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탈북자 돕는 워싱턴의 김공산 화백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0.12.27
2010.12.27
사진제공-김공산 화백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나이 쉰이 넘어 그림의 세계로 빠진 늦깍이 화백 김공산 씨.
한국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김 씨가 워싱턴의 유명한 미술대학인 ‘코코란 아트 앤 디자인’(Corcoran College of Art & Design)을 작년에 졸업하고 1년여 만에 개인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회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을 주제로 담았습니다.
지금도 중국땅에서 공포속에 숨어지내는 탈북자들과 기근과 압제속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김공산 화백을 전시회 현장에서 만나 봤습니다.
(전시회 축하 기도) 이 작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눈물을 보길 원합니다….
전시회는 축하 기도로 시작됐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공산 화백의 지인들과 교회 신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전시회 한 쪽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중국대사관의 ‘장예수이’ 대사 앞으로 보내는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탄원서입니다. 김공산 화백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김공산 화백: 통일 이후 우리 크리스찬들이 그분들[탈북자]을 어떻게 품어야 될 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탈북민들이 적응이 어려워 이들의 15퍼센트만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탈북 과정에서는 실제 선교사들이 모두 도왔는데 막상 한국에 와서는 교회에서 이들이 시험을 받고 아픔을 겪으며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 교회가 탈북민들을 어떻게 껴안을 것인가까지 생각하며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많이 와주셔 감사합니다. 저쪽에 유인물이 있습니다. 중국 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입니다. 두만강을 건너 탈출한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북송되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는 아시겠죠. 그에 대해 법적으로 중국이 북송 안되게 하도록 탄원하는 것입니다. 오신 분 각자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시면 주미 중국대사관에 보낼 겁니다.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 이번이 첫 개인전인데요, 주제가 한반도 통일,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고통과 같은 무겁고 현안적인 주제를 택하셨는데 왜 그런 주제의 작품을 그리기로 생각하셨습니까?
김: 화가는 역사적으로 시대와 자신을 대변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제 출생을 전후해 아버지가 북한에서 내려와 피난 중인 어머니와 만나 결혼해 저희를 낳으셨습니다. 어렵게 생활 하셨습니다. 아버지 고향이 개성입니다. 어머니는 대구 출신이시고요. 그것이 제 그림에 영향을 미친 것이죠. 내가 이 나이에 이 위치에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제가 가장 아파했던 주제입니다. 한반도 분단이었습니다.
전: 아버님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김: 1.4후퇴 때 월남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었구요. 아버님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는 북한과 모든 게 단절돼 있었습니다. 어릴 때 반공교육 받았고 북한 간첩이 내려오기도 하고. 북한 관련 소식이 방송과 신문에 보도될 때마다 아버님 눈시울은 뜨거워 지고. 아버님 형제들이 모두 내려온 것이 아니라 몇분은 못 나왔습니다. 그걸 생각하시고. 아버님 친척분들 아직 살아있다면 개성에 계실겁니다. 아버님이 아직 살아 계시면 제가 이산가족 교류를 통해 모시고 갔었을 텐데, 일찍 돌아가셨어요.
전: 이 첫 전시회에서 팔리는 미술품의 수익금은 전액은 북한선교단체나 탈북자 지원단체에 전달하신다던데요, 왜 하필 북한선교단체에 지원하시게 됐습니까?
김: 제가 크리스찬입니다. 저는 날 때부터 기독교인입니다. 제 제부도 목사님이고 제 남편도 장로입니다.
전: 탈북자지원단체는 이곳에 있습니까?
김: 여기에도 있지만, 제가 직접 관여하는 단체는 한국에 있는 ‘헌신과 기름부음’이란 단체입니다. D and A, Devotion and Annointing이라고 하는데 북한에 대한 기록영화도 만들었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탈북자들과 대화한 것을 바탕으로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또 연변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에게 돈이나, 먹을 것이나, 약품 등을 필요에 따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북 풍선 날리기를 통해 영양제라든가 성경책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장비도 제공하는 등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수익금도 대부분 거기에 보내 질 것입니다.
전: 추상화를 그리셨는데 탈북자라든가 한반도 통일, 분단 등의 주제는 사실적인 구상화가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왜 추상화로 하셨습니까?
김: 구상화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랏코라는 미국 화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그림에는 형태가 없지만 단순히 색갈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기쁘게도 하고 우울하게도 하고 감동도 시키고. 제 마음에 와 닿아 저의 추상화도 거기에서 시작이 됐습니다.
전: 혹시 북한 화가의 그림을 본 적 있습니까?
김: 네, 여기 버지니아의 기쁜소리방송에서 개최한 전시회 때 봤습니다.
전: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습니까?
김: 완전히 사실적인 산수화였습니다.
전: 화가로서 북한 화가들의 화풍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산수화라도 그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김정일만 그리고 노동현장만 그리라고 했다면 아마 예술가로서는 붓을 꺾고 싶겠죠. 하지만 산수화라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거기 예술가들이 생존할 수 있는 힘이겠죠.
전: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볼 때는 어땠습니까?
김: 솜씨가 너무 좋아요. 한국 사람들 손 재주 있는 것처럼 그분들의 작품이 여기까지 와서 전시될 때는 뛰어난 손재주가 있는 분들이라고 봐야죠.
회견을 마치고 김공산 화백으로부터 전시된 19점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북한주민들의 눈물’, ‘북한 난민들의 눈’물, ‘탈출’,’새 한반도 멀지 않은 곳에’ 라는 제목의 그림들은 수많은 점과 작은 선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정치범수용소 애가’라는 작품 앞에서 발을 띨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푸르고 흰 빗줄기 같은 촛물이 커다란 유리창과 같은 화폭의 아래 위를 흘러내리고 있는 강렬한 느낌을 줬습니다.
김: 제가 초를 태워 만든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초를 태웠습니다. 촛물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수감자를 상징하는 것이죠. 제목이 Elergy of Gulag, ‘정치범수용소의 비가’입니다. 이건 그들을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전: 첫 개인전인데요, 앞으로 자신의 전시회나 다른 전시회에 출품하실 때에도 계속해서 북한, 한반도, 분단, 통일의 주제로 그리실 겁니까?
김: 네. 통일이 될 때까지. 제 마음은 그것으로 꽊 차 있습니다. 정말 통일이 빨리 이뤄지길 바라면서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신 많은 분들이 선교사이고 선교 단체 분들입니다. 이 분들도 북한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주민들의 고통과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그림에 담아 전시회를 연 워싱턴 지역의 화가 김공산 씨를 만나봤습니다.
(전시회 축하 기도) 이 작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눈물을 보길 원합니다….
전시회는 축하 기도로 시작됐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공산 화백의 지인들과 교회 신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전시회 한 쪽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중국대사관의 ‘장예수이’ 대사 앞으로 보내는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탄원서입니다. 김공산 화백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김공산 화백: 통일 이후 우리 크리스찬들이 그분들[탈북자]을 어떻게 품어야 될 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탈북민들이 적응이 어려워 이들의 15퍼센트만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탈북 과정에서는 실제 선교사들이 모두 도왔는데 막상 한국에 와서는 교회에서 이들이 시험을 받고 아픔을 겪으며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 교회가 탈북민들을 어떻게 껴안을 것인가까지 생각하며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많이 와주셔 감사합니다. 저쪽에 유인물이 있습니다. 중국 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입니다. 두만강을 건너 탈출한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북송되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는 아시겠죠. 그에 대해 법적으로 중국이 북송 안되게 하도록 탄원하는 것입니다. 오신 분 각자 이름과 주소를 적어주시면 주미 중국대사관에 보낼 겁니다.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 이번이 첫 개인전인데요, 주제가 한반도 통일,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고통과 같은 무겁고 현안적인 주제를 택하셨는데 왜 그런 주제의 작품을 그리기로 생각하셨습니까?
김: 화가는 역사적으로 시대와 자신을 대변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제 출생을 전후해 아버지가 북한에서 내려와 피난 중인 어머니와 만나 결혼해 저희를 낳으셨습니다. 어렵게 생활 하셨습니다. 아버지 고향이 개성입니다. 어머니는 대구 출신이시고요. 그것이 제 그림에 영향을 미친 것이죠. 내가 이 나이에 이 위치에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제가 가장 아파했던 주제입니다. 한반도 분단이었습니다.
전: 아버님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김: 1.4후퇴 때 월남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었구요. 아버님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는 북한과 모든 게 단절돼 있었습니다. 어릴 때 반공교육 받았고 북한 간첩이 내려오기도 하고. 북한 관련 소식이 방송과 신문에 보도될 때마다 아버님 눈시울은 뜨거워 지고. 아버님 형제들이 모두 내려온 것이 아니라 몇분은 못 나왔습니다. 그걸 생각하시고. 아버님 친척분들 아직 살아있다면 개성에 계실겁니다. 아버님이 아직 살아 계시면 제가 이산가족 교류를 통해 모시고 갔었을 텐데, 일찍 돌아가셨어요.
전: 이 첫 전시회에서 팔리는 미술품의 수익금은 전액은 북한선교단체나 탈북자 지원단체에 전달하신다던데요, 왜 하필 북한선교단체에 지원하시게 됐습니까?
김: 제가 크리스찬입니다. 저는 날 때부터 기독교인입니다. 제 제부도 목사님이고 제 남편도 장로입니다.
전: 탈북자지원단체는 이곳에 있습니까?
김: 여기에도 있지만, 제가 직접 관여하는 단체는 한국에 있는 ‘헌신과 기름부음’이란 단체입니다. D and A, Devotion and Annointing이라고 하는데 북한에 대한 기록영화도 만들었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탈북자들과 대화한 것을 바탕으로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또 연변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에게 돈이나, 먹을 것이나, 약품 등을 필요에 따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북 풍선 날리기를 통해 영양제라든가 성경책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장비도 제공하는 등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수익금도 대부분 거기에 보내 질 것입니다.
전: 추상화를 그리셨는데 탈북자라든가 한반도 통일, 분단 등의 주제는 사실적인 구상화가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왜 추상화로 하셨습니까?
김: 구상화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랏코라는 미국 화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그림에는 형태가 없지만 단순히 색갈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기쁘게도 하고 우울하게도 하고 감동도 시키고. 제 마음에 와 닿아 저의 추상화도 거기에서 시작이 됐습니다.
전: 혹시 북한 화가의 그림을 본 적 있습니까?
김: 네, 여기 버지니아의 기쁜소리방송에서 개최한 전시회 때 봤습니다.
전: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습니까?
김: 완전히 사실적인 산수화였습니다.
전: 화가로서 북한 화가들의 화풍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산수화라도 그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예를 들어 김정일만 그리고 노동현장만 그리라고 했다면 아마 예술가로서는 붓을 꺾고 싶겠죠. 하지만 산수화라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거기 예술가들이 생존할 수 있는 힘이겠죠.
전: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볼 때는 어땠습니까?
김: 솜씨가 너무 좋아요. 한국 사람들 손 재주 있는 것처럼 그분들의 작품이 여기까지 와서 전시될 때는 뛰어난 손재주가 있는 분들이라고 봐야죠.
회견을 마치고 김공산 화백으로부터 전시된 19점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북한주민들의 눈물’, ‘북한 난민들의 눈’물, ‘탈출’,’새 한반도 멀지 않은 곳에’ 라는 제목의 그림들은 수많은 점과 작은 선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정치범수용소 애가’라는 작품 앞에서 발을 띨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푸르고 흰 빗줄기 같은 촛물이 커다란 유리창과 같은 화폭의 아래 위를 흘러내리고 있는 강렬한 느낌을 줬습니다.
김: 제가 초를 태워 만든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초를 태웠습니다. 촛물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수감자를 상징하는 것이죠. 제목이 Elergy of Gulag, ‘정치범수용소의 비가’입니다. 이건 그들을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전: 첫 개인전인데요, 앞으로 자신의 전시회나 다른 전시회에 출품하실 때에도 계속해서 북한, 한반도, 분단, 통일의 주제로 그리실 겁니까?
김: 네. 통일이 될 때까지. 제 마음은 그것으로 꽊 차 있습니다. 정말 통일이 빨리 이뤄지길 바라면서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신 많은 분들이 선교사이고 선교 단체 분들입니다. 이 분들도 북한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북한주민들의 고통과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그림에 담아 전시회를 연 워싱턴 지역의 화가 김공산 씨를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