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승부한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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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 아파트 시세표.
사진은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 아파트 시세표.
사진-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주변 생활 환경이 변해도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꼭 보답을 받습니다. 북한에서 장사로 신흥부자에 속했던 여성이 남한에서 부동산 중개로 성공한 분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남한에서 자신 소유의 땅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졌는데요. 오늘은 부동산 중개사 허승연 씨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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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연: 한국 부동산 업계에서 8년을 한 직장에서 견딘 사람이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탈북자로 지금 최고 자리까지 갔거든요.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허 씨는 계획하지 않았던 탈북이었지만 남한에 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섰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에서부터 장사에는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허승연: 1997년에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장사를 하다가 돈을 많이 벌다 보니까 감시 대상이었어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신흥부자들이 많이 생겼어요. 저도 그때 1992년에 시집을 가서 애를 낳고 고난의 행군 시기 장사를 했었거든요. 돈을 많이 벌어서 여기로 말하면 경찰의 추적대상이었어요.

기자: 어떤 장사를 하신 건가요?

허승연: 공업품 밀수 일인데 시장에 다시 갖다 넘기는 거예요. 옷가지랑 담배 등 중국에서 나오는 것은 닥치는 데로 기차로 운반을 해서 순천 장마당에 넘기면 두 배를 벌었어요.

갑자기 신흥부자 대열에 선 허 씨는 비사회주의 구루빠(검열대)를 피해 중국으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 4년을 중국에 숨어 살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자 생각했지만 자꾸 주변에서 탈북자들이 북송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불안한 마음에 2002년 한국 행을 하게 됩니다.

허승연: 남한에 오니까 두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북한에 못 가겠구나. 황홀한 생각이 들면서 슬프기도 하더라고요. 한국이 별세상으로 보이지만 마음 속에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잘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북한 땅에는 아들도 있어요.

이젠 완전히 운명이 바뀌어버렸습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된 고향. 당장 남한에서 혼자 힘으로 먹고 살아야 했기에 당시 남한정착 탈북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직업을 갖기 위해 학원에 등록합니다.

허승연: 처음에는 한국에서 제가 피부마사지 학원을 다녀서 자격증을 땄어요. 2002년 8월에 나왔는데 그때는 정부 지원도 좋았어요. 정부에서 학원만 다니면 80만원씩 줬고 정착금도 3,700만원 3년거치로 나왔었거든요. 그래서 한 3-4년을 한국에서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때 학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을 많이 했어요. 아무튼 3년 사이 돈도 많이 벌었고 중국에 있던 남편을 국제결혼으로 데려왔거든요.

어느 정도 남한생활도 익숙해 졌고 돈 모으는 재미도 있었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던 남편을 초청했고 이후 조금 더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허승연: 달라진다는 것은 별거 없고 돈을 모으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북한에서 장사한 경험을 살려보자고 종자돈을 10년을 모았어요. 그리고 애를 42살에 아들을 낳았어요. 당시는 남편도 있고 그때 직업이 사우나에서 카운터 일을 7년 했어요. 24시 사우나요.

그렇게 남편하고 돈을 모아서 아이를 낳고는 1년 집에서 쉬면서 육아를 합니다. 그리고 남한 땅에서 태어난 아들을 잘 키우자고 생각하니 갑자기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허승연: 북한에서 장사를 한 기질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돈으로 집을 사서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경매학원을 다녔어요. 부동산 경매 회사였는데 거기서 영업하는 직업이 나오더라고요.

북한 청취자 여러분은 경매라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런 겁니다.

허승연: 한국에서 부동산 경매가 북한에서 내가 장사하던 것과 똑같더라고요. 왜냐하면 돈이 있는 사람이 싸게 물건을 잡아서 이문을 남기고 넘기는 게 경매예요. 돈을 쥔 사람이 1억짜리를 5천까지 내려칠 수 있는 것이 경매더라고요. 그러면 제가 나중에 5천을 남기고 팔 수 있잖아요.

허 씨의 직업에 대해 좀 더 들어봅니다.

허승연: 처음에는 경매로 집을 사서 팔려고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저희 지금 사장님이 한국에서는 토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면서 경매도 토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집을 사서 경매를 하려고 했다가 토지부터 시작했어요. 월급을 받으면서 제 돈은 재테크를 했어요. 토지를 샀다 팔았다 하고 분양도 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면서 좋은 것은 제 돈으로 사서 수입을 내면서 일했어요.

부동산 경매회사에 취직을 해서 8년을 보냈습니다. 경험도 많이 쌓였고 이젠 그 분야에서는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되기 까지는 계획도 있었고 노력도 많이 했답니다.

허승연: 제가 제일 먼저 책을 많이 봤어요. 서점에 가서 부동산 토지에 관한 책을 많이 봤어요. 제일 마음에 와 닿는 책이 현대 정주영 회장의 책을 많이 봤고 한 7년을 돈을 모으면서 토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내가 한국에서 땅을 좀 가졌으면 하는 꿈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있는 돈으로 토지 구매를 하고 아는 지인들에게 소개도 하고 하다 보니 영업이 되더라고요.

초기정착 3년동안 이런 저런 경험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전부 끝냈다는 허승연 씨. 길이 아니면 절대 가지 말고 돌아보지도 말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제 아들은 10살이 됐고 그의 나이도 50대 초반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이뤄놓은 것이 뿌듯하다고 했습니다.

허승연: 현재 제가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이 여의도 63빌딩 옆에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입주해 살고 있어요. 한국은 자본주의니까 돈이 몰려있는 곳을 찾아가야 해요. 두려워 말고 모험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부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못사는 사람들을 자기네는 동정을 안 한데요. 왜냐하면 자기네는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밤잠을 안 잤다고 해요. 사람들이 노숙자부터 시작해 모두 나름 열심히 살지만 잘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그 답을 저는 부동산에서 찾았어요. 내가 한국 토지를 사서 나도 한국 땅 지주가 되자 이런 마음으로 접근을 하면서 그러면 부자로 가는 길도 쉽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제는 좀 쉬어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하는 허 씨. 자신의 땅도 소유하게 됐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좋은 땅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만 하면 앞으로도 큰 시련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승연: 저는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탈북자로 영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끝까지 하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다 제 고객이 되더라고요. 내가 뒤 돌아보니까 많이 참고 견디고 해냈구나 이런 생각을 현재는 많이 해요. 목표가 정확하니까 또 토지도 많이 보유했고 직업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하니까 지금은 너무 목표를 향해 달려와서 좀 쉬고 싶어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돈이 없어도 산다 이것은 말이 안되거든요. 돈이 있어서 나쁜 게 없거든요. 최선을 다해 잘살아서 봉사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고 하는 이런 것이 목표인 것 같아요.

제 2의 고향 오늘은 부동산 중개사 허승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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