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샵을 열겁니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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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선수촌 올림픽선수촌플라자에서 선수촌 관계자들이 네일아트를 받고 있다.
강릉선수촌 올림픽선수촌플라자에서 선수촌 관계자들이 네일아트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취업과 창업, 회사에 들어가 월급쟁이 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작지만 자신의 가게를 열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 있을 겁니다.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을 텐데요. 오늘은 북한분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네일샵 즉 손톱을 예쁘게 가꾸는 전문점을 열겠다는 최지애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최지애: 북한에서 시범 케이스로 제가 평안남도 증산 용덕리에 있는 11호 노동단련대에 가서 1년동안 죽지 못해 살아서 겨우 살아서 목숨만 건져 살아나온 사람이예요.

노동단련대에서 영양실조 3도로 내일이면 죽는다고 하면서 풀려 나왔다는 최 씨. 그는 말 그대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1998년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최지애: 그때 먹고 살기 힘드니까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도강한 것이지 한국에 오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돈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지 다른 나라 간다는 생각조차 못 해봤어요.

함경북도 경원군 출신의 최 씨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다가 남한행을 택했습니다. 중국에서 10년 이상을 살아서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는 어느정도 할 수 있었는데 뜻하지 않던 언어의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최지애: 여기 와서 처음에 너무 줄임말을 쓰고 영어를 많이 써서 알아 못듣는 말이 너무 많았어요. 중국에서 살때도 중국어를 못 하니까 힘들었는데 처음부터 배우는 입장에서 중국에서는 살았지만 여기는 같은 말인데 다른 말을 쓰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이해를 못 했어요. 이제 살다보니까 조금씩 이해를 하고 알아가는데 지금도 어떤 때는 20대 아이들의 줄임말은 알아 못 들어요.

젊은이들이 하는 줄임말을 못 알아듣겠더라 하고 말했는데요. 예를 들어 볼까요? 친한 사람이 자신에게 너는 나의 베프야 한다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베프란 영어 베스트 프랜드 즉 너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란 말을 줄인 겁니다. 또 비슷한 의미로 자주 쓰는 용어가 여친, 남친 이란 단어가 있는데요. 여자친구를 줄여서 여친, 남자 친구의 줄임말은 남친이 되는 겁니다. 이처럼 유행하는 단어에서 소통이 안됐던 겁니다.

최지애: 올해 여기서 8년 가까이 살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기서 할말 해야 하고 내 의견을 말할때는 해야 하지만 자제해야 할때는 자제를 해야겠구나 하는 것을 많이 배웠어요. 음성도 높이고 막 싸워보기도 했는데 내 할말 다해보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감춰야할 것은 감추고 숨겨야 할 것은 숨기고 피해야 할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더라고요.

또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생각의 차이도 생활하면서 알 수 있는데요.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면서 해석이 달랐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서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보여지는데요.

최지애: 분명히 내가 이것이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은 아닌거죠. 남한사람들 하고 선택하는 것이 다른 거예요. 예를 들어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먼저 빼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먼저 해야 하는데 나하고 생각이 틀린 거예요. 사람이란 것이 쉽게 일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해요. 나는 자릴 비우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치우자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큰 것부터 빼자고 하는 거예요. 사람마다 생각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 10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직행으로 남한에 간 사람보다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역시 중국과 한국은 또 다른 곳이기에 한국에 대한 나름 환상이나 기대를 갖고 갔지 않았을까 하는데 문제는 더 근본적인 것이었습니다.

최지애: 중국에서 좀 살았던 사람들은 그런 환상을 안해요. 일단 여기 오면 북한 사람들은 가족이 없으니까 명절 때라든가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쓸쓸해요. 겁나고 무섭고요. 또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는 북한에서 왔다고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서 살다 보니까 그런 사람이 있고요.

남한에서 가정을 꾸린 최 씨는 새로운 곳에 뿌릴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 하고 가정일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면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갑니다.

최지애: 지금 제가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 중에 있어요. 나이 들어서도 먹고 살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많이 번다기 보다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자: 북한이나 중국하고는 환경이 다른데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최지애: 전 중국에 있을 때는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까 무서워서 살았는데 지금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떳떳하고 어디 나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요. 말이 통하니까요. 면접 보러 가서도 한국 국민으로 떳떳한 거예요. 비록 말투는 조금 틀려도 함께 대화를 할 때면 다 알아듣고 하니까 그것도 좋고 내가 벌고 싶은만큼 쉬고 싶은만큼 쉴 수도 있으니가 너무 좋고 노력의 대가를 받는 가는 자체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북한에서는 아무리 힘들게 일하고 해도 한끼 벌이도 못했는데 여기 와서는 내가 하루만 열심히 벌면 열흘 동안 먹고 살 돈은 벌잖아요. 여기서 못 산다는 것은 내가 노력을 안해서 못사는 거예요. 내가 살겠다는 의지만 가지고 열심히 하면 무조건 살아요. 못 살수가 없어요. 이런 일 저런 일 가릴필요 없이 내 수준에 맞게 찾으면 직장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최지애: 우리가 배웠던 것 하고 전혀 다르다는 거. 남한생활은 깡통차는 거지만 있고 잘사는 사람은 엄청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엄청 못살고 거지만 득실거린 다는 말은 착각이라고. 직접 와서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고. 다 살 수 있는 곳이다. 열심히만 하면 내가 노력한 대가는 다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자본주의 사회가 오히려 사회주의 사회보다 더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요. 자기 노력만 하면 다 여기서는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북한분들은 네일샵이 뭣하는 곳인지 생소할 수 있겠는데요. 얼굴호장을 하듯 전문가를 찾아 손톱도 가꾸는 겁니다.

최지애: 네일아트는 여성들이 손톱발톱 관리를 받고 색을 넣는 거예요. 요즘은 남성도 많이 하긴 하더라고요. 북한 사람들은 네일아트라는 것을 잘 모르지만 여기와서 3년정도 되는 사람들은 네일아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손톱관리를 받으면 손톱이 이뻐지고 하니까 너무 이뻐지는 거예요. 우리가 힘들게 북한에서 고생하면서 언제 관리를 해봤겠어요. 그냥 길면 자르고 했는데 그런 기술을 배워서 북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고 나만의 창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어요.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아이가 있어서 아이를 돌보고 또 자신을 사랑해주는 배우자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미래를 알차게 준비하고 있답니다.

최지애: 나만의 창업을 해서 북한 우리 고향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남의 밑에서 힘들면 기술을 배워서 자기 사업을 하라고 얘기 하고 싶어요. 여기서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그 사람들의 생각 방식이 틀려서 그렇겠지만 참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남자 하나만 믿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최지애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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