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북에서 전화와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1.24
nk_ppl_break-620.jpg 중국 랴오닝성 단둥 외곽에서 바라본 북한 국경지역에서 북한 주민들이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날이 추우면 몸까지 움추려 듭니다. 게다가 배고픔까지 더하면 참 사는게 힘들어지는데요. 이런 겨울이면 북한에 있는 가족친지에게서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남한에 간 탈북자입니다. 오늘은 국경연선에 나와 전화를 해서 바로 북한에 송금을 했다는 이순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순희: 그래도 혈육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단 돈 얼마라도 손에 쥐고 그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꾸 보내는 거예요.

함경북도 출신의 이 씨는 이번에도 방조를 구하는 친척의 전화를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돈을 많이 보내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답니다. 지금 북한의 현질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죠. 이 씨가 탈북했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이순희: 제가 탈북할 때는 2006년 1월 가장 추울때입니다. 북한은 추울 때 식량값이 많이 올라가거든요. 탈북당시 입쌀이 600원 강냉이가 400원이었어요. 장마당에서 벌어 산다는 것이 쌀 1키로 값도 못 벌때가 많았거든요.

북한에서 연락이 없으면 궁금하고 어떻게 잘 지내고 있을까? 배는 곯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도 바쁜 생활을하기 때문에 깜빡 잊고 지내다가 날이 추워지면 어김없이 전화가 온답니다.

이순희: 두번에서 세번은 와요. 어느때 오는가 하면 겨울하고 봄철에 와요. 저는 알아요. 겨울에 장사하기 힘들고 봄에는 농민들도 춘곤기여서 쌀값이 제일 오르고 밭에 뜯어먹을 풀도 없으니 요때는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아니나 다를까 겨울이 되니까 딱 전화가 오더라고요.

11월부터 봄까지라봐야 4개월 남짓인데 연달아 전화를 받습니다. 얼핏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염치도 없이 계속 전화를 하는가 하겠지만 얘길 들어보면 안타까움만 더해집니다.

이순희: 근데 한 형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 형제가 달라고 하면 나중에 또 다른 형제가 전화를 해요. 돈을 주면 똑같이 나눠 쓰면 좋겠는데 혼자 다 쓰는거예요. 그래서 형한테는 주고 왜 나한테는 안주는 거예요. 이러는 거예요. 싸움이 나는 거예요. 북한에 있을 때는 우애가 좋아 몰랐는데 돈 앞에 양반없다고 안 되더라고요. 할 수없이 그 먼데까지 추운데 왔는데 안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주면 혼자 사는 조카가 또 전화를 하는거예요. 또 주고 나서 통장을 들여다 보면 한숨이 나오고 조금이라고 줬으니 생활에 보탬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탈북해 중국생활을 거쳐 2009년 남한에 간 이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정착 초기에 열심히 살았습니다.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녀 자격증도 취득했고 50십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대학에 입학에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남한에서 첫 봉급을 받은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이순희: 간호학원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한달을 일하니까 130만원을 주는 거예요. 그것이 첫 월급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다는 생각보다 북한의 형제가 먼저 떠오르는 거예요. 북한에 이 돈을 보내면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생각이 나는 거예요.

남한에서 북한으로 바로 송금이 안되기 때문에 중국에 있는 조선족을 통해 북한에 가족에게 송금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순희: 중국돈으로 하면 6천원이돼요. 그때 당시는 6,500원이었는데 이제 환율이 떨어져서 5,900원이더라고요. 오늘 돈을 보냈어요. 제가 처음 돈을 보낼 때는 6,500원이었어요. 그리고 식량도 비싸지 않아서 3,000원 정도였는데 점점 식량값이 올라 지금은 5,000원이라고 해요. 5-6년 사이 거의 배로 오른 거죠.

기자: 중국돈 6천원이면 북한돈으로는 얼마나 됩니까?

이순희: 중국돈 100원에 북한돈이 지금 7만원이라고 해요. 수수료를 제하고 나면 70%가 가니까 3,500원이 가는데 이 돈이면 북한돈으로 하면 260만원 정도예요. 그런데 식량값이 6,000이라면 그 돈도 큰 돈이 아니더라고요.

매달 한 번씩 받는 월급을 타면 50만원은 따로 저축합니다. 언제든 북한에서 전화가 오면 송금할수 있도록 준비하는 겁니다. 50만원이면 거의 그가 받는 월급의 절반입니다.

이순희: 제가 한달에 130만원을 타는데 4대보험인 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을 제하면 120만원을 받아요. 거기서 교통비. 집세, 전기사용료, 물값 이런 것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80만원정도밖에 안 남아요. 쌀 사먹고 계란 한판에 30알이 1만원 정도해요. 남한 사람들처럼 똑같이 먹고 살자면 80만원이 모자라요. 그래도 북한에 친척에게 보내려니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거예요.

이 씨는 오늘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10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크다면 정말 큰돈이지만 얼마되지 않는 작은돈이라고 말하면 또 딱히 할말이 없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지울 수 없답니다. “하루종일 땅을 파봐라 10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나”

이순희: 솔직히 여기 와서 8년 살면서 자동차 면허는 바로 땄지만 저 급여를 가지고는 자동차를 몰수 없었거든요. 차를 사면 휘발류 넣고 보험료 내고 하면 돈이 들어서 차를 살 수는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조금이라고 모아서 북한에 보내고 싶어서 절약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북한에 있는 친척들은 그런 심정을 몰라요. 돈이 있어서 보내겠거니 남한사람은 잘 산다니까 북한에서 간 사람도 잘살겠지 쓰고 남으니까 보내겠지 이렇게 생각하는게 참 가슴아프더라고요. 북한에서 누구는 많이 주고 왜 나는 조금 줍니까? 이런 말을 할 때 참 가슴이 무너지더라고요. 여기서 어떻게 벌어서 보내는줄 정말 모르는구나. 정말 아끼고 아끼고 해서 보내는데 그 돈을 받아가는 사람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거예요. 보내면서도 마음이 너무 허전해요.

홀로 탈북해 지금도 단신으로 지내지만 아직 일하는 직장이 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사먹을 수 있고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기 때문에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너무 바빠서 오늘의 아픔은 잊게 될테니까요.

이순희: 올해는 차를 사고 싶어요. 여기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여성이 차를 타고 출근하는 것이거든요. 이제 남한생활 8년인데 이제 차를 몰고 싶고요. 해외여행도 이제는 나도 가고 싶어요. 남한사람들처럼 여유있는 문화정서 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가을에는 옆동 아파트에 사는 탈북자 친구와 대만에 가자고 약속했고 대학 동창들과 4월에 제주도 가자고 항공권도 예약을 했어요. 올해는 그렇게 하려고 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이순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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