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연합회 봉사단-유정숙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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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연합회 봉사단 창단 1주년 기념 행사 모습.
한마음연합회 봉사단 창단 1주년 기념 행사 모습.
사진-유정숙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추운날 벌판에 혼자 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겨울바람이 맵고 온몸이 꽁꽁 얼면서 오래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옆에 있다면 옆사람을 꼭 껴안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혼자일때보다는 오래 견딜 수 있겠죠. 오늘은 자신이 갖은 것은 많지 않지만 주변과 나누면서 생활하는 남한생활 10년차 유정숙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유정숙: 그래요, 어제 온 것 같은데 저도 깜짝 놀라게 되죠. 그동안 해놓은 일보다 못한 것이 더 많고 ….

양강도가 고향인 유 씨는 중국에 가면 배불리 밥은 먹는다고 길을 떠났는데 현재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잠시 기억을 거슬러 탈북했던  2009년을 보면 당시 딸이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했고 서로 연락이 끊겨 딸을 찾으러 손녀를 데리고 중국에 갔다가 강제북송을 당할 위험에 처하자 남한행을 했던 겁니다.

유정숙: 처음에 왔을 땐 두 달을 다 잃고 하나는 잡혀가고 하나는 잃어버리고 한 것 때문에 3년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손녀를 데려왔으니까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에 대학을 다녔고 졸업을 하고 보니 나이 때문에 취업이 안되더라고요. 그래도 알바를 하면서 손녀를 키우는데 힘들어도 내가 벌어서 내가 쓰고 정부혜택도 보고 해서 보람있게 살았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남한정착 초기에는 쉽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남한생활 보름만에 6살된 손녀가 급성폐렴에 걸려 인사불성이 됐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런 손녀가  건강하게 자라서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됐습니다.

유정숙: 처음에는 북한식으로 잘못하면 아이를 통제하고 생활총화 하는 식으로 통제하니까 싫어하는 겁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나한테 자기를 통제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 하지 말라는 거예요.

북한 사람이 남한에 갔어도 집에서는 북한식으로 사는 것이 어찌보면 자연스럽지만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 입장에서는 뭔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사려졌습니다.

유정숙: 아이가 안들어오면 밥도 못먹고 그냥 자고 그랬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노는 것에 정신팔려 하더라고요. 그래서 때려도 보고 욕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자기가 그래요. 할머니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겠는가 난 행복하다. 나를 기다려주는 할머니가 있고 집이 있잖는가. 이렇게 말하니 대견해요. 지금은 할머니 준다고 학교에서 뭘 만들어 오고 할머니가 있어서 행복하는 말에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 하고 그래요.

쉽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탈북자에 대한 남한정부의 지원이 있었고 또 앞길을 헤쳐 나가자는 노력이 있었기에 점차 생활은 안정을 찾게 되고 작은 행복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유정숙: 그렇죠. 우리는 북한에서 그런말을 안하다가 여기서 하자니까 고마워 사랑해 하는 말이 안나왔어요. 안해봤던 말이니까요. 그 말을 하자면 어색하고 했는데 지금은 사랑해 이런 말을 자주해요.  사랑해, 고마워 이러면 욕을 못하겠더라고요. 이 말이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도 몰랐는데 실제 겪어  보니까 이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구나 하고 알겠더라고요.

우선 여러가지 자격증을 취득하고 늦은 나이지만 대학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게 된 것이 봉사활동입니다.

유정숙: 한가지로 말해서 우리가 한국 땅에 오라고 해서 온 것 입니까? 우리가 자유찾아 자발적으로 왔잖아요. 그런데 고맙게 받아주고 한국사람과 차별없이 본인 의사에 따라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것이 고맙죠. 또 내가 그 어떤 말을 해도 누가 우리집 문을 두드리고 나를 잡아가지 않는 다는 거죠. 그게 감사한 거죠. 돈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예요.

현재 40여명의 정규회원과 100여명의 등록 회원이 있는데 정기적으로 주변에 어려움을 겪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정숙: 한마음연합회는 대구시에 있는 탈북자들이 봉사를 하는 단체입니다. 독거노인도 찾아가고요. 마음에 여유를 못가지는 분들을 찾아가 봉사하고 있어요. 앞으로 통일될 때까지 건강한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자는 거죠.

봉사활동이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또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하는 자발적 참여 활동을 말합니다.

유정숙: 솔직히 말해 탈북자가 여기 왔을 때는 빈손으로 왔잖아요. 봉사한다는 것이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거죠. 솔직히 우리가 받은 것이 너무  많잖아요. 경제적으로 안되니까 몸으로 하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기분 좋게 하지 억지로 끌려나가서  하는 사람은 없어요.

가끔은 북한에 있을 때 생각도 하는데요. 특히나 추운 날이면 더 고향생각이 납니다.

유정숙: 북한에 있을 땐 20리씩 가서 나무를 해 와서 불을 피우고 하지만 여기는 난방이 다 돼있고 손녀 키운다고 정부지원도 있고 나가서 뗄감 안줍고 대조적이죠. 너무 감사하죠. 동사무소에서 쌀주지 고기도 북한에서는 못먹었는데 여기선 건강 생각해서 안먹고 그러거든요.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어두운 그늘없이 밝은 모습으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녀를 보면서 내일은 어떤 일로 보람을 찾을까 생각해 봅니다.

유정숙: 여기는 내가 생각하고 노력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한 것이죠. 제일 행복했던 것은 손녀딸 키우면서 학교에서 북에서 왔다고 할 때는 맘의 상처를 받긴 했지만 자기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장학금 받아서 좋아하고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제일 좋죠. 나도 지금 통일강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잖아요. 북한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죠. 이번에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됐는데 내가 하고픈 것 소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봉사단체인 한마음연합회 유정숙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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