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34] 헬렌-루이즈 헌터 전 CIA 북한담당 수석분석가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06.22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그리고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헬렌-루이즈 헌터 전 미국 중앙정보부 북한담당 수석분석가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정보국의 밀실보다는 교외 지역의 사교적 모임에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이는 전통적으로 얌전히 차려입은 중년여성.”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이 1980년 북한을 방문하기에 앞서 미국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북한과 관련한 브리핑, 즉 설명을 들을 때,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했던 미국 중앙정보국의 헬렌-루이즈 헌터 북한 담당 수석분석가에게서 받은 첫인상입니다.

하지만, 국무부와 국방부 관계자에 이어 헌터 씨가 솔라즈 의원에게 북한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자, 솔라즈 의원은 자신의 첫인상이 틀렸다는 것을 곧 알았차렸습니다. 그때까지 20년 가까이 미국 의회에 몸을 담으면서 셀 수도 없이 세계 각 나라에 관한 기밀 보고를 받았지만, 헌터 씨의 보고처럼 북한 사회를 치밀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몇 달 뒤 미국 의원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고 돌아온 솔라즈 전 위원장은 헌터 씨를 다시 만나 자신의 북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방북 전 브리핑이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헌터 씨는 몇 년 전 시작한 북한 연구 사업을 막 마무리 짓고 있을 때였습니다.

Helen-Louise Hunter: (They always had in mind that I would do some longer-term exhaustive study on North Korea because we really knew so little about the country...)

"중앙정보부는 제가 장차 북한에 관해 장기간에 걸쳐 철저한 연구를 하는 방안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미국이 북한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70년 말에 이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여러 좋은 토양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1978년에 미국에 망명한 북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영어를 무척 잘 했는데요, 외교 관련 분야에서 근무하다 스위스에서 망명신청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의 최고 교육을 받은 사람을 직접 만나기가 어려운 때였는데요, 저는 정보국의 정치 분석가 자격으로 이 외교관과 오랫동안 면담할 기회를 가졌고, 그를 통해 북한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대부분 군사문제나 경제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북한 연구에 북한사회가 정말로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정보가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북한을 방문한 외교관, 기술자, 사업가, 언론인, 국제 무역대표단, 북한에 친지가 있는 일본 내 한국인 등 다양한 형태로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관찰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한 고위 탈북자까지 등장하자, 헌터 씨는 이제 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Helen-Louise Hunter
: (The agency had never done a sociological study of any county and I think to this day my book is the only in-depth sociological study that it ever undertook...)

"중앙정보국은 특정 국가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한 적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2010년 현재에도 여전히 제가 한 북한의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유일합니다. 당시 워낙 북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이 사상 초유의 연구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장 3년간에 걸친 연구 사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헌터 씨의 방대한 연구 자료는 1999년에야 단행본 ‘김일성의 북한 (Kim Il-song's North Korea)’으로 묶여져 나왔습니다. 정치 학습, 자발적인 노동, 당이 정해주는 결혼, 식품 조달, 어린이와 청소년의 조직화된 생활 등 북한의 일상을 비교적 자세하게 파고 든 이 책은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비밀문서로 분류됐다가 솔라즈 전 위원장의 간곡한 요청으로 기밀이 해제되는 데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던 겁니다.

헌터 씨는 이 연구를 하면서 북한에서도 구소련과 마찬가지로 매우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이중 잣대가 존재함을 알게 됩니다. 예컨대, 북한의 특권층은 일반인에게는 아예 접근이 금지된 서양 잡지, 도서, 영화, 해외여행을 한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돈 주고 살 약도 없어 열악한 삶을 사는 반면, 특권층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봉화진료소'라는 특급시설에서 최고 의약품과 치료를 받으며 북한이 선전하는 '무상진료'의 천국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주택과 교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20년 이상의 중앙정보국 생활을 접고 법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로 나선 헌터 씨가 북한의 인권에 관여하게 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헌터 씨는 솔라즈 전 위원장이 주축이 돼 2001년에 만든 '북한인권위원회'를 통해 위원회가 십년 가까이 펼친 각종 활동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Helen-Louise Hunter: (There are many people here in this country, experts, policy makers, and administration people who want it to focus on nuclear issue...)

"미국에는 아직도 북한의 핵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전문가, 정책 입안자, 행정부 관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권 문제에는 소홀히 하게 됐습니다. 북한이 싫어하는 인권문제를 제치고 핵문제를 다뤘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됐습니까? 최근 들어 양국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데요, 지금이야말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좋은 시기입니다. 버락 오마바 행정부는 예상과는 달리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부시 행정부보다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6자회담에만 정신을 팔지 않았습니까?"

북한인권위원회가 낸 수용소, 중국 내 여성, 기아, 난민 등 각종 인권 보고서의 준비 과정에서 필자를 선정하고, 자료의 신빙성을 점검하고, 편집하는데 지도적인 역할을 해온 헌터 씨. 이제는 자신을 포함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헌터 씨가 오바마 행정부에 미국과 북한의 회담 의제에 인권문제를 포함시키라고 강력하게 주문을 하는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북한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고,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정된 여가에는 무엇을 하고,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정치 학습시간,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미래의 희망은 무엇인지 잘 이해하는 헌터 씨. 미국에 태어나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가고, 가고 싶은 직장에 가고,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았기에,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지금도 종종 만나는 1978년 미국에 망명한 북한의 고위 외교관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헌터 씨는 오늘도 다양한 자리에서 북한 인권을 위해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전 미국 중앙정보국 북한 담당 수석 연구관인 헬렌-루이즈 헌터 씨를 찾아가 봤습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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