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위해 뛴다-46]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동유럽에서 30년 전 일어났던 변화, 북한에서도 일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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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로버트 킹 북한 인권 특사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미국의 두 번째 북한 인권 특사인 로버트 킹 박사는 언론 매체에 확연히 뜨이진 않지만 북한 인권 의제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 12월 초, 성 김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의 바로 옆방에 출근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바쁜 일정에도 킹 특사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총체적으로 심의하는 '보편적 정례검토'를 실시하자 스위스 제네바로 날아갔습니다.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으로 지적받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질문에 어떤 대답과 개선책을 내놓을 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월에는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한 이해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했습니다. 그 다음 달에는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에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했습니다. 어딜 가나 말하기보다는 듣는 편이라는 평입니다.

로버트 킹

: North Korea always has been an interesting place. It's always a little unique compared to most other countries where...

(더빙)

북한은 늘 흥미로운 나라였습니다. 미국과 쌍방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몇 몇 나라와 비교할 때 조금 '독특한' 국가라고 봅니다. 제가 고 톰 랜토스 하원의원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는데요, 랜토스 의원은 생전에 대북 협상과 관련한 진전이 없는 점을 매우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 1월 평양을 방문했는데, 저도 동행했습니다. 방북 기간에 여러 북한 고위관리를 만났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는데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에 대해 더 궁금해졌습니다.

킹 특사가 북한에 대해 궁금해 한다고, 북한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단적인 예로, 랜토스 의원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의 구석구석에는 킹 특사의 땀과 노력의 흔적이 배어있습니다. 본인도 자유아시아방송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기여한 바를 굳이 부인하지 않습니다.

로버트 킹

: I was involved in the drafting of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legislation in 2004 when it was originally passed and when it was reauthorized in 2008...

(더빙)

북한인권법이 2004년 미국 의회에서 처음 통과되었을 때 법안의 초안을 마련하고, 2008년 미국 의회에서 재승인되는 작업에 관여했습니다. 북한인권법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 의회가 법을 제정하면서까지 북한 인권개선에 대한 여러 조치를 요구할 때,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탄력을 받거든요. 이와 더불어, 꾸준해야 합니다. 법 하나 제정됐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끈기있게 압박하고, 밀고 나가고, 재촉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인권 문제가 미국의 대북 정책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도록 (remain)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입니다.

꾸준함과 사실 확인. 이는 인간 킹 특사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단어입니다. 킹 특사는 이합집산이 심한 정치계에서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나치수용소를 경험한 민주당의 랜토스 의원을 1983년 처음 만난 이후 무려 반세기를 동고동락했고, 대학 졸업 후 가진 첫 직장인 미국의 국제방송국 '자유유럽방송'에서 언론인으로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익혔습니다.

로버트 킹

: The experience that I had when I was at Radio Free Europe involved dealing with countries of Central Europe that were in some ways similar to situations in North Korea now....

(더빙)

자유유럽방송에서는 중앙유럽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을 아우르는 중앙유럽은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북한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중앙유럽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업무가 매우 중요했듯이, 북한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긴요합니다.

킹 특사는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두었던 자유유럽방송에서 연구 부국장과 선임분석가로 7년간 일하면서,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와 안보회의를 개최해 안보와 인권 조항이 모두 포함된 헬싱키협약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보도하고, 연구하고 분석물을 쏟아 내면서 동유럽 전문가로 우뚝 섭니다. '루마니아 공산당 역사,' '공산주의 치하의 소수민족,' '동유럽의 불안한 미래: 자유유럽방송의 보도를 바탕으로,' '유럽안보와 협력에 관한 동유럽의 견해' 등을 비롯한 5권의 저서는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킹 특사의 전문적 성찰의 산물입니다.

이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킹 특사가 자유유럽방송 근무를 마친 후 1977년 카터 행정부에서 소련과 동유럽 문제를 담당하는 백악관 연구원으로 발탁된 것은 전혀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일 년 뒤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 차우셰스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정상회담 속기록을 작성하는 업무 (official notetaker)를 전담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을까? 차우셰스쿠와 같은 운명을 겪을까 겁이 난 북한의 지도부에게 해 줄 조언이 없느냐는 질문에 헬싱키협약을 이행해나가는 과정을 뜻하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로버트 킹

: I think the same kinds of things are happening in Asia as well...

(특사)

동유럽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 아시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미국과 서유럽은 구소련과 동유럽, 중앙유럽과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정상화하기를 원했습니다. 매우 중요했던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무역을 확대하고, 정보를 자유롭게 유통시키고, 인권을 개선하고, 교류를 증진하는 일을 모두 포함했습니다. 그 결과, 양 진영 간에 외교관계가 맺어지고, 무역 교류가 확대되는 등 전반적인 관계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인권 문제도 다뤄졌습니다. 아마 인권 문제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긍정적이고 유익한 변화를 낳는 진보가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 아시아 국가는 여러 동유럽 국가가 그랬듯이 자국의 경제를 개선하고 서방 세계와 접촉을 늘리면서 지구촌 경제와 문화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유익한 진보'입니다. 30년 전 동유럽에서 일어났던 이런 변화가 북한에도 일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북한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킹 특사 특유의 꾸준함이 과연 그 결실을 맺을지, 국제사회는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