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업인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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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버섯 재배농가 모습.
표고버섯 재배농가 모습.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가서 땅을 일구며 사는 탈북여성이 있습니다. 현재 표고버섯 농사를 짓는데요. 최근에는 농업회사 법인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자 하는 탈북자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기술을 전수하면서 농사일꾼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함경남도 덕성군 출신의 최지수 (가명) 씨의 이야기 입니다.

최지수: 표고는 365일 공판에 나갈 수 있고 경쟁력이 있으니까. 올인해서 하고 있어요.

처음 고구마도 해보고 여러 작물을 심어봤지만 표고버섯은 일년 내내 할 수 있어 주력작물로 재배하고 있다는 최 씨는 현재 남편과 함께 버섯 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지수: 작년부터 표고버섯 하면서 3월1일부터 올인 했어요. 신랑은 원래 산림조합 다녔는데 회사 접고 나도 접고 표고에 올인 하고 있어요.

그 규모도 작다고 할 수 없는데요. 사계절 생산을 하기 위한 시설 재배를 합니다.

최지수: 비닐하우스에요. 가건물 식으로 하면 버섯 머리가 쭉쭉 갈아지지 않아서 3중 하우스를 지어서 해요. 판넬식으로 지었는데 비닐 세 층으로 해서 하고 있어요.

기자: 비닐박막(비닐하우스)으로 하신다는 거죠?

최지수: 비닐박막이지만 차광막이라고 두꺼운 소재로 일조량을 가려주는 것이 있거든요. 일반 비닐하우스는 전체가 비닐만 있잖아요?

기자: 한겹이 아니고 좀 두껍다는 말이군요?

최지수: 위에 차광막이 있어서 우박이 쳐도 구멍이 절대로 안 나고 안전하죠.

청취자 여러분은 농사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을 텐데요. 남한에서의 농사일은 다릅니다.

최지수: 한국에서 농사를 지어 보니까 복합비료도 있고 요소비료도 있고 해서 농사짓기가 참 편하죠. 북한에선 시기마다 퇴비를 만들어야만 농사가 되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은 안 그렇잖아요. 북한에는 비료가 없으니까 작물이 필요로 할 때 못 줘서 열매는 작고 위는 더 커지고요. 필요한 영양분을 한단계씩 늦게 주니까 그런 차이가 있는데 여기는 필요할 때마다 비료를 줄 수 있고 비료 가격도 비싸지도 않고 필요할 때 마다 주니까 작물이 좋고요.

농가 수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작물재배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같은 작물이라도 상품성을 높여 비싼 값에 팔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 농사일이라는 말이죠.

최지수: 농사를 택한 이유가 회사 다니면 월급 받고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오잖아요. 그런데 농사하는 것은 땅이 주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씨를 뿌리면 싹이 나오고 몇 달 후에는 열매를 갖다 주고 그 열매가 내가 조금 신경을 더 쓰면 천 원짜리를 만 원짜리로 만들 수 있고 그런 매력 때문에 농사를 선택했어요.

중국을 거쳐 남한에 정착해서는 정착 초기에 집 내부에 도배하는 일도 했고 포크레인 중장비 기사로 건설일도 했습니다. 이렇게 도시에서 월급쟁이로 살다가 농사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환영의 분위기는 아니었답니다.

최지수: 지난해부터 했어요. 귀농에 발 들이자면 진짜 사람들이 농사를 얼마나 안다고 하려고 하냐 그런 시선도 있었는데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다 인정을 해주고 자기 땅에 농사를 지으라고 해요. 버섯농사 외에도 콩 농사도 하고 고추, 옥수수, 고구마도 다 해요.

도시에 살 때는 몰랐는데 농촌에 내려와서 살아보니 인건비가 비싼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농촌은 물가도 싸고 인건비도 싸다는 말은 정말 농촌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란 거죠.

최지수: 농촌에도 일손이 모자라서 하루 일당이 여자는 10만원 남자는 13만원 정도 해요. 세금을 제하지 않고 받잖아요. 20일만 일해도 260만원 이잖아요. 회사에 다녀봤자 세금 제하면 150만원 정도 밖에 안되잖아요. 또 농업인 혜택이 있어서 건강보험도 우리가 지역보험으로 되면 재산이 없어도 6만원 정도 내는데 농업인 보험은 매달 나가는 것이 8천원이 안 되요. 북한사람이 한국에 오는 최종 목적이 내집 갖고 돈 벌면서 편하게 사는 거잖아요. 그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봐요.

본격적으로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농사일만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는데요. 과연 농사를 지어서 현재 자기가 버는 수입만큼 벌 수 있는가? 확신이 서기까지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사와 직장일을 병행했습니다.

최지수: 회사를 같이 다녔어요. 사회복지 시설에서 사무장을 했거든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맨날 나보고 너는 회사가 중요하냐 농사가 중요하냐 이렇게 물어봤거든요. 모린가를 해보니까 5월부터 재배를 하면 가을 10월에는 끝나거든요. 100평을 심었는데 1,500만원을 벌었어요. 도매로 팔았으면 300만원 정도인데 가공해서 직접 팔다 보니까 그렇게 벌 수 있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365일 할 수 있는 작물을 해보자 그렇게 해서 찾아보니까 구래에서는 오이가 유명하더라고요. 그래서 해보자 하고 작물을 찾기 시작했죠.

현재 최 씨가 사는 곳은 오이재배로 유명한 지역인데 최 씨는 재배 작물을 표고버섯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 수익이 좋기 때문입니다.

최지수: 오이 역사가 60년이거든요 한국에서 최초로 비닐하우스 재배를 한 것이 구래예요. 그런데 하우스가 다른 지역보다 오래되고 태풍이 심한데 대부분 어르신들이 하다 보니 시설이 낡았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뭘 하나 봤더니 버섯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표고버섯을 선택한 거죠.

기자: 처음에 들어가는 시설 투자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최지수: 시설 들어간 것만 1억 7천만원이고 1년에 종균 값만 해도 1억이 넘어요.

기자: 현재 어느 정도의 규모로 버섯재배를 하시는 겁니까?

최지수: 표고는 우리 시설로 천평 농사짓는다고 봐야 해요. 냉방시설이 다 돼있어서 여름에 100평이 넘는데 에어컨으로 온도를 맞추고 겨울에는 난방기로 돌리고요. 시설을 갖춰야만 사계절 할 수 있거든요.

노지에서 하지 않고 비닐하우스에서 버섯을 키우면 1년 365일 생산이 가능하고 상품성도 좋게 만들어 비싼 값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과학적 영농사업인 거죠.

최지수: 거진 3동이 돌아가요. 왜냐하면 종균에서 버섯이 나올 때면 열이 나니까 에어컨이 돌아가거든요. 온도를 맞춰주지 않으면 상품 가치가 없어요. 그래서 온도를 맞춰주기 위해 에어컨이 돌아가고 한동이 쉬면 다른 동은 또 버섯이 나오고 해서 3동이 풀로 돌아가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열심히 일해 돈도 벌었지만 버는 만큼 몸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피곤하고 머리도 아프고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도 반갑지 않았는데요. 농촌에 살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좋답니다.

최지수: 생각해 보니까 내가 목표가 없어서 더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옛날에는 내가 병이 들고 아파서 어떻게 살까 했지 하루를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사람들만 보면 아프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다닌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보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병이 있는데 농촌에서 어떻게 살아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 말을 들어보면 나도 옛날에 저랬구나. 남에게 긍정적인 힘을 안주고 부정적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옛날에 정말 부끄럽게 살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이제는 또 한단계 높은 곳을 보면서 계획을 세워 봅니다. 내가 귀농을 하기까지 경험했던 것을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자고 말입니다.

최지수: 지금은 사회적기업을 하기 위해서 법인도 만들었고 신경을 쓰고 있어요. 제가 농사일을 하기 위해 헤맸잖아요. 그래서 내가 시설을 만들어서 탈북자 대상으로 농촌생활을 즐길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내 최종 목표입니다.

제 2의 고향 오늘은 표고버섯 농사를 하는 최지수 (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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