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21] 프리덤하우스 (Freedom House)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03.23
freedom_house_305 2007년 5월 서울에서 프리덤하우스 주최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호크(가운데) 씨가 발표를 하고 있다.
AFP PHOTO/JUNG YEON-JE
미국과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의 저명한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leanor Roosevelt: We stand today at the threshold of a great event, both in the life of the United Nations, and in the life of mankind. This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더빙) 오늘 우리는 유엔 역사상,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이 시작되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 세계인권선언은 앞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국제적 대헌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 제3차 총회. 엘리노아 루스벨트 유엔 주재 미국 대표가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평등을 국제사회의 의무로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을 선포했습니다.

1945년에 사망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루스벨트 대표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뒤를 이은 트루먼 대통령의 부탁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가하면서, 세계인권선언의 기초(起草)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표의 노력이 없었다면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이 힘들었다고 여겨지고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기에, 이날 루스벨트 대표가 선포하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 반영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루스벨트 대표의 굳은 믿음은 사실 유엔 업무에 관여하기 4년 전인 1941년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후보였던 자신의 남편에게 패한 공화당의 웬델 윌키 후보와 함께 세운 비영리, 초당적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말로 ‘자유의 집’을 뜻합니다.

이 프리덤하우스가 세계인권선언 73주년을 기념해 2005년 12월 서울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를 개최합니다. 목표는 하나,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폭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대-1960년대 백인들 다수가 흑인문제에 무관심했을 때 미국의 민권운동을 주도하고, 1970년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베트남 난민을 지원한 보편적인 인권 활동의 연장선이었던 겁니다. 프리덤하우스의 제니퍼 윈저 사무총장의 말입니다.

Jennifer Windsor: North Korea has been listed regularly as one of the most repressive regimes in the world..(더빙) 북한은 프리덤하우스가 1972년부터 매년 전 세계 나라들의 인권실태를 측정한 일명 ‘세계자유보고서’에 정기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1980년부터 각국의 ‘언론자유 평가보고서’를 발표하는데, 북한은 최하위군에 속합니다. 프리덤하우스는 북한을 포함해 모든 비자유 국가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운 때도 맞았습니다. 서울에서 국제대회가 열리기 일 년 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됐고, 미국 국무부가 이 법에 근거해 ‘북한 인권 관련 국제회의 명목 예산’으로 약 200만 달러를 프리덤하우스에 지원한 것입니다. 프리덤하우스는 이 자금으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남한, 유럽 등지에서 북한인권국제대회를 열고, 인권 탄압 사례 고발, 피해자 증언, 각종 영상과 사진 전시 등을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전 세계에 알려갔습니다.

프리덤하우스는 이와 더불어 2006년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공연비용을 지원하고, 2007년에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인 ‘관리소’의 실태를 파헤친 보고서를 내는가 하면, 남한의 민간 대북방송인 ‘열린북한방송’에 2만 5천 달러의 프로그램 제작비를 지원하는 등 북한의 인권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서 펼쳐갔습니다.

이런 끈질긴 노력의 결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냐고 예정에도 없던 질문을 불쑥 던졌습니다. 미국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2001년 프리덤하우스를 대표하는 자리에 취임한 윈저 사무총장이 자유아시아방송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하는 데 걸린 시간은 0.1초나 될까? 너무나 자명한 만큼 굳이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Jennifer Windsor: No, no. (기자) Not at all? (Jennifer Windsor) No. (제니퍼 윈저) 아뇨. 아닙니다. (기자) 전혀요? (제니퍼 윈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프리덤하우스가 올해에도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5년 전처럼 북한인권과 관련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열기 위해 미국 국무부에서 주관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기금(HRDF)'에 지원을 신청했고,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 참상을 고발하고, 남한 내 인권단체들과 연대를 계속해서 강화해 나갈 계획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이 당면한 인권 문제는 세계인권선언을 작성했던 세대, 그리고 프리덤하우스를 설립한 세대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다면서, 윈저 사무총장은 회견 끝에 북한 청취자가 아닌 북한 정부에 이렇게 특별히 요청합니다.

Jennifer Windsor: People of North Korea deserve the kind of freedoms that every other person in the world does and that someday I hope that the North Korean government will respect its citizens...(더빙) 북한 주민은 세계 각처에서 누구나 누리는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앞으로 북한 주민이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기본적 인권은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권리입니다. 기본적 인권이 더는 외부세계에서 강요하는 이상한 것으로 주민들에게 왜곡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미 북한을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북한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행위를 수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부디 북한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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