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미국내 탈북자 쉼터 마련 추진’ 유관일 워싱턴 평통 수석부회장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09.10.19
2009.10.19
PHOTO-유관일 부회장 제공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한국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자문하고 건의하는 기구로
해외 101개국 주요 도시에 협의회가 있으며, 미국에는 워싱턴을 비롯해 15개 협의회가 있습니다.
문: 워싱톤협의회의 주요 활동목표중 하나가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겠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돕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유관일: 미국내 탈북자는 많지는 않습니다. 이쪽지역에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10여명입니다. 미국 전국에는 100여명이 안됩니다. 지금 접촉을 하고 있는데 어느분을 선별할 것이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결정이 되면 현금지원도 가능하지만 그것보다는 여기서 필요한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문: 현찰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게됩니까?
유: 예를 들어서 ‘쉼터’같은 곳을 과거에 만들었었습니다.
문: 쉼터란 어떤 곳입니까?
유: 탈북자들이 당장 도착해서 머물곳이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기거하는 곳인데요 우리가 탈북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 지 상황를 봐서 준비할 계획입니다.
문: 미국내 한인들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 혈육과 만나게 해주는 사업도 협의회 목표에 들어가 있는데요.
유: 13기때 제대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된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14기 현재 새 협의회가 출범하면서 한국에서 이산가족 사업을 어차피 하고 있으니까 여기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협의하기 전에 먼저 미주 한인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 관련단체 샘소리의 스티브 린튼 박사와 관계 회원들과 지난 주에 만났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산가족인 동포들은 노령화 돼가고 있는데 상봉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차석대사였던 신선호 신임대사 를 14기 출범전인 지난 4월에 가서 봤습니다. 사적인 자리였습니다. 당시 북한으로 귀임한 박길연 전 대사도 함께 만났습니다. 가능한 빠른 방법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진전시키고 싶지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추진한다고 해도 북한에서 걸맞는 협조가 와 줘야 하는데 그쪽 반응이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문: 북한 유엔대표부와 연락을 할 때에는 특정 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시합니까 아니면 무조건 일단 만나자고 합니까?
유: 일단 만나자고만 합니다.
문: 그러니까 이산가족 상봉문제 혹은 남북교류 등의 현안을 밝히지 않는 다는 것입니까?
유: 우선 만나자고 제의하면 그쪽에서 만나는 이유를 묻게됩니다. 그런 후에 우리가 밝히는 게 순서입니다. 작년에 박길연 대사를 만났을 때에도 일단 만나서 여러 현안을 얘기했습니다.
문: 당시 얘기한 현안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유: 마침 뉴욕 필하모닉의 로렌 마젤이 평양을 방문하고 온 직후라서 우리가 워싱톤 평통이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유치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수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안될 경우 남북교류음악회라도 열어 북한 성악가 두세명을 초청하고 싶다며 보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쪽에서는 모든 준비가 다 돼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당시 박길연 대사로 부터 남북교류음악회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방미는 쉽지않다고 얘기했습니다.
문: 그 이유를 얘기하던가요?
유: 본인들의 의지만으로 되는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뉴욕이나 다른 도시는 괜찮은데 워싱턴에서 하려면 미국 국무부의 허가를 받지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런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미국 국무부까지 방문했었습니다.
문: 당시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박길연 대사에게 꺼냈었습니까?
유: 그때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북한과 어떻게 하면 교류를 할 수 있을 까에 우선 순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북한을 방문했었습니다만 현안마다 적절한 때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문: 북한은 언제 방문하셨습니까?
유: 2005년입니다.
문: 어떤 자격으로 가셨습니까?
유: 평통위원 자격으로 갔었습니다. 당시 엘에이, 시카고 평통 대표단과 함께 가서 염소와 비료를 전달해 줬습니다.
문: 염소는 몇마리나 전달하셨습니까?
유: 기억은 잘 안납니다만 염소 비료 해서 모두 7만여달러 상당이었습니다.
문: 미국에 있는 한인 동포를 대표해 가신 분들인데 그런 지원활동에 대해 북한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유: 좋아했습니다. 그쪽에서도 친구를 찾을 때 선물을 갔다 주는 법 아니냐 하는 식으로 생각하던 차에 우리가 지원품을 가지고 가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죠.
문: 북한동포지원사업도 워싱턴협의회의 활동목표중 하나인데 2005년 염소와 비료지원 후에도 작년 말에 북한에 사랑의 연탄보내기 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탄공장은 한국에 있다고 들었고요.
유: 그렇습니다.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모아가지고 광명시 평통 협의회와 공동으로 했습니다. 그 외에도 워싱턴 협의회 자체로 북한 아이들 내복, 학용품 등을 재차 방북할 때 전달했습니다.
문: 워싱턴 협의회에서 앞으로 북한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추진할 사업을 다시 정리해 주시죠.
유: 저희가 지금 하고 있지만 재미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서 실현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 예술로 북한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방법을 좀 더 모색하고 싶습니다. 문화예술 교류는 아무래도 정치적인 색갈과 거리가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방북이 뜸했었는데 북한 방문을 자주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간다고 모든게 해결되는 게 아니지만 자꾸 만나다 보면 뭣인가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MC: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지난 7년동안 한국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 위원과 수석부회장으로 대북 지원과 교류사업을 추진해온 유관일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
문: 워싱톤협의회의 주요 활동목표중 하나가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겠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돕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유관일: 미국내 탈북자는 많지는 않습니다. 이쪽지역에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10여명입니다. 미국 전국에는 100여명이 안됩니다. 지금 접촉을 하고 있는데 어느분을 선별할 것이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결정이 되면 현금지원도 가능하지만 그것보다는 여기서 필요한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문: 현찰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게됩니까?
유: 예를 들어서 ‘쉼터’같은 곳을 과거에 만들었었습니다.
문: 쉼터란 어떤 곳입니까?
유: 탈북자들이 당장 도착해서 머물곳이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기거하는 곳인데요 우리가 탈북자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 지 상황를 봐서 준비할 계획입니다.
문: 미국내 한인들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 혈육과 만나게 해주는 사업도 협의회 목표에 들어가 있는데요.
유: 13기때 제대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된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14기 현재 새 협의회가 출범하면서 한국에서 이산가족 사업을 어차피 하고 있으니까 여기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협의하기 전에 먼저 미주 한인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곳 관련단체 샘소리의 스티브 린튼 박사와 관계 회원들과 지난 주에 만났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산가족인 동포들은 노령화 돼가고 있는데 상봉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차석대사였던 신선호 신임대사 를 14기 출범전인 지난 4월에 가서 봤습니다. 사적인 자리였습니다. 당시 북한으로 귀임한 박길연 전 대사도 함께 만났습니다. 가능한 빠른 방법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진전시키고 싶지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추진한다고 해도 북한에서 걸맞는 협조가 와 줘야 하는데 그쪽 반응이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문: 북한 유엔대표부와 연락을 할 때에는 특정 현안을 논의하자고 제시합니까 아니면 무조건 일단 만나자고 합니까?
유: 일단 만나자고만 합니다.
문: 그러니까 이산가족 상봉문제 혹은 남북교류 등의 현안을 밝히지 않는 다는 것입니까?
유: 우선 만나자고 제의하면 그쪽에서 만나는 이유를 묻게됩니다. 그런 후에 우리가 밝히는 게 순서입니다. 작년에 박길연 대사를 만났을 때에도 일단 만나서 여러 현안을 얘기했습니다.
문: 당시 얘기한 현안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유: 마침 뉴욕 필하모닉의 로렌 마젤이 평양을 방문하고 온 직후라서 우리가 워싱톤 평통이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유치하고 싶은데 도움을 줄수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안될 경우 남북교류음악회라도 열어 북한 성악가 두세명을 초청하고 싶다며 보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쪽에서는 모든 준비가 다 돼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당시 박길연 대사로 부터 남북교류음악회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방미는 쉽지않다고 얘기했습니다.
문: 그 이유를 얘기하던가요?
유: 본인들의 의지만으로 되는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뉴욕이나 다른 도시는 괜찮은데 워싱턴에서 하려면 미국 국무부의 허가를 받지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런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미국 국무부까지 방문했었습니다.
문: 당시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박길연 대사에게 꺼냈었습니까?
유: 그때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북한과 어떻게 하면 교류를 할 수 있을 까에 우선 순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북한을 방문했었습니다만 현안마다 적절한 때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문: 북한은 언제 방문하셨습니까?
유: 2005년입니다.
문: 어떤 자격으로 가셨습니까?
유: 평통위원 자격으로 갔었습니다. 당시 엘에이, 시카고 평통 대표단과 함께 가서 염소와 비료를 전달해 줬습니다.
문: 염소는 몇마리나 전달하셨습니까?
유: 기억은 잘 안납니다만 염소 비료 해서 모두 7만여달러 상당이었습니다.
문: 미국에 있는 한인 동포를 대표해 가신 분들인데 그런 지원활동에 대해 북한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유: 좋아했습니다. 그쪽에서도 친구를 찾을 때 선물을 갔다 주는 법 아니냐 하는 식으로 생각하던 차에 우리가 지원품을 가지고 가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죠.
문: 북한동포지원사업도 워싱턴협의회의 활동목표중 하나인데 2005년 염소와 비료지원 후에도 작년 말에 북한에 사랑의 연탄보내기 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탄공장은 한국에 있다고 들었고요.
유: 그렇습니다.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모아가지고 광명시 평통 협의회와 공동으로 했습니다. 그 외에도 워싱턴 협의회 자체로 북한 아이들 내복, 학용품 등을 재차 방북할 때 전달했습니다.
문: 워싱턴 협의회에서 앞으로 북한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추진할 사업을 다시 정리해 주시죠.
유: 저희가 지금 하고 있지만 재미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서 실현되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 예술로 북한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방법을 좀 더 모색하고 싶습니다. 문화예술 교류는 아무래도 정치적인 색갈과 거리가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방북이 뜸했었는데 북한 방문을 자주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간다고 모든게 해결되는 게 아니지만 자꾸 만나다 보면 뭣인가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MC: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지난 7년동안 한국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 위원과 수석부회장으로 대북 지원과 교류사업을 추진해온 유관일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전수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