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 의회 내 인권 위원회 공동 의장인 프랭크 울프 연방 하원의원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미국 연방하원 프랭크 울프 의원은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필라델피아는 헬라어로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와 형제를 의미하는 '아델포스'가 합쳐진 복합 명사로 '형제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필라델피아는 또 '자유, 독립, 정의'를 상징합니다. 미국의 권리장전이 이곳에서 만들어졌고 독립선언을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울프 의원이 지금까지 15선 관록의 연방하원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버지니아 주 10 선거구뿐 아니라 지역구 바깥과 세계의 형제자매를 배려하고, 자유, 독립,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가로 존경받는 데는 필라델피아 출신이 갖는 자부심이 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울프 의원이 막상 인권 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81년 연방하원 의원에 선출되고 나서도 3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물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미국 육군에서 보충병으로 근무한 뒤, 변호사로 일했기에 인권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권 문제를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고 울프 의원은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회견에서 말했습니다.
Frank Wolf
: The whole issue of human rights became an issue after I took a trip to Romania 1984...
(더빙) 제반 인권 문제가 제게 크게 다가온 것은 제가 1984년에 루마니아를 방문하고 나서였습니다. 루마니아는 당시 차우셰스쿠 정부 아래 신음하고 있었는데, 종교적 신념을 지킨 사람은 박해당했고 여러 종류의 심각한 인권탄압도 있었습니다. 비밀경찰이 주민을 체포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또 교회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암담한 상황 그 자체였습니다. 그 여행을 통해 인권과 종교의 자유문제에 관한 일차적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울프 의원의 일차적 관심은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공산권인 중국이 티베트인을 탄압한 데 대해, 인도네시아의 철권통치를 받으며 많은 주민이 인권유린을 당했던 동티모르에 대해, 러시아가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인의 인권을 침해한 데 대해,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이 이슬람 주민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 인종과 종교, 사상적 갈등에 의해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리는 수단에 대해, 울프 의원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나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울프 의원의 관심은 자연스레 중국과 국경을 맞댄 북한의 인권 문제로 옮겨졌습니다. 북한의 인권 환경이 기독교인을 처형하고 강제로 수용했던 루마니아보다 나빴으면 나빴지 못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결론을 바탕으로 울프 의원은 2004년 미국 의회 차원에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일에 앞장서고, 하원 세출소위원회 위원장으로 미국 국무부가 우선순위를 두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루라고 촉구하고, 2005년 민주당의 탐 랜토스 고 하원의원과 북한을 포함한 독재국가를 겨냥해 ‘민주주의 증진법안’을 제출하는 등 미국 의회 내 북한의 인권 개선의 최전방을 지키게 됩니다.
Frank Wolf
: We have been able to establish the Human Rights Commission, the Human Rights Ambassador, we've got a number of hearings..
(더빙) 미국 의회 내에 인권위원회를 만들고, 국무부 내에 북한인권특사를 신설하고, 북한의 인권을 주제로 한 의회 청문회를 수차례 열었습니다. 이런 게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과 종교 자유를 위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 멉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뛰다보니 미국과 세계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개인에게 주는 ‘월터 저드 자유상’을 받는가 하면, 하원 인권위원회에서 공동의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북한 인권 운동의 ‘대모’라고 불리는 수전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는 아예 대놓고 울프 의원을 자신의 ‘우상’이라고까지 부릅니다. 아무리 의정 일정이 빡빡해도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연방 의회를 방문하면 꼭 만나 탈북자의 손을 잡고 북한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를 도운 혐의로 2005년 미국 시민권자인 재미 한인 윤요한 목사가 중국 감옥에 수감되자, 윤 목사의 구명운동에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하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탈북자의 강제송환을 비롯한 중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자, 항의편지를 보내고 기자회견을 통해 강하게 반발하는 일도 울프 의원의 몫이었습니다. 지난 7월 탈북자 구출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민간단체인 ‘북한 인권을 위한 미주한인교회연합 (KCC)'이 워싱턴 횃불대회를 열 때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오마바 행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주문한 정치인도 울프 의원이었습니다.
Frank Wolf
: I have been quite disappointing quite frankly with the failure of the Obama administration to advocate publicly for human rights...
(더빙) 솔직히 말해서 저는 오바마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북한의 인권과 종교적 자유를 위해 뛰지 않아 상당히 실망하고 있습니다. 로널드 레인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7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행한 연설에서 “자유는 번영에 이르게 하고, 자유는 국가 간의 오래된 증오를 일치와 평화로 바꾸어주므로 자유가 승자입니다. 당신이 평화를 찾고, 소련의 번영을 추구한다면 이리로 와서 이 문을 열어주시오! 고르바초프 씨,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려 주시오(tear down this wall)”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 역시 북한 땅에 자유가 이뤄지는 날을 조만간 볼 겁니다. 이를 위해 저는 미국 의회에서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실한 장로교 신자인 울프 의원은 마지막으로 북한 청취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면서, 딱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Frank Wolf
: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are praying for the end of Communism and for freedom to come to North Korea...
(더빙) 많은 사람이 북한에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유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0년에 독일에서 열린 회의에서 나이가 꽤 든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이 할머니는 대뜸 제게 물었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를 아느냐고요. 저는 ‘레이건 대통령과 크루즈 미사일 덕분’이라고 답했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공산주의가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라고요. 아십니까? 1986년에 공산주의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일이 북한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 년 안에 일어날 수 도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프랭크 울프 연방 하원의원을 만나봤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명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