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② 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09.10.13
2009.10.13
사진-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 제공
미국과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국제적 기독교 단체인 ‘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지난 6월 18일. 이날은 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 (이하 ‘오픈 도어즈’)이 싱가포르 국적의 선박으로 성경 1백만 권을 중국에 반입한 지 28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픈 도어즈는 1981년 6월 18일 이른바 ‘진주 작전(Pearl Project)’을 통해 무려 232톤에 달하는 중국어 성경을 중국 남동해안의 항구로 보냈습니다. 수천 명의 중국인 기독교인들은 목까지 물에 잠그고, 물속에서 성경을 받기 위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밀스런 작업은 두 시간 동안 신속히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달된 100만 권이 중국 전역에 배포되는 데는 5년이나 걸렸습니다. 공안의 감시를 받는 지하교회 지도자들이 자유롭게 나눠줄 수 없었던 겁니다.
거의 30년 전 이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오픈 도어즈의 폴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이처럼 대규모로 성경을 반입하는 일이 북한에선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Had we had request for a million Bibles from North Korea... (더빙)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오픈 도어즈에 백만 권의 성경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면, 우리는 당장 ‘진주 작전’과 비슷한 작전을 추진했을 겁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1948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워 북한을 공산화한 이후, 수많은 기독교인이 종교를 이유로 처형당했습니다. 북한 내 기독교인의 수는 많아야 40만 명밖에 안되거든요.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기자에게 문득 유엔 총회가 1948년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제18조를 상기시킵니다. “누구나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그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 나아가서 그 종교 또는 신념을 표명할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모든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함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하지만 오픈 도어즈는 특히 신앙의 자유야말로 인간이 그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마냥 손을 놓을 순 없었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에게 작은 규모로 성경책, 식량, 옷가지 등 지원물품을 보내고, 2006년에는 중국대사관에 탈북자 송환을 반대하는 팩스 보내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열악한 북한 기독교인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섭니다. 게다가 2004년부터는 매년 북한 기독교인들 위한 국제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기도회 현장음)
국제적으로 상당히 공신력 있는 기독교 박해와 관련된 통계 지표를 지난 1989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일도 오픈 도어즈의 중요한 일입니다.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라 불리는 이 연례 보고서는 북한을 올해 7년 연속으로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가로 지목합니다. “전 세계에서 북한만큼 기독교인이 처참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고통 받으며, 종교의 자유가 박탈된 나라는 없다”는 겁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We estimate that of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North Koreans in labor camps...(더빙) 현재 북한 주민 수십만 명이 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사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중국으로 피신했다가 북한으로 돌려보내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고 있습니다. 북한 여성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몇 달 전 처형당했다는 정보도 접했습니다. 이게 북한의 현실입니다.
1955년 냉전 당시 설립돼 동유럽과 러시아,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에 성경책을 보내고 선교활동을 펼쳐왔던 오픈 도어즈.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이 국제적 단체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픈 도어즈 아시아 담당 국장이던 데이비드 형제 (Brother David)의 우연한 북한 방문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He made a visit to North Korea in 1979. At that time, he joined the team of film people from the Philippines...(더빙) 데이비드 형제가 북한을 방문한 게 1979년입니다. 필리핀 영화 관계자들의 방북단에 합류하게 됐어요. 오픈 도어즈 아시아 본부가 당시 필리핀 마닐라에 있었거든요. 데이비드 형제가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도착했을 때, 데이비드 형제가 미국인인 것을 깨달은 북한 당국은 경악했다고 해요. 당장 돌려보내지는 않았는데요, 대신 데이비드 형제는 방북 기간 내내 미국을 비난하는 온갖 선전을 들어야 했었죠.
당시 그와 함께 마닐라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던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데이비드 형제가 북한에서 돌아온 직후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인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을 위한 열정으로 가득 찼다고 회상합니다.
이 열정을 바탕으로 오픈 도어즈는 북한, 특히 북한 기독교인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당시 연구 책임자였던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 출장을 다녔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였습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1979년에 제가 서울 출장을 마치고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죠. 그때 같은 비행기에 전 극동방송 사장이던 김장환 목사가 탔습니다. 서로 안면이 있었기에 홍콩에 무슨 일로 가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얼마 전 중국 동북부 만주 지역에 사는 조선족들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이들이 성경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뜸 말했습니다. 오픈 도어즈와 손잡고 일하자고요.
그 결과 1980년 초 오픈 도어즈는 한국의 극동방송이 마련한 수천 권의 한국어 성경을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사는 조선족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해주었습니다. 오픈 도어즈는 이를 통해 조선족 기독교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됐고, 이들과 협력 관계는 지금까지 긴밀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오픈 도어즈의 열심과 기도로 100여 년 전 ‘동방의 예루살렘’이란 불리던 평양에서 북한의 인권과 종교 자유가 하루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진행에 장명화였습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국제적 기독교 단체인 ‘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을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지난 6월 18일. 이날은 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 (이하 ‘오픈 도어즈’)이 싱가포르 국적의 선박으로 성경 1백만 권을 중국에 반입한 지 28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오픈 도어즈는 1981년 6월 18일 이른바 ‘진주 작전(Pearl Project)’을 통해 무려 232톤에 달하는 중국어 성경을 중국 남동해안의 항구로 보냈습니다. 수천 명의 중국인 기독교인들은 목까지 물에 잠그고, 물속에서 성경을 받기 위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밀스런 작업은 두 시간 동안 신속히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달된 100만 권이 중국 전역에 배포되는 데는 5년이나 걸렸습니다. 공안의 감시를 받는 지하교회 지도자들이 자유롭게 나눠줄 수 없었던 겁니다.
거의 30년 전 이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오픈 도어즈의 폴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이처럼 대규모로 성경을 반입하는 일이 북한에선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Had we had request for a million Bibles from North Korea... (더빙)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오픈 도어즈에 백만 권의 성경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면, 우리는 당장 ‘진주 작전’과 비슷한 작전을 추진했을 겁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1948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워 북한을 공산화한 이후, 수많은 기독교인이 종교를 이유로 처형당했습니다. 북한 내 기독교인의 수는 많아야 40만 명밖에 안되거든요.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기자에게 문득 유엔 총회가 1948년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제18조를 상기시킵니다. “누구나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그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 나아가서 그 종교 또는 신념을 표명할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모든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함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하지만 오픈 도어즈는 특히 신앙의 자유야말로 인간이 그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마냥 손을 놓을 순 없었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에게 작은 규모로 성경책, 식량, 옷가지 등 지원물품을 보내고, 2006년에는 중국대사관에 탈북자 송환을 반대하는 팩스 보내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열악한 북한 기독교인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섭니다. 게다가 2004년부터는 매년 북한 기독교인들 위한 국제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기도회 현장음)
국제적으로 상당히 공신력 있는 기독교 박해와 관련된 통계 지표를 지난 1989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일도 오픈 도어즈의 중요한 일입니다.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라 불리는 이 연례 보고서는 북한을 올해 7년 연속으로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가로 지목합니다. “전 세계에서 북한만큼 기독교인이 처참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고통 받으며, 종교의 자유가 박탈된 나라는 없다”는 겁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We estimate that of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North Koreans in labor camps...(더빙) 현재 북한 주민 수십만 명이 노동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사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중국으로 피신했다가 북한으로 돌려보내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고 있습니다. 북한 여성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몇 달 전 처형당했다는 정보도 접했습니다. 이게 북한의 현실입니다.
1955년 냉전 당시 설립돼 동유럽과 러시아,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에 성경책을 보내고 선교활동을 펼쳐왔던 오픈 도어즈.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이 국제적 단체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픈 도어즈 아시아 담당 국장이던 데이비드 형제 (Brother David)의 우연한 북한 방문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He made a visit to North Korea in 1979. At that time, he joined the team of film people from the Philippines...(더빙) 데이비드 형제가 북한을 방문한 게 1979년입니다. 필리핀 영화 관계자들의 방북단에 합류하게 됐어요. 오픈 도어즈 아시아 본부가 당시 필리핀 마닐라에 있었거든요. 데이비드 형제가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도착했을 때, 데이비드 형제가 미국인인 것을 깨달은 북한 당국은 경악했다고 해요. 당장 돌려보내지는 않았는데요, 대신 데이비드 형제는 방북 기간 내내 미국을 비난하는 온갖 선전을 들어야 했었죠.
당시 그와 함께 마닐라 사무소에서 함께 일하던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데이비드 형제가 북한에서 돌아온 직후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인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을 위한 열정으로 가득 찼다고 회상합니다.
이 열정을 바탕으로 오픈 도어즈는 북한, 특히 북한 기독교인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당시 연구 책임자였던 에스타부룩스 국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 출장을 다녔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였습니다.
폴 에스타부룩스: 1979년에 제가 서울 출장을 마치고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죠. 그때 같은 비행기에 전 극동방송 사장이던 김장환 목사가 탔습니다. 서로 안면이 있었기에 홍콩에 무슨 일로 가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얼마 전 중국 동북부 만주 지역에 사는 조선족들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이들이 성경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대뜸 말했습니다. 오픈 도어즈와 손잡고 일하자고요.
그 결과 1980년 초 오픈 도어즈는 한국의 극동방송이 마련한 수천 권의 한국어 성경을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사는 조선족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해주었습니다. 오픈 도어즈는 이를 통해 조선족 기독교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됐고, 이들과 협력 관계는 지금까지 긴밀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오픈 도어즈의 열심과 기도로 100여 년 전 ‘동방의 예루살렘’이란 불리던 평양에서 북한의 인권과 종교 자유가 하루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진행에 장명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