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식의주, 모든 것에 감사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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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무교로에서 열린 서울 전통시장 한마당 축제에서 시민들이 시장 먹거리를 맛보고 있다.
서울 중구 무교로에서 열린 서울 전통시장 한마당 축제에서 시민들이 시장 먹거리를 맛보고 있다.
연합뉴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또렸했던 기억도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예전에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던가 잊고 지낼 때가 많은데요. 오늘은 남한생활 16년 차가 되는 노은정(가명) 씨의 남한에서의 식의주 생활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노은정: 항상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 우리를 받아줬다는 것에 감사. 그런 맘으로 산다고 할까요?

노 씨는 지난 1999년 탈북을 해서 중국에서 불법신분으로 숨어 살다가 2002년에 한국에 입국합니다.

노은정: 함경북도 청진시가 고향인데 그쪽에서 살다가 90년대라 북한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생활고 때문에 탈북했고 함경북도 무산에 있는 두만강을 넘어서 중국 길림성 연길 쪽으로  탈북해서 있다가 저는 밀입국으로 배를 타고 한국에 입국했어요.

기자: 탈북 당시 북한에서의 직업은 뭐였나요?

노은정: 북한에서의 경력을 다 말하자면 긴데 탈북 당시에는 해설 강사를 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배급이 끊기고 생활할 여건이 안돼서 장사를 해본 사람도 아니고 계속 직장만 다니다가 갑자기 경제난이 오면서 장사할 줄도 모르고 어려워지니까 탈북의 길에 올랐죠.

노 씨는 한 개의 군에서 직맹위원회 해설강사를 했습니다. 매일 목숨을 연명하기도 힘들어지자 살길을  찾아야 했던 겁니다. 그렇게 탈북을 하게 됐는데요. 중국에서의 불안한 생활을 끝내고 남한에 갔을 때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다 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사람이 사는데 제일 기본이 되는 식의주에서 남한 세상을 알았습니다. 한 번 직접 들어보죠.

노은정: 세월은 많이 흘렀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많죠. 그때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의 느낌은 우선 도시가 너무 화려했어요. 낮에는 낮대로 깨끗하고 도로가 뻥 뚫렸고 저녁은 저녁대로 야경이 너무 이뻤고 특이했던 것이 교회를 알리는 십자가가 엄청 많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기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남한의 잠자리는 어땠습니까?

노은정: 제가 하나원을 졸업하고 처음 받은 집이 18평 집이었는데 북한에 비교하면 잠자리는 너무  좋았죠. 우선 국가에서 준 임대주택이지만 방이 넓고 깨끗하고요. 처음애는 좀 낯설기는 했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우리가 사람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풍로를 돌려서 방을 따뜻하게 하는데 남한에선 내가 일부로 불을 지피지 않고 나무를 쪼개지 않아도 보일러가 알아서 방을 따뜻하게 해줬고 창문을 내다봐도 아파트라 공기도 깨끗했고…고향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북한과 비교해 봤을 때 잠자리는 너무 편했어요.

기자: 아파트 구조가 다 같은데요. 온돌에서 자다가 침대를 놓고 자는 그런 바뀐 생활에 대한 적응은 어땠습니까?

노은정: 그런 적응은 좀 어려웠어요. 북한에선 침대를 안썼잖아요. 제가 처음 있던 곳에 작은 거실에 방 하나 화장실이 있었는데 작은 방에 침대를 놨거든요. 북한 침대와 남한 침대는 너무 달라서 좋은  매트리스를 샀다고 해도 허리가 아픈 느낌, 뜨끈하게 지낼 수 없는 그런 것이 있어서 저는 거실에서 전기 온수메트를 켜고 자니까 북한에서 익숙한 온돌 못지않게 따뜻하더라고요.

기자: 먹는 것도 중요한데요. 한국분들 맛집 많이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만들어서 먹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떤가요?

노은정: 그래도 저는 북한에 있을 때는 다 해먹었잖아요. 그런 습관이 있어서 저는 거의 집에서 해먹었어요. 저도 요리를 잘 못하지만 집에서 재로를 사서 해먹는 것 즐기거든요. 남편하고 살지만 북한식 가부장적으로 남편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을 자랄 때 부모님이 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물론 주말에 외식도 가끔 하지만 평상시에는 퇴근길에 장을 봐와서 북한식으로 해먹는 편이예요. 남조선은 반찬을 만드는 것도 쉽잖아요. 가스레인지 하나 돌리면 되고 여러가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요리 하는 데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장작을 패서 어렵게 불을때고 해먹는 방식을 쓴다면 모를까 편리한 주방가구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음식 만드는 것을 즐기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매일 집밥만 먹는 것은 아닙니다.

노은정: 처음에는 밖에서 나가서 먹을 때는 신기했어요. 북한있을 때는 밖에 나가서 식당에서 먹는 다는 것이 딱 정해져있어요. 북한이 어렵다보니까 식당도 평양 시내를 제외하고 지방은 식당 운영이 잘 안되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남한은 나가면 아파트 주변에 다 맛집이 있어서 나가서 먹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입맛에 안맞는 것 그런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10년 넘게 생활하다가 보니까 밖에 나가서 먹는 음식도 괜찮고 집에서 맛있게 요리 해서 먹는 것도 괜찮고 그래요.

기자: 16년이 됐는데 그 사이 변한 것은 가족이 늘었다는 것인데요.

노은정: 네, 저는 처음에 혼자 왔어요. 몇 년 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같은 고향에 있는 남편을 만났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북한에 맡겨놨다가 11년만에 아들을 데려와서 지금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회사다니고 있어요.

여성이라서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옷이 날개라고 매년 계절에 따라 그해에 유행하는 옷을 찾게 됩니다.

노은정: 그럼요. 옷에 엄청 신경쓰죠. 북한에서도 일을 했기 때문에 그때도 사람들 앞에 많이 나서잖요. 부모님이 없는 살림에도 엄청 저의 입는 것 뒷받침을 잘해줬어요. 북한에 있을 때 부모님이 잘해주신다 해도 여자들 경우는 여름 정장, 겨울 정장, 코트, 솜옷, 굽높은 신발, 양산 이것이 전부였어요. 남한에 오니까 너무 천지 차이죠. 남한에는 계절에 따라 입고 텔레비전에나 잡지를 보다가 새로운 신상품 나오면 따라가고 싶고 하니까 월급 받으면 좀 투자를 하는 셈이예요. 그리고 처녀시절 북한에서 멋부리고 입고 싶은 것을 못입은 한이 남아서 그런지 월급을 타면 여름옷도 사입고 또 언제든 나가서 살 수 있잖아요. 또 자주는 못 가지만 가끔 백화점도 가고요. 입는 것은 생각만 있으면 언제든 걱정없이 사입은 편이에요.

기자: 살면서 힘들때마다 되네이는 글귀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인가요?

노은정: 저는 남한에 금방 왔을 때는 정착하느라 알지 못했는데 10년이란 세월을 훨씬 지나다보니 모든 것이 감사해요. 우선 내가 남한에 온 것도 감사하고 북한에서 해오던 직업을 계속 하는 것도 감사, 남편을 만나 사는 것도 감사 너무 감사한 것 뿐이예요. 그리고 회사 나가서 일을 할때도 같이 웃고 밥먹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것 같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노은정(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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