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50]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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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일본의 언론기관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북한 시장 동영상: 생활용품, 식료품, 의류 쌓아놓고 파는 상인, 흥정하는 주민들 모습)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서 '북한 동영상'을 치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북한 시장을 촬영한 동영상입니다. 여러 가지 생활용품과 식료품, 의류 등을 쌓아 놓고 파는 상인들과 물건을 고르는 주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시장 동영상은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구경하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북한이 외부로부터 스스로 고립시키고 내부의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고 단속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동토의 땅에 북한 사람이 북한의 모습을 몰래 영상으로 찍어 외부에 공개하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에 탄력을 준 계기는 일본의 언론기관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가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취재하던 중 알게 된 탈북자였습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1993년부터 국경지대를 70차례 이상 샅샅이 답사하고, 1,000명에 가까운 북한사람을 취재하며 많은 소식통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 탈북자 친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국경지대에서 아무리 북한을 봐야 실상을 알 수 없다"라고요. 비디오카메라를 주면 북한에 들어가서 찍어오겠다고 했습니다.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1998년도에 북한에 가서 찍어왔습니다. 안 철이라는 친구인데,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아의 실상을 촬영한 영상을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낟알을 주워 먹거나, 장마당, 암시장, 꽃제비 아이의 모습. 이런 식으로 북한 사람하고 협조하면서 취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외국인은 한도가 있어서 열심히 해도 안 됩니다. 내부 사람과 한 팀을 구성해서 취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며, 북한 사람 스스로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실상을 스스로 기록하는 그런 시대가 온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기자의 육성, 북한 내부의 저널리즘, 이것을 육성하는 사업 자체가 이 시대의 요구가 아닌가?"해서 2004년부터 북한 사람 스스로가 취재하는 저널리스트를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시마루 씨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한국 속담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좌파 학생운동의 막내세대로, 80년대 말에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이시마루 씨는 88 서울올림픽 무렵의 한국의 발전상과 일본에 있을 때 언론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독재에 억압당하는 비참한 한국 민중의 생활' 간의 거대한 괴리를 목도하면서 편향된 정보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 현재 아시아프레스의 북한팀은 일본 오사카에 거점을 갖고 있는데요, 일본인은 저 밖에 없습니다. 한국인, 중국조선족, 재일한국인이 일본 본사에 있고, 중국 연변지역과 압록강 지역에 조선족 직원이 있습니다. 북한 내부에는 대략 10명 정도 우리 파트너들이 있고. 실제 취재활동을 하는 사람은 6명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supporter, 그러니까 직접 취재는 하지 않지만 연락하고 내부에서 찍은 필름을 갖고 중국으로 나오거나 협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 북한팀이 만든 잡지가 바로 2007년 창간된 '림진강'입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의견을 바깥세상에 들려주고자 만든 이 잡지는 일본과 남한에서 이미 4호를 발행했고, 최근에는 영문판도 냈습니다.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일 년에 최소 4차례 잡지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잡지에 소개된 가명을 쓰는 북한 언론인은 중앙 기업소 책임간부인 계명빈 씨, 30대의 교원인 공영길 씨, 외화벌이 회사 노동자인 류경원 씨, 북한 최초로 필명을 외부에 공개한 언론인 이 준 씨, 평안도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백 향 씨, 함경남도에 사는 30대 신도석 씨 등입니다. 이들이 생생하게 전달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은 예전의 국가나 당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그들이 아닙니다.

이시마루 지로

: 지금 북한경제는 파탄상태입니다. 국영기업도 80%가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합니다. 전에는 국가가 배급제로 쌀을 주면서 '국가가 쌀을 줄 테니 말 들어라' 라는 체제에서 살아왔는데, 지금은 자기가 움직이면서 장사하면서 먹고 살거든요. 이 때문에 경제 시스템도 많이 변했고, 북한의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는 거의 사라졌어요. 와해된 셈이죠. 대신 시장경제가 많이 발달하면서 북한체제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여러 주요요소가 많이 무너졌습니다.

'림진강' 1호에 나온 기사를 보면 마치 자본주의 초기 단계의 발전 과정을 겪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청년동맹이 태권도 경기대회를 위해 청년학생들에게 단체복 준비를 요구하면 이 정보를 입수한 여자 상인이 국경도시의 상인에게 원단을 주문합니다. 입수된 천을 고용한 주민에게 재단시키고, 재단된 천을 개인 재봉공에게 맡겨 제품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권도복을 넘겨받으러 온 상인에게 즉석에서 얼마, 후불 얼마로 다 나누어 주면 태권도복은 장마당으로, 집집으로, 구석구석 퍼져 나간다는 겁니다. 이런 시장경제는 주택 등을 매매하고 임대하는 부동산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이시마루 씨는 말합니다.


이시마루 지로

: 시장경제가 확대하면서 북한에서 사회주의식 통제의 기본이었던 노동시장까지, 즉 북한식 노동관리가 무너지는 현장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장마당만 보면 알 수 없습니다. 사회구조 자체가 시장경제에 포섭되면서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상과 의식도 변화할 수밖에 없죠.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도 많이 희박해지고. 그런 시장경제 확대 때문에 생긴 북한 사회, 북한식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가 지금 생기고 있습니다.

북한에 들어서는 이 새로운 사회가 김일성에서 김정일, 다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째 권력 세습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시마루 씨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듭니다.

이시마루 지로

: 김정은은 군, 정부, 당의 지위도 계승해야지만, 김정일의 비자금도 계승해야겠죠. 그리고 김정은이 운명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것은 80%가 무너진 국영산업, 외국 부채, 파산상태의 국가경제입니다. 배고프고 불만이 폭발 직전인 2,300만 주민도 계승해야합니다. 정치가로서 너무 어렵습니다. 아버지라면 이런 자리를 아들에게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전한 자리를 주고 싶겠죠. 북한 정권이 여유가 있다면, 아들에게 정치는 관련시키지 말고, 체제유지를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겠죠? 그러나 지금의 북한 지배층이 권력층 외에 지식인 키우고 정치에 관여하게 할 여유가 없어서, 자기 아들을 그런 자리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만큼 북한체제가 많이 약화되고 여유가 없다고 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김정은 시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