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44] 미국 비영리 단체 중국구호협회의 밥 푸(Bob Fu)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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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 내 비영리 단체인 중국구호협회의 밥 푸 대표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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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구호협회의 밥 푸 대표. - PHOTO courtesy of chinaaid.org (PHOTO courtesy of chinaaid.org)

(중국 천안문 사태 BBC 현장 기자 보도)

총소리가 베이징 도심 곳곳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총소리는 연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노한 시민은 천안문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로에 서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펑펑 터지는 총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들은 멀리서 시위대를 진압하는 군 차량에 불이 붙자 환호합니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산둥성에 있는 랴오청대학교 학생회 지도자였던 밥 푸 씨는 이날 죽고 싶었습니다. 우상이다시피 했던 인민의 군대가 천안문 광장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던 인민에게 전차와 장갑차로 발포하고, 절친한 동료가 자기만 살겠다고 배반해 곤경에 처하면서 국가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던 겁니다.

푸 씨는 그러나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종교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한 때 인간 폭탄이 돼 동료를 살해할 궁리까지 했던 푸 씨에게 기독교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절망에 빠졌던 주변의 대학생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해주면서 푸 씨는 어느새 가정교회의 지도자로 우뚝 서갔습니다. 그러다 1996년 전격적으로 체포됩니다. '불법전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 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개입으로 홍콩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2002년 가정교회의 탄압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는 '중국구호협회'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Bob Fu

: When I was approached by some South Korean pastors who were asking me to join a coalition to advocate for the North Korean Freedom Act...

(더빙)

어느 날 한국인 목사 몇 명이 저를 찾아와서는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게 2003년께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기독교 탄압을 다루다 보니, 중국과 국경을 접한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일반 북한 주민이 겪는 고통 위에 종교적인 핍박이라는 공포까지 더해져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힘쓰지 않을 수 있습니까? 미국 의회와 유엔 기구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기나긴 노력 끝에 '북한인권법안'은 2004년 9월 28일 상원을 통과했고, 같은 해 10월 4일 하원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이주일 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공식 발효됐습니다. 이 법에 의거해, 탈북자 6명이 동남아 제3국을 거쳐 2006년 5월 5일 밤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해, 망명을 직접 허용한 첫 사례였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미국 행정부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지 2년이 넘도록 탈북자 망명을 허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탈북자의 미국행은 당사자인 북한과 탈북자 북송원칙을 고수해온 중국을 자극해, 앞으로 한반도 안보정세에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 재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의외의 물꼬를 터뜨린 곳은 미국 중서부 텍사스 주의 유전 지대인 미드랜드였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고향인 미드랜드에 본부를 둔 중국구호협회가 몇 년간 긴밀히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미드랜드 교계연합'을 설득했고, 이 기독교 단체는 탈북자 6명의 사연이 담긴 편지를 2006년 3월 말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은 부시 대통령은 '그들을 즉시 데려오라'고 지시했고, 중국 땅에서 방황하던 이들은 마침내 같은 해 5월 미국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신요셉, 한나, 나오미 씨 등 탈북자 6명이 미국에 입국하고 나서 두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 미드랜드를 방문해 감사 표시를 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당시 미드랜드를 방문했던 탈북자들의 말, 잠시 들어보시죠.

신요셉

: 아직 꿈같고요,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보고 듣고,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것을 더 느끼겠지만 저희를 받아준 미국 사회에 실망을 끼치지 않고 열심히 첫발을 내딛겠습니다.

나오미

: 미드랜드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에) 가게 되면 내일부터 출근합니다. 손톱을 손질하는 네일 가게인데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직업까지 잡았으니까 아주 기쁩니다.

한나

: 난민프로그램 따라 영어도 배웠고 이제 의료 보험 카드가 나온 상태입니다. 우선은 치료받으면서 부동산 학교에 가기로 했어요. 미국이란 나라가 생각보다는 참 좋은 나라입니다. 왜냐면 인민의 인권이 보장돼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어떨 때는 외국에 나와서 산다는 감이 전혀 없어요.

푸 씨는 특히 북한을 탈출해 제3국으로 가려는 탈북자들을 돕는 중국 내 가정교회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들랜드를 방문한 탈북자 6명도 중국 내 가정교회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았습니다. 푸 씨는 3년 뒤인 2009년 중국 당국이 탈북자의 한국행을 돕는 일을 포함해 여러 구호활동을 한 중국인 기독교인 2명을 체포하자, 국제사회를 통해 중국 정부가 이들을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Bob Fu

: We not only reported about it as an advocacy effort but also provided human rights lawyers to defend for them in courts. I believe that's the first case...

(더빙)

중국구호협회는 이들을 옹호하는 노력으로 이 사건을 알리는 동시에, 인권변호사를 고용해 중국 법원에서 이들을 변호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탈북자를 돕다 잡힌 중국인들을 지원한 첫 사례였습니다. 불행히도 중국 법원은 중국공산당을 포함한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운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계 기독교인 두 사람은 재판을 통해 징역 7년형에 2만 위안의 벌금형, 징역 10년형에 3만 위안의 벌금형을 각각 선고받았습니다. 부당한 처벌을 받아 분노하지만, 적어도 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탈북자를 돕는 중국 내 기독교인의 활동에 눈을 뜨게 됐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푸 씨는 최근 중국 내에 비밀 탈북자 쉼터와 몇 개의 고아시설에 음식과 의약품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굳이 현장 구호활동을 하려는 이유를 물으니, 푸 씨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중국 한족인 자신이나 한민족인 탈북자나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는 모두 형제자매, 한 가족과 같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탈북자가 아프면, 그리고 중국 내 기독교인이 아프면 자신도 아프다는 푸 씨. 이 동병상련의 아픔이 끝날 그날을 위해 푸 씨는 오늘도 뛰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중국구호협회의 밥 푸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