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 아버지 시게루 씨 딸 결국 못 보고 타계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6-2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2006년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납북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왼쪽)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 강당에서 납북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왼쪽)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에 납북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 씨의 부친 ‘요코다 시게루’ 씨가 결국 생전에 딸을 만나보지 못하고 지난 6월 5일 별세했습니다. 시게루 씨가 별세했지만, 남은 시게루 씨 가족을 비롯해 일본의 인권단체들은 기어이 요코다 메구미 씨가 꼭 가족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운동 계속해 펼칠 것을 다짐했다고 조총련 북송사업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 씨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와 부친 시게루 씨 별세와 관련한 소식을 가와사키 에이코 씨와 이야기 나눕니다.

요코다 메구미 씨의 부친 요코다 시게루 씨가 지난 6월 5일 별세 하셨다고요. 일본 반응은 어떻습니까?

에이코: 다 굉장히 비통해하지요. 실지 그 딸이 북한에 13살 때 납치당했거든요. 그렇게해서 20년 동안은 몰랐었어요. 북한이 납치해 간것도 몰랐었는데 20년이 지난 다음에 알았거든요. 그 다음부터는 납치피해자가족회를 조직하고 가족회 회장으로 아버지가 활동을 시작했지요. 이분들은 아버지 한분 만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온 가족이 활동에 대단히 열성이었어요. 그런데 끝내 그 아버지가 돌아갈 때(별세)까지 만나 보지 못했거든요. 그것도 아버지가 젊어서 돌아간 게 아니고, 87살이라는 고령이 될 때까지 못 만나봤으니까? 그 가족들은 물론, 온 일본 사람들이 비통해해요.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 정말 격분을 금치 못하고 며칠 동안은 그 보도가 계속됐었어요.

지난 1977년 11월 15일이지요. 요코다 메구미 씨 납치 당시의 이야기 들려주시지요.

에이코: 북한의 어느 특정한 사람이라던가 어느 조직이라던가 그런 거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의해서 납치 되었다는 것만 알고, 납치되었을 때 당시 13살이 없어요. 13살인데 학교에서 체육 연습을 하다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납치됐거든요. 그렇게 해서 일본 정부도 그렇지만 가족들도 딸이 그렇게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거는 상상도 못 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행방불명의 상태에서 20년 동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그 후에 알게 됐지요.

메구미 씨가 북한에 납치된 것 어떻게 알려지게 됐습니까?

에이코: 북한에 의한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때 범인 두 명 중 남자는 죽고 여자가 체포됐잖아요. 김현희라고, 그 여자에 의해서 알려졌어요. 그 여자를 신문하는 과정에 자기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준 게 일본에서 납치되어 온 사람이고, 자기 담당 아니었지만, 요고다 메구미를 만났었다고, 자기가요. 만났었는데 북한에서 살아 있다고 그래서 알았어요.

시게루 씨가 딸 송환을 위해 1997년에 ‘납치 피해자 가족회’ 창립한 이후 일본과 해외에서 활동 한 이야기 들려주시지요.

에이코: 그러니까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회도 하고, 어쨌든 납치피해자가족회 활동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부인과 계속 같이 다니면서 강연회도 하고, 미국 대통령도 만나러 갔잖아요. 미국 대통령도 만나고 저도 해마다 일본 국가가 조직한 가족회 쪽으로 활동하고, 어쨌든 평생을 딸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죽을 때까지 딸을 찾기 위한 활동을 계속 한 분이에요. 영화도 찍고 각종 최신 미디어와 출판물을 이용해서 활동을 계속해 왔어요. 제가 2014년인가 스위치에 갔었는데 같은 시기에 제네바 유엔 사무국에도 갔었고요. 그다음 한 번은 시게루 씨 아들이지요. 메구미 동생하고 같이 제네바에 가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기자 회견 한 적도 있어요. 거기서도 납치 피해자들을 구출하기 위한 활동을 했으며 현재도 계속하고 있지요.

요코다 메구미 씨 일본 가족들 이야기 도 전해 주시지요.

에이코: 가족들이 상당히 진지한 분들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러고 동생은 쌍둥이예요. 쌍둥이인데 동생도 그러고 정말 그 납치된 가족(요코다 메구미)을 되찾기 위한 활동에 적당히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목숨 걸고 활동을 했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만나서 한마디 말을 나누어 봐도,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있구나 하는 거를 절절하게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북한 인권 문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잖아요. 만나면 일이 잘되길 바라며 끝까지 같이 해보자고 서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 납치문제 활동하다 보면 지칠 데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분들의 가족은 부모님들이나 동생이나 지친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진지한 모습으로 내가 일본 국회에서도 같이 기자회견도 하고 여기저기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 때 봐도 정말 똑바로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전선에 섰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돌아가셨을 때 일본의 온 사회가 그분 돌아가신 것에 대해 상당히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요코다 메구미 씨 일본 가족들은 메구미 씨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보고 송환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에이코: 북한 정부에서는 메구미는 죽었다고 통보했잖아요. 통보했었습니다만, 그 유골이라고 보내온 것이 본인의 것이 아닌 거로 판명이 됐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완전히 속이고 있다고 그러기 때문에 가족들은 살아 있다 믿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계기로 어머니와 동생도 더욱더 열심히 활동할 것을 맹세했고요. 일본 국민들에게도 같이 해 달라는 호소를 했습니다. 또 여러 단체는 각자가 기자회견도 하고, 담화도 발표도 하고 모두가 결심을 같이해서 꼭 이 문제를,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가 큰 문제이거든요. 아주 큰 문제기 때문에 이번에 요코다 시게루 씨가 돌아가신 것으로 해서 한 번 또 용기를 내서 다시 모든 힘을 합해서 이 문제 해결해 같이 전진해 나가자고 결심을 다지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납북자들에 관한 소식 들은 적 있습니까?

에이코: 북한에 있어도 북한은 정보가 다 통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정보가 상당히 통제돼 있습니다만, 좀 유력한 선을 가지고 있으면, 평양에서 일어난, 정부에서 일어난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인차 인편으로 알게 돼요. 인차 인편의 정보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더해서 입수할 수 있는데 얼마나 입단속을 심하게 했는지, 납치 문제만은 일본에 올 때까지 몰랐어요. 일본에 와서 보니까 제가 알고 있던 곳 바로 거기가 납치 피해자들이 사는데였어요.

RFA 초대석 오늘은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 씨와 부친 시게루 씨 별세와 관련한 소식을 가와사키 에이코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