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사의 탈북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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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강원도 횡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모습.
사진은 강원도 횡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평양이 고향으로 북한에서는 첼로를 전공했던 음악교사가 남한에서 새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친척방문으로 중국에 갔다가 그곳에서 남한 드라마를 본 것이 탈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탈북교사 김태희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태희: 창원에 있는 김태희 음악학원 원장 김태희 입니다. 우리학원에서는 피아노, 아코디언, 기타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청진사범대학 음악과를 졸업하고 남청진고등중학교에서 음악교를 한 김태희 씨는 현재 남한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의 원장입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07년 2월 초입니다. 음력설 명절 공급하느라  군인도 바쁜 틈을 타서 도강을 했습니다. 매년 2월만 되면 탈북 당시의 생각이 난답니다.

김태희: 얼음이 쨍쨍얼고 너무 추웠어요. 참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두 명이 물에 빠졌어요. 2월만 해도 얼음이 좀 녹을 때인데 나혼자만 건넌 것이 아니고 네명이 강을 건너다 보니 두 명이 얼음이 꺼진데로 걷다가 빠졌어요. 다시 잡아 끌어올려서 오는데 홀딱 젖어서 옷이 어니까 그걸 보니 불쌍하기도 하고 눈물 나기도 하고 하지만 너무 무서우니까 긴장이 되기도 하고 했는데… 그렇게 두만강을 건넜어요.

탈북해 한국도착까지는 1년 7개월이 걸렸습니다. 10개월은 중국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동남아 4개 나라를 거쳐 힘들게 간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떠날 때 최종 목적지를 한국으로 정했기 때문에 조금만 견디면 나도 멋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시기이기도 했답니다.

김태희: 제가 친척방문으로 2005년에 증명서를 떼서 중국에 갔는데 텔레비전을 보니까 한국 드라마를 했어요. 친척이 저게 남조선이라고 하는데 난 안믿었죠. 북한 땅에서 못 봤거든요. 남조선이 저렇게 잘살아 하면서 정신없이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그때 아마 나도 한국에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한국이 엄청 발전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점점 어려워지고 고난의 행군으로 굶고 힘든데 드라마를 보니까 남조선은 너무 잘 사는 거예요. 한 달 지나서 북한 들어가서는 다시 한 번 두만강을 건너서라도 한국에 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 처음 봤던 것이 풀하우스라는 드라마였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꿈 같은 세상이다. 천국 같은 세상이다 하면서 봤어요. 언젠가는 남조선을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탈북이란 꿈을 꾸게 됐죠.

한국에 도착해서는 대학진학을 하고 새로운 학문인 사회복지학 공부도 해봤지만 자신의 전공인 음악을 버릴 수는 없었답니다. 지금은 6년째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김태희: 학생부터 어른까지 나이 제한이 없다보니 우리학원은 연령대도 다양하고 원생들도 재밌게 하고요. 복지관에서는 46명이 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초급반 20명, 고급반 20명 해서 한 반에 20명 씩인데 재미나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학원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 복지관에서도 악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통 사설학원을 운영하자면 자본금이도 있어야 하고 매달 임대료 등 고정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창업보다는 월급쟁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야심차게 학원문을 열었는데 악기를 배우려는 학생이 오지 않으면 낭패기 때문이죠. 김 씨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김태희: 그런 걱정은 한 번도 안했습니다. 원생이 제일 적을 때도 20명은 되고 많으면 39명까지 되니까 달세 걱정은 안했어요. 집도 거주지는 서울인데 여기 초등학교에 계약직으로 내려왔다가 학원을 차리다 보니 집도 전세집에 살고 있거든요.

기자: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군요

김태희: 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기자: 교육방법은 북한식인가요? 남한식입니까?

김태희: 저는 남한식으로 하고 있어요. 북한은 주입식이예요. 거의 동일하게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남한식은 거의 1대1입니다. 수준이 다 다르고 나가는 속도도 다르고 또 나이가 있는 분들은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젋은 사람은 1년에 할 수 있는 것을 70대분은 3년을 해야하니까 그에 맞게 해야하니까 좀 다르죠.

자신이 악기를 다룰줄 아는 것과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 틀린데요. 김태희 씨는 북한에서 음악교사였기 때문에 교습법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 혼자 학원을 운영하니까 고용원에 대한 걱정도 없었답니다.

김태희: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누구나 와서 1시간씩 수업을 하거든요

기자: 매일 하십니까? 힘드시지 않습니까?

김태희: 아니요. 너무 재밌습니다. 일요일은 편곡을 합니다. 김태희 학원하면서 노래들을 편곡해서 개별 수업을 하다보니까 기타도 편곡 모은 것으로 책을 만들어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편곡집을 내면서 지역사회에서 출판회도 가졌습니다. 이제 창원에서는 꽤 알려진 유명인이 됐는데요. 매일매일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김태희: 일을 그만두면 좋은 친구를 만나서 다니겠는데 저는 놀러 다닌 기억은 없습니다.

기자: 영화 보러가거나 한적도 없고요?

김태희: 한국에 와서 영화 두 편 봤어요. 딸하고 추석에 한 번보고 언젠가 설연휴 1주일 있을 때 보고 해서 두편 봤습니다. 그래도 저는 일이 재밌습니다.

기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지만 듣는 사람은 일만 해서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김태희: 전혀 한번도 답답한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하는 일에 대해 다른사람에 비해 보람이 있고 즐기면서 하니까 좋고 편곡하면 그것이 또 책이 되니 좋고 …명절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주말에는 꼭 주말드라마를 봅니다.

(김태희 연주 해변의 여인)

김태희 씨가 직접 연주하는 해변의 여인이란 곡입니다. 이렇게 김씨는 연주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의 북한교사 때 이야기 잠시 들어볼까요?

기자: 음악교사를 하면 전부 악기를 다 배웁니까?

김태희: 대학에서 12가지 악기를 자격증 시험보고 나왔고 한국에 와서는 7가지 악기를 가르쳤습니다. 서울에서는 첼로 전문강사를 하다가 창원에 와서는 처음에 가야금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배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대중적인 것 하면서 피아노 하고 아코디언을 선호해서 시작했고요. 기타는 대중악기고 복지관에서는 지금도 39명을 가르치는데 …일을 그만두면 좋은 친구나 남편이 생기면 여행도 다니고 못해본 것 해보면 되죠.

기자: 보통 음악교사를 하면 악기를 가르치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군요?제2의고향

김태희: 배우기는 32가지 다 배웁니다. 그런데 거기서 자기 전공악기와 필수악기 3가지는 당연히 배우고 나머지 악기도 합주를 지휘할 수 있는 정도는 해야되니까 관악기 몇 개, 건반 악기 몇 개,현악기 몇 개 해서 12가지 정도는 해야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할 수 있죠.

기자: 고등학교 음악교사는 얼마나 하셨나요?

김태희: 대학을 1984년에 졸업해서는 계속 하다가 고난의 행군 시기 들어서면서 보급지도원 4년하다가 탈북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창원에서 음악학원을 경영하는 김태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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