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랑 돌려주며 건강하게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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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a.jpg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팔을 요양사가 안마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몸이 생각한 것처럼 움직여 주면 무슨 일이든 감당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일상생활조차 힘든 경우가 생깁니다. 이때 가족이 돌봐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참 난처하겠죠. 오늘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집으로 찾아가 돌봐주는 방문 요양사업을 하는 이윤진(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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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진: 동생하고 같이 장사를 했는데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니 동생이 보위부에 잡혀갔다. 너도 집에 오면 잡혀 갈 수 있으니 북한 땅을 빨리 떠나라.

청진 출신으로 국경장사를 하던 이씨는 이렇게 울면서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그것이 2003년이었는데요.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울컥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탈북한 배경에는 장사를 하면서 중국 업자에게 한가지 제안을 받았고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윤진: 그 밀수업자가 한국에서 납북자들이 북한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다면서 공책 한권이나 되는 명단을 보여주더라고요. 지금도 생각이 나네요. 단천 어느 상농광산 거기에 한국에서 배를 타던 사람이 납북됐는데 본인이 나가겠다고 해도 못나가는 상황이 됐데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할텐데 한국 경기도에 가족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 납북자 하고 같이 오면 한국에서 비행기표를 끊어서 올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하고 저의 동생, 저, 이렇게 세 명이 다 한국행을 할 수 있다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이 거기에 가서 그 사람을 데려오려고 했고 저는 국경연선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성공을 못했어요.

탈북해서 남한에 도착한 것은 지난 2009년. 처음 시작은 걱정과 망설임이 무척이나 컸습니다.

이윤진: 과연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누가 일 자리를 소개해 줄 것인가 하고 솔직히 말해서 막막했는데 막상 사회 나가서도 직업 전문학교에서 일을 소개하는 데 저는 그것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어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요. 그래서 그냥 식당에서 일했는데 한달 일하고는 월급을 받았어요. 그 쾌감이 너무 좋았어요. 내가 일해서 이만한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때 내가 여기서 살 수는 있겠구나. 비록 지금 현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식당일밖에 없지만 아직 젊으니까 먹고는 살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한에 도착했을 때가 35살이었는데요. 거진 10개월을 매일 쉬지 않고 일하면서 계획을 세웁니다. .

이윤진: 첫 번째 월급을 받고는 솔직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죠. 나이도 젊었고 꾸미고도 싶고 했지만 고향에 가족도 있고 해서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그 돈을 손에 쥐고 북한에 가족을 찾는 것에 집중했어요. 조금이라도 가족에게 돈을 보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결국 2년간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4명의 가족을 북한에서 남한으로 데려옵니다. 지금 그의 말을 들어보면 탈북해서 남한에 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윤진: 술술 풀리지는 않죠. 그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죠. 왜냐하면 북한하고 전화 한 번 하려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그때 공황장애까지 왔어요. 여름에 낮에도 전화가 오면 추워서 오돌오돌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통화를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가족을 다 데려오고 2-3년이 지나고 나니까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괜찮아지더라고요.

북한에 있는 가족을 전부 데려오고 나서는 자신의 앞날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소위 말하는 노후대책에 들어간 거죠. 계속 식당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이윤진: 내가 매일 식당 테이블을 닦으며 살수는 없다. 나도 좀 배워서 직업을 변경해 보자는 생각으로 컴퓨터 학원을 다녔어요. 그리고 자격증을 두어 개 땄어요. 그리고 식당일 그만두고 경리직을 하면서 제가 아는 선배가 사업을 하는 것을 봤어요. 그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3개 기관을 다니면서 일을 배웠어요. 다른 기관에 있는 분을 저희 기관에 모셔 오려면 어떻게 하는지 또 요양 보호사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공단 업무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지난해부터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일이 욕심만큼 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입소문이 나니 예전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자릴 잡아가고 있습니다. .

이윤진: 작년부터 복지사업을 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젊어서 낸 세금으로 나이 들어서 거동이 불편하고 몸에 지병이 있으면 가족이 돌보기 힘드니까 나라에서 장기요양 사업이라고 방문 요양을 제공하는데 그 사업을 작년부터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좀 어려웠는데 올해는 안정 상태에 접어들었어요. 한국에 와서 제가 거의 10년이 됐는데 한국의 복지로 인해서 제가 받은 사랑을 이제는 제가 좀 안착이 됐고 마음에 여유도 있으니까 큰 돈을 버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받았던 그런 좋은 마음을 이제는 베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년부터 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요양원을 차려서 노인분들이 거기서 지내는 것이 아니고 집으로 찾아간다는 거죠?

이윤진: 어르신들은 자기 집에 계시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어르신들 집에 찾아가서 3-4시간 돌봐드리는 것을 방문요양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고 북에 있는 가족들을 모두 데려온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한생활에도 적응이 됐기 때문에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앞날을 만들어 간다는 계획입니다.

이윤진: 그냥 지금은 제가 40대 후반이 되다 보니까 조금 더 사업을 확장하자고 해요. 지금은 돌보는 어르신이 20명이니까 월세 내고 제 월급 가져가는 것밖에는 없는데 앞으로 영업도 하고 홍보도 하고 해서 조금 더 여유 있게 되면 어르신들에게 더 맛있는 것도 사가고 좀 제가 베풀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어르신 방문요양 사업을 하고 있는 이윤진(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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