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RFA 초대석,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1년 반동안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사회의 직장에서 업무도 익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른바 WEST 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인데요, 이 프로그램의 유학생의 한 사람으로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지난 해 8월부터 6개월 간 인턴기자로 활약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반 학생인 박주현씨.

방송국의 선배 기자들처럼 직접 취재도 하고 기사를 제작하면서 방송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 박주현씨는 자유아시아방송의 수습기자로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경험은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연수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박주현씨를 만나 봤습니다.
전: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반 년 동안 일하면서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능력도 있어 우리 방송국에서는 지금까지 일한 웨스트 프로그램 수습기자 가운데 가장 많은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청취자들을 위해 어떤 취재를 하셨는지 소개해 주시죠?
박: 취재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게 두 건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 인터넷사용자유보고서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북한의 인터넷 실태는 그 조사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라는 인권감시단체에서 북한의 인권탄압이 세계 최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행사를 취재한 것이고요. 그리고 제 전공이 법학이라서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작년에 연장된 데 즈음해 두 편에 걸쳐 선배기자와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전: 북한인권법은 미국에서 2004년 10월 법으로 제정 시행한지 8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 기획보도의 주요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박: 이번에 연장돼 시행중인 북한인권법의 주요 내용에는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간 단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돼 미국정부가 중국의 탈북자 북송을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또 탈북자들의 미국 정착을 많이 장려하는 것이 포함됐습니다.
전: 그러니까 난민 지위를 받는 탈북자들이 정식으로 미국에 정착하는 걸 돕자는 내용이군요.
박: 그렇습니다.
전: 한국 이화여자대학 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이라고 하셨는데요, 북한인권이나 북한인권법에 대해 깊게 공부하진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방송국에서 일하시면서 북한인권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거나 눈을 뜬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박: 학교 다니면서 북한과 인권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것은 제가 북한을 가깝게 느끼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얘기는 많이 들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죠. 북한의 인권탄압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설마 그럴까? 혹은 진짜라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여기 와서 탈북자 분들도 만나고 제 또래의 탈북자 친구도 생기면서 그런 얘길 들으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구의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인권이 정말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고 남의 일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안이 됐고 이와 관련해 저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보도와 연구소 자료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주현씨가 이런 보도와 자료를 보고 북한인권 문제 중에 ‘가장 가슴이 아프다,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 인권탄압사례는 어떤 것입니까?
박: 인권문제의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치범수용소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당국의 탄압과는 다르지만 관심이 없어 야기되는 배고픔의 문제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전: 그렇죠. 식량권 차원에서도 분명 기본인권이죠.
박: 그렇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이거든요. 무얼 해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먹는 게 충족이 안 된다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믿기지 않습니다. 사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배고파서 죽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전: 한국의 경우 경제 10위권의 대국이니까 먹지 못하는 걱정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살 빼느라고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하죠.
박주현씨 매일 아침 마다 한국 통일부에서 수집한 한국 언론의 북한관련 기사를 모아 우리 기자들에게 보내주곤 하셨는데요 북한에 관한 기사가 그렇게 매일 많이 쏟아져 나오는 데 대해 놀라지 않았습니까?
박: 네. 저도 사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북한 기사를 일부로 찾아 읽는 정도는 아니어서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북한관련 기사를 모으다 보니까 정말 놀랐습니다. 어떤 신문사는 홈페이지에 북한난이 따로 있을 정도로 북한 기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 아마 그래서인지 대통령선거 때만 해도 북한문제, 특히 대북지원이나 핵 문제 등이 크게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인권에 대해 눈을 뜨셨다고 했는데 경제문제나 대외관계 등 전반적인 북한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배운 게 있을 것 같습니다.
박: 네.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들어서면서 북한에서 경제 쪽으로 개방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신기하기도 하고 북한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이 어찌 생각하면 북한이 맞고 있는 변화의 시기에 자유아시아방송의 인턴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만큼 더 배울 게 많았다는 점에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근데 여기에서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을 만나 보면서 그런 북한의 경제개혁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북한 정권이 주민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기개발이나 미사일 시험에만 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경제개혁을 해서 북한 주민들을 굶어 죽지 않게 하고 배부르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경제개혁 움직임이 신기했지만 많은 전문가의 생각처럼 저도 이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전: 여기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탈북자 분들과 또래의 친구 탈북자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박: 그 친구는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에 살고 있는 탈북자인데요, 저는 그 친구가 처음에는 탈북자인줄 몰랐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는 어머니와 연락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엄마랑 연락을 못한다는 것일까? 그랬더니 자기는 북한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정말 충격 받았습니다. 제가 탈북자는 처음으로 만난 것이고 탈북자 얘기도 역시 처음 들은 것이었거든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 그 친구는 어떻게 해서 미국에 오게 됐습니까?
박: 열 세 살 때 외삼촌과 같이 강을 건넜다고 하더라고요. 그 나이에 저는 친구들이랑 놀기에 정신이 없었는데요. 엄마와 가족을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친구. 연락조차 못하고 생사조차 모른다는 걸 들었을 때 울지 않으려고 많이 참았습니다.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 박주현씨는 한국에 부모님, 형제들 모두 있으니 일상적으로 연락을 하는데 친구 탈북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가 마음이 아팠다는 말씀이군요.
박: 네.
전: 수습기자 일을 마치고 돌아가시는데 돌아간 뒤에는 졸업을 해야 하죠?
박: 네. 한 학기 남았습니다. 세 달 정도 학교를 다니면 졸업입니다.
전: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박: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여기서 인턴을 했던 경험을 살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학원에 가서 북한에 관한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이런 나라들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다루는 기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한국 대학생들이 1년 반동안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사회의 직장에서 업무도 익히는 이른바 WEST어학취업연수 프로그램의 유학생으로 지난 반 년동안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인턴 기자로 활약한 박주현씨를 만나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