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⑮ 국경없는 인권회 (HRWF)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01.26
laos_embassy-305.jpg 라오스 비엔티엔에 있는 한국대사관 모습.
PHOTO courtesy of Willy Fautre
미국과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적 인권단체인 ‘국경없는 인권회(HRWF)'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강철환: 북한에는 사형수로 판명이 나는 순간부터 밥이 없습니다. 그리고 AK 소총으로 팔다리 관절을 내리찍어서 다 꺾어버립니다. 그리고 딱딱 때려서 사람을 짓이겨 버립니다. 묶여서 밖으로 나오면 군인들이 세발을 쏩니다. 이만한 큰 총알이 머리에 들어가면 머릿속에 있는 게 다 튀어나옵니다. 저는 이런 공개처형을 한 50번 목격했습니다. 수용소에서만요.

방금 들으신 내용은 탈북자 강철환 씨가 지난해 말 서울에서 한 강연회의 일부입니다. 강 씨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요덕수용소에서 10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나서 탈북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강 씨는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졌는데요, 2005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을 하면서부터입니다.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에 영문판으로 나온 수용소 체험기 ‘평양의 수족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겁니다.

그런데 이 체험기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영문판이 아니라 프랑스어판을 통해서였습니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문판이 나오기 이 년 전인 2000년, 프랑스의 언론인인 피에르 리굴로 씨가 강 씨와 공저로 ‘평양의 수족관’을 프랑스어로 출판했던 겁니다.

출판 직후, 이 책은 유럽에 있는 많은 인권운동 단체의 양심을 두들겨 깨웠습니다. 특히 인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세계 각지의 인권유린 만행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던 ‘국경 없는 인권회’는 북한주민들이야말로 가장 인권을 침해받는 조건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리굴로 씨가 ‘국경없는 인권회’의 핵심 이사라는 점도 그런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국경없는 인권회’의 윌리 포트레 회장입니다.

Willy Fautre: ‘국경없는 인권회’는 ‘평양의 수족관’이 출간된 이후 북한 인권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관심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는데요, 일차적으로 북한 인권과 관련해 신뢰할만한 정보를 모으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2000년부터 2001년에 중국 연변 등지에서 탈북자들과 직접 만나 북한 수용소의 실태를 조사한 게 바로 그겁니다.


조사 결과, 국경없는 인권회는 2002년 1월 북한 수용소에서 조직적으로 강제낙태와 신생아 살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단체가 면담한 20여 명의 탈북자들은 특히 2000년 상반기에 중국 당국이 중국 내 북한 주민을 일제히 단속하면서 인신매매를 근절한다는 명목으로 북한 여성들을 주 표적으로 삼았다며, “수천 명의 북한 여성들이 결국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다”고 폭로했습니다. 체포 당시 임신 중이었던 여성들의 태아와 신생아가 북한 수용소에서 ‘국가의 적’으로 몰려 살해됐다는 겁니다.

그동안 수많은 탈북자가 한국에 정착했지만, 이 같은 충격적인 증언이 나오기는 처음이었다고 포트레회장은 말합니다. 이를 계기로 국경없는 인권회의 북한 관련 활동은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관련 정보를 단순히 수집하는 차원에서 한 단계 나아가 유력 언론기관과 국제기구 등을 상대로 북한 인권실태를 알리는 활동에 착수했습니다. 6개월 뒤 미국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즈’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국경없는 인권회의 1월 조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이 홍보활동의 첫 열매입니다. 이에 힘입어 국경없는 인권회는 유럽의회를 포함한 유럽연합의 주요 기구를 집중적인으로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Willy Fautre: 저희 단체의 본부가 브뤼셀에 있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브뤼셀에는 유럽연합 본부가 있습니다. 유럽집행위원회와 유럽이사회, 유럽의회 등이 자리한 ‘유럽연합의 수도’입니다. 이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주요 관리들에게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청문회와 국제회의, 그리고 기타 행사를 활발히 펼쳤습니다.

2006년 3월 국경없는 인권회가 주최한 북한 인권국제대회와 같은 달 유럽의회 의사당에서 처음으로 열린 북한인권 청문회가 그 예입니다. 이 국제대회에서 헝가리 출신 이스트반 젠트 이바니 유럽의회 의원이 환영사를 하는가 하면, 청문회에선 탈북자들의 증언과 탈북자의 삶과 죽음을 포착한 기록영화 ‘서울기차’가 상연됐습니다. 차후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채택될 때마다 유럽 국가들이 결의안 초안 작성에 책임을 지고 최종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등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국경없는 인권회가 그동안 북한 인권을 위한 홍보활동에서 큰 성과를 남겼다는 방증이라는 평입니다.

국경없는 인권회는 이렇게 북한 인권이라는 카드를 들고 유럽연합의 주요기구과 유엔 무대를 휘젓고 다니지만, 탈북자들이 몰리는 몇몇 동남아시아국가를 직접 방문해 이들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인권활동가가 현장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현장에 대한 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Willy Fautre: 라오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대략 일 년 전입니다. 13살에서 30살에 이르는 탈북자 12명을 만나 이들의 증언을 듣고 또 탈출을 도와주기 위해서였죠. 이들은 중국 땅을 가까스로 벗어나 라오스에 막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탈북자들은 강제 추방될까봐 모 은신처에 숨어 지냈죠. 며칠 뒤 저는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벨기에서 온 사람인데, 대사관 관계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죠.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근처에서 기다리던 탈북자들이 대사관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습니다. 몇 개월 전에 두 명의 탈북 청소년이 한국대사관에 진입하려다 비엔티엔에 있는 북한대사관의 방해로 결국 강제 송환된 일이 떠올라 가슴이 무척 떨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극적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국경없는 인권회는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쏟아 부은 10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비교적 성공했다"는 자평을 내놓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수집, 효과적 국제 홍보 활동, 그리고 탈북자 지원 사업에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습니다. 북한 당국의 행동변화가 기대만큼 뒤따르지 않고 있어섭니다.

그래서 오늘도 뜁니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북한 정부가 무엇을 위반했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국제사회의 꾸준한 압력을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하다 보면 북한정부가 자국의 인권 정책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될 날이 머잖아 오리라 확신하면서 국경없는 인권회는 오늘도 유럽과 아시아에서 땀을 흘리며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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