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미국시민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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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
Photo courtesy of Wikipedia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최근 남한에 사는 탈북자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와서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치루고 귀국했습니다.  북한실상에 대해 증언을 한 여성 중에는 미국여행이 처음인 분도 있었는데요. 이 증언자는 워싱턴 방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또 느끼는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허초히 (가명)씨의 미국여행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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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초히: 사람들이 너무 여유롭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다닌 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허 씨는 워싱턴 방문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던 미국을 직접 와서 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는 거죠. 우선 세계 최대 강국 또는 우리라고 하는 개념보다는  내가 먼저인 개인주의가 넘치는 이기주의 부자나라 사람들이란 선입견에서 현실을 본 겁니다. 그리고 자신을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허초히: 전에도 열심히 살았지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이 너무나 세계에 대한 시야가 너무 좁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앞만 보고 달렸었는데 이제는 양옆도 돌아 보면서 시야를 넓혀서 내 자신 더 여유롭고 일을 열심히 해서 더 멋진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허 씨는 지난 1997년 탈북해서 중국에서 살다가 2003년 북송 됩니다. 그리고 북한으로 가서는 6개월 노동단련대에 있다가 나와 재탈북과 다시 강제북송을 당합니다. 허 씨도 결국 자신이 살 길은  남한행을 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결심을 하고 2007년 남한으로 가게 됩니다. 이상이 간단한 허 씨의 과거인데요. 이번에 워싱턴에 온 목적은 북한여성이 장마당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유린은 무엇인지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허 씨가 처음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도착해 입국장을 나와 한 것은 길게 한 번 숨을 쉬고 하늘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허초히: 제일 먼저 느낀 것은 공기가 좋다는 거예요. 공기가 너무 좋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겠더라고요. 제가 오전 11시 경에 도착했는데 하늘이 너무 파랗고 쾌청한 날씨여서 감동 먹었어요.

허 씨는 워싱턴 방문기간 동안 한국에서 온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호텔에서 지내며 20여개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아무래도 낯선 외국 방문 중에는 제일 먼저 익숙해 지는 것이 매일 머무는 숙소생활인데요.

허초히: 호텔은 너무 나쁘지도 않고 좋았어요. 안에서의 생활도 좋았고요. 식사는 아침에는 빵에 버터로 해서 미국 서양식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재밌게 보낸 것 같아요.

숙박객들에게 제공되는 아침식사는 접대원이 시중을 드는 방식이 아닌 차려놓은 음식을 개인이 원하는만큼 각자 덜어가서 먹는 뷔페식입니다.

허초히: 정말 다양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음식을 먹고 마지막에 후식을 먹을 수 있게 과일도 있고 영양식으로 먹을 수 있게 해놔서 깜짝 놀랐어요.

기자: 뭐가 아침에 준비돼 있던가요?

허초히: 계란찜에 와플이 있고 여러가지 블루베리, 아몬드 등이 있었고 보리죽 같은 것이 있고 우유도 있고 바나나, 오렌지, 사과가 있었고 빵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고 발라 먹어수 있는 젬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가면 제일 신경이 쓰이는 것이 먹거리를 해결하는 겁니다. 입맛도 다르고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요. 허 씨는 이렇게 처음 경험하는 미국 식사 방식에서도 색다른 경험을 합니다.

허초히: 저희가 가져온 음식 중에 남은 것이 있잖아요. 사과하고 바나나를 가져왔다가 사과는 남아서 제자리에 가져다 놔야하나 갈등했는데 호텔에 있는 여자분이 가져간 것은 돌려놓은면 안 된다는 거예요. 본인이 소유했던 것은 다시 갖다 놔서는 안 된다는 것.

요즘은 남한 사람들 식사 방식도 많이 서구식으로 변했지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커다란 접시 또는 국그릇을 두고 서로 나눠 먹는 방식을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요. 다른 나라에 가면 그 곳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허초히: 교회에서 초대를 해서 한 번 갔었거든요. 저희는 조금 안면이 있는 구면이면 음식을 덜어주는 것이 일반인데 그것이 실례더라고요. 내가 먹던 젓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남에게 주면 안 된다는 것을 거기서 알았어요.

또 거리에서 보는 미국인들을 힐끔힐끔 관찰하는 것도 게으리 하지 않았습니다.

허초히: 다 잘생겼어요. 너무 키도 크고 잘생기고 좋았어요. 또 제가 느낀 것은 사람들이 여유롭고 따뜻함을 느꼈어요. 한국에선 처음보는 사람이면 엘리베이터를 타도 외면하거나 얼굴을 돌리고 인사하는 경우가 적은데 여긴 알건 모르건 마주치면 웃으면서 다 인사를 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이라도 외면하지 말고 인사를 해야겠다는 것을 배웠어요.

일상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땅덩이가 넓어 서로 몸이 부딪기는 일이 없어 생긴 여유로움인지는 몰라도 허 씨는 누구나 만나면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좋아보였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거리풍경도 달랐습니다.

허초히: 나무가 너무 무성한 것이 좋았어요. 거리에 풍성한 나무가 너무 많았어요. 차를 타고 가면서도 그것을 보니까 눈이 시원하고 좋았어요. 서울에도 나무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풍성하진 않거든요.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 방문입니다.

허초히: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좋았어요.

기자: 백악관이라고 하면 북한으로 치면 주석궁인데 들어갈 때 경비가 삼엄하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나요?

허초히: 있지요. 백악관 들어갈 때 세번이나 검색대를 지났어야 했어요.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좋았어요. 경계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기자: 세 번에 거쳐 검사를 했다는 것은 어떤 겁니까?

허초히: 처음에는 여권을 보고 들어갈 때 몸에 있는 소지품을 검색대에서 검사마치고 가기전에 개가 한마리 있는데 잠깐 서있으면 냄새를 맡더라고요. 그리고 안에는 화장실 갈때도 안내자가 동행을 하더라고요. 엘리베이터 탈때도 그렇고요.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견은 없었지만 부통령을 만났습니다.

허초히: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부통령이 저에게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김정은이 왜 핵을 포기 못한다고 말하는가 그랬는데 제가 답을 했어요. 핵무기는 김정은의 생명줄이예요. 그런 핵을 포기 하면 그 여파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데 서민들이 죽는다든지 아니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더 강해진다거나 해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은 핵을 포기 못한다 그러니까 꼭 핵과 인권문제를 병행해야 한다 그랬어요.

기자: 부통령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허초히: 조금 의아해 하면서 사실일까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마지막에는 저희들 말을 듣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을 잘 전달하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람 사는데 어디든 뭐 특별한게 있는가? 다 똑같다란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단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북한 청취자에게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고 하네요.

허초히: 솔직히 버스나 전철을 탈 때 사람이 다 내린 다음에 타야 하는데 사람들이 내리기 전에 오르고 자리에 앉기 위해서 몸을 비비고 들어가고 하는데 여기는 아니더라고요. 절대 그런 것이 없더라고요. 내가 타려고 하면 사람이 문을 잡아주고 하는 것이 너무 여유로운 거예요. 꼭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여유있게 사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았어요.

남한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워싱턴을 일주일 동안 방문하고 돌아간 허 씨는 이제 밤낮이  뒤바뀐 탓에 시차적응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 워싱턴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한껏 높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허초히: 좀 빡빡하게 살다보니까 날카로운 부분이 많아요. 저는 이런 것을 좀 바꿔볼까 해요. 사는데 여유를 가지고 항상 상대방에게도 여유를 갖고 권하기도 하면서 멋지게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미국여행을 다녀온 허초히 (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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