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회령시 고향 탈북인 김애린 씨의 기독교 접한 이야기 2부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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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회령시 고향 탈북인 김애린 씨의 기독교 접한 이야기 2부 탈북한 중국에서 북한 여성이 성경을 읽는 모습.
/AP

탈북인 김애린 씨는 북한에는 종교가 없으며, 김씨 일가를 대대로 신으로 떠받쳐 오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면서 자신은 두만강을 건너는 어려움 속에 본능적으로 기도라는 걸 하게 됐다고 간증하고,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하나님을 부르게 됐다’라면서 결국 태국에서 한국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를 접하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오늘은 김애린 씨가 어떻게 기독교를 접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질문: 북한에서 배급제도가 중단되던 때의 이야기해 주시지요.

김애린: 저는 2007년에 대한민국 입국했습니다. 제가 이제 북한에서 중학교 올라갈 때쯤에 김일성이 사망하게 됐거든요. 근데 그 당시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 주민들한테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제공했던 배급이라는 제도가 붕괴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그 배급제도가 없어지다 보니까 정말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하나둘 우리 동네 사람들이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탈북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중국으로 가고, 한국으로 가고 그러면서 우리 집도 평범한 집이었기 때문에 그 생활고에서 예외가 될 수가 없었는데요. 저는 그때 정말 학교에 가면서 하루 세 끼를 먹고 학교 다닌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너무너무 경제적으로 되게 힘들었었는데, 그때 제가 딱 한국 드라마를 본 겁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봤는데 대한민국이 너무너무 잘 사는 세상인 거예요. 정말 진짜 힘들게 살 바에야 탈북해서 저런 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는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저에게도 갑자기 탈북을 할 수 있는 우연한 계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내가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 태국 이 두 개 나라 국경을 어렵게 건너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때가 2007년도인데 결국에는 생계형 탈북인 거죠. 먹고 살기 위해서 오게 된 게 2007년에 한국에 오게 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조금 더 내가 일찍 와서 대한민국에 살았으면 더 좋았을 걸,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질문: 북한에서 살 때 기독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김애린: 북한에는 종교가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 자체가 없죠. 김부자 일가를 신으로 떠받드는 나라에서 종교란 있을 수 없는데 사실은 두만강을 건너오면서, 탈북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매우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정말 본능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기도라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나 살려 달라’고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하나님을 부르게 되고, ‘살려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고, 그런데 그러다가 태국에 도착했을 때, 저희에게 잠시 먹고 자는 거처를 마련해 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선교사님, 집사님 이런 분들이었는데, 한국분들이었어요. 그런 분들이 먹을 것을 제공해 주고 잠잘 곳을 제공해 주시면서, 그때 잠시 머물러 있던 곳에서 성경책을 처음 봤고, 성경 공부를 처음 하게 됐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어서 이해는 잘 안 됐는데, 그 당시 제일 뇌리에 박혔던 것이 찬송가였습니다. 찬송가의 그 노래 가사가 저희가 힘들게 살아왔던 그런 마음을 뭔가 동감해 주는 그런 가사였어요. 그래서 뭔가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고 내 마음을 달래 주는 것 같아서 그 가사에 빠져서 자연스럽게 성경 공부도 하게 됐고, 사실 노래가 좋아서 처음에는 하게 됐는데, 그때 선교사님이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제일 먼저 암기를 한 1등 한 사람은 먼저 한국 보내 주겠다고 하셔서 그때 성경을 이해 못 하면서 달달 암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처음으로 교회를 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한국에 와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우연히 가게 됐는데, 마찬가지로 성경이 이해됐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저는 원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이라서, 찬송가의 노래 가사가 너무 좋아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찬송가 때문에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 지금도 찬송가로 유튜브를 하게 되었고요.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어메이싱 그레이스’ 그 찬송을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유튜브에서 아코디언으로 연주를 편곡해서 연주하기도 했었는데 제일 좋아합니다.

질문: 앞으로 찬양 사역자가 되는 게 목표라고요.

김애린: 제가 사실은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 바쁘고, 일하느라고 교회를 그렇게 오래오래 잘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 유튜브를 또 하면서 사실은 앞으로 제 꿈이 찬양 사역 사역자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그래서 이 찬양을 하려면 성경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믿음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믿음이 깊다고는 말씀드리긴 뭐 하지만, 지금 하나하나 공부해 가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이거든요. 찬양하면서 제가 받았던 은혜와 그런 감동을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좀 나누고 싶거든요. 그래서 저는 진짜 하나님이 저를 선택하셔서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 어려운 길을 인도하셔서 제가 여기 대한민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열심히, 진정성 있는 찬양을 불러서 앞으로 찬양 사역자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질문: 북한 동포들에게 다짐은

김애린: 저기 북녘땅에 있는 우리 동포들, 우리 북한 주민들을 누구보다도 기도해 주시고 눈물 흘려 주시고 그러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2,500만 우리 북한 동포들이 예수님 안에서 통일돼서 우리가 하나가 될 때까지, 정말 희망을 가지고 파이팅! 파이팅! 해서 아 진짜 다 같이 주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저는 열심히 찬양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죠.

김애린: 지금까지는 제가 찬양곡을 아코디언으로 연주도 하고, 기타 연주하면서 노래도 하지만, 특히 아코디언으로 그냥 연주만 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일일이 편곡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곡들을 좀 더 은혜롭게 들려줄 수 있도록 할까 해서 악보를 써서 편곡해서 연주곡으로 들려주기도 하는데, 앞으로는 제 목표가 기회가 된다면 실용음악을 전문으로 배워서 작곡가가 되고 싶거든요. 그래서 찬양곡을 제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런 준비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요. 지금은 있는 노래를 가져다가 연습해 영상을 올리지만, 앞으로는 제가 조금 이런 것들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직접 찬양을 작곡해서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찬양사역자로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 이제 여러 가지로 노력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까? 정말 우리 북한 동포 2,500만의 우리 동포들도 정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 다 함께 만나는 그날까지 희망을 꼭 붙들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탈북인 김애린 씨가 어떻게 기독교를 접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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