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앵글로 승부한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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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철 감독의 현장 촬영 모습.
허영철 감독의 현장 촬영 모습.
사진 제공-허영철 감독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실제 사물을 보는 것보다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세상이 아름다워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촬영하는 사람을 통해 실물이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인데요. 남한에 가서 영화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혀 현장을 누비고 있는 분이 있어 소개합니다. 바로 허영철 촬영감독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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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철: 별로 실수 없이 빠르게 정착했어요. 힘든 줄 몰랐어요. 영상공부하고 촬영하는 모든 것이 너무 즐거웠어요.

방송에서 자신의 본명을 처음 공개한다는 허영철 감독은 현재 영상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토바이 경주와 같은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물 제작은 남한에서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는데요. 세상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 것은 그의 즐거움 입니다.

허영철: 힘들다고 생각 안 해봤어요. 남쪽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는 환경이나 시설이 너무 좋은 거예요. 내 능력만 되면 이뤄지니까. 힘들다기 보다는 재미있더라고요. 아름다운 것을 말하자면 자그마한 포장물도 영상에 담으면 폭포 같고 아름다워요. 꽃에 담은 이슬도 햇빛 반사 받을 때 그 아름다움은 정말 표현 할 수가 없거든요. 반대로 옛날에 소비자협회 피디를 했을 때는 다단계나 비리 등 나쁜 것도 촬영해 담아보기도 했고요. 세상은 원래 아름다움도 있지만 음과 양을 동반하니까.

허 감독은 지난 1997년 탈북해서 남한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 입니다.

허영철: 제가 2월에 탈북했는데 황장엽 선생이 탈북하더라고요. 그 시기에 나라가 어려워지니까 간부들이나 지식인들이 나라꼴이 이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고 이런 때인데 저는 반체제 인사 보도 체포령 때문에 탈북한 사례거든요.

기자: 북한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허영철: 저는 청년사업도 했고 여기로 말하면 대기업 같은 곳에서 업무 관리도 했고요.

허 감독이 북한에서부터 영화촬영 분야 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단 북한에서 하던 일을 남한에서도 이어가려고 준비를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자 방향을 바꾼 겁니다.

허영철: 제일 처음에는 자신 있는 것이 자동차였으니까. 군에서 운전병을 오래했거든요. 그래서 차 수리 학원을 다녔어요. 거기서 정비사 6개월 과정에 자격증 2개 따서 나왔죠. 그런데 그 일을 하려고 하니까 이미 40살이 되다 보니 채용하겠다는 데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카메라는 하나원 때였는데 좋은 벗들에서 현대 자동차하고 울산, 경주 탐방을 가면서 캠코더로 촬영을 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나오자 마자 구입한 거예요. 그리고 집에서 찍고 편집도 하고 녹음도 하고 하는데 참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사진기나 동영상 촬영을 위한 캠코더는 가격이 비쌉니다. 특히 일반 장비가 아닌 전문 촬영장비는 고가의 제품들인데요. 취미 생활을 위해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고 좀더 전문적으로 배워보자 생각하니 결국 방송국에 취업까지 하게 됩니다.

허영철: 신문을 보니까 KBS 한국영상원에서 영상교육을 한다고 해서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와
왔어요. 강남 대치동에 학원이 있었는데 그때는 학원비가 싼지 비싼지 개념도 없고 무턱대고 달려 간 거고 그때는 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때니까 디지털을 배워주는데도 별로 없었어요. 내가 1년 과정을 받고 부산 KBS에 들어갔을 때 다 베타 편집하는데 내가 유일하게 컴퓨터 편집을 했거든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디지털을 남한사람보다 먼저 배웠으니까 쉽게 방송국에 정착했죠.

디지털 편집이란 최신 기술을 배웠던 것도 취직할 수 있는 요건이 됐지만 그보다는 영상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만든 작품이 수상했던 것이 방송국과 인연을 맺게 해줬습니다.

허영철: 처음에 내가 작품한 것이 씨네마 영화제 뿌리라는 다큐멘터리인데 거제도 방문 갔는데 인민군 수용소가 있잖아요. 아버지가 3년동안 6.25전쟁 때 그 포로 수용소에 있다가 올라오셨거든요. 그때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가서 내가 느낀 것이 뭔가 하면 반세기 전에 우리 아버지는 포로신분으로 여기 있었고 나는 자유를 찾은 관광객으로 간 것 아닙니까. 내가 거제도 가봤더니 인민군 위령탑이 있더라고요. 적군인데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이해가 안됐고. 그래서 내가 마지막에 내가 두 번 다시 이 땅에 이런 기념비가 없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한민족 한 형제이다 그래서 제목이 뿌리였던 거예요.

그렇게 단편 영화가 수상을 하면서 방송국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허 감독은 자신의 활동 영역을 좀 더 넓혀 가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공부합니다. 부산 KBS에서 일하다 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한 단계 도약합니다.

허영철: 부산에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수도권 2천만 도시를 가자고 해서 문화관광부 공채시험을 쳤어요. 그때 800:1의 경쟁을 뚫고 돼서 국립중앙박물관을 맡아서 서울에 올라왔죠. 문화관광부 산하 많은 곳이 있는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행사가 많았어요. 국제포럼도 많았고 모든 것을 내가 기획하고 촬영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남한생활에 힘든 점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 허 감독이 영상촬영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요.

허영철: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나이 먹으니까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돈을 포기 해야겠구나 했어요. 그냥 점심만 먹여달라고 해서 일을 했어요. 그들의 노하우와 인맥이 필요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생활이 가능했는가 하면 새벽에 일어나서 세탁물 배달하고 벌고 저녁에 약재배달하고 토요일에는 노가다 일해서 돈 벌고 2년 반을 무료로 촬영장 가서 일을 배웠어요. 인맥이 늘고 하니까 다음부터 오라고 했거든요. 돈을 못 받고 해도 나를 쓰자고 하니까 행복하더라고요.

지금까지 허 감독이 세상에 선보여 수상을 한 작품은 거제도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뿌리 외에도 국군포로 이야기를 담은 파편 그리고 남한정착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2019년 탈북민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영화 100년 100인감독 영화제에 이름을 올립니다.

허영철: 달라진 것이 나도 이젠 여기 사람이구나 왜냐하면 인맥도 늘어났고 이 분야에서 오래 하다 보니까 예전에는 부지런히 영업을 뛰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일이 들어오니까요. 지금은 방송국 일은 안하고 개인 스튜디오 가지고 있고요. 프리랜서로 방송국이든 영화든 일이 들어오면 하고 탈북자로 장점이 방송국에서 북한 프로젝트를 하면 우리가 최고거든요. 남한 피디보다 우리가 접근력이 더 좋으니까요. 예를 들면KBS 광복 70년 특집도 북한 차량 동원을  내가 다 한 것이거든요. 그런 방송의 주요 특집이 있으면 우리가 독점이에요.

현재 영상촬영 외에도 일반인 대상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영상 촬영을 강의 하는 허영철 감독.
스튜디오에서 영상 촬영을 강의 하는 허영철 감독. 사진 제공-허영철 감독

허영철: 올해로 6년 했는데 너무 많이 와요. 고정은 10명 탈북자 수강생을 받는데 작년에는 일본에서도 왔고 저희는 무료 교육을 하거든요. 요즘은 유튜브 하는 분도 오고 봉사도 좀 하죠. 때로는 조금 힘든 단체나 업체 또는 양로원에 가서도 사진도 찍어주고요.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제일 큰 것은 요즘 유튜브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무료로 해주거든요. 장비도 알려주고요. 이제는 여력이 좀 되니까

봉사도 하면서 최고의 영상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허영철 영상감독은 자신이 구상하는 영화가 빨리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허영철: 한풍이란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내용은 한류 열풍이 북한에 들어가다 입니다. 지금까지 북한 영화는 인권을 다루다 보니 북한의 비참함 슬픔을 담았는데 저는 반대로 북한의 실상을 가지고 코미디 액션 영화를 만들어서 웃음을 주자는 겁니다. 기존의 북한 영화는 그냥 북한 얘기를 했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 안됐어요. 그런데 내 영화는 북한 영화인데 남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 되는 거죠. 모든 준비는 다 됐고 투자만 받으면 되요.  내가 시나리오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기 때문에 배우들 출연료만 되면 충분히 영화 찍어요.

제 2의 고향 오늘은 허영철 촬영 감독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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