에 사제관이 있지만 상주하는 사제는 없지않습니까? 그래서 박 신부님께서도 2005년 저희와 회견하셨을 때 “북한 지원차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방문 중에 성당 사제관 대신에 호텔에 묵어야 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박 신부: 사제관 제가 입주하기 위해 노력은 많이했지만 안됐습니다. 북한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건데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은 거지요.
문: 북한 당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장충성당 회장이란 분이 2005년도 미국내 친북 언론과 회견에서 북한 천주교에는 3개 지구협회에 500여개 예배처소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그러면 1,500여개의 가정 예배 처소가 있다는 얘긴데, 외부 사제를 초빙해 이렇게 많은 처소에서 일년에 한 두번이라도 정식 미사를 드리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얘기도 있는데요.
박 신부: “이북에는 종교체제가 없다, 천주교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없는 것이고, 개신교도 있다지만 실제 없는 거다”라고 비난이 있으니까 북에서 만든 얘깁니다. 가정 예배소, 기도소 5백개가 있다 몇개가 있다 식으로 얘기한 거죠. 아무 근거가 없는 얘깁니다.
문: 대북지원으로 방북하면 늘 거기서 미사를 드렸다고 하셨었죠?
박 신부:네, 가면 꼭 미사를 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그런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북한을 지원하는데는 미국내, 한국내 신자들의 도움이 없으면 못하는 데 도움을 받기위해서는 내가 적어도 여기서 미사는 해야 한다. 미사도 하지 못하면서 지원을 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 그래서 그것만은 보장을 해라.” 그래서 가기만 하면 꼭 미사를 했습니다.
문: 라면 얘기로 돌아가서, 북한에 라면을 기증하겠다는 남쪽 회사가 별로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박 신부: 제가 남한 라면공장 몇 곳을 접촉했었는데 제공가격이 중국것 보다 비싸요. 그리고 중국 라면은 기름기가 많거든요. 북한 사람들은 기름기가 필요해서 중국 라면을 선호하더라구요. 남한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면 몰라도 돈 주고 살 필요는 못느꼈습니다.
문: 라면 식당에 제공한 라면은 포장이 된 완제품입니까?
박 신부: 완제품을 주는 거죠. 식당은 봉지만 뜯어서 물에 삶아 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국수지만 라면과 비슷한 꼬부랑 국수를 만들어 전달하면 훨씬 가격이 저렴하고 많은 양을 제공할 수 있겠다싶어 공장 건립을 생각했습니다. 기계도 알아보고 만드는 곳도 답사했는데 북측이 약속한 것을 이행 안해 다 중지된거죠.
문: 신부님 아픈 사실을 북한 사람들이 알까요?
박 신부: 한 두사람은 알겠죠.
문: 통화나 연락이 돼야 알지 않겠습니까?
박 신부: 간접적으로 연락되는 길 있습니다.
문: 빨리 쾌차하셔서 북한주민 도와주는 활동이 활발하게 돼야 할텐데요.
박 신부: 저를 도와주는 신부님들이 미국에 계십니다. 준비는 돼있습니다. 저쪽에서 연락만 오고 조건만 잘 지켜주면 면 재개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또 남북관계도 풀릴것 같으니 도와 줘야죠.
문: 생각하시는 가장 큰 조건은 어떤 것입니까?
박 신부: 약속 지키는 것이죠. 다른 것 없습니다. 약속지키고, 현장을 보여주고 사진을 찍게하고.그게 조건이죠.
MC: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가톨릭 교계로서는 처음으로14년전 북한 평양에 국수공장을 세웠고 2년전에는 평양에 라면 식당을 열어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어려운 근로자들을 상대로 라면 음식을 제공한 미국 뉴저지주 한인 천주교회의 박창득 신부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