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열심히 사는 여성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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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들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강의실에서 창업 교육을 받고 있다.
탈북 여성들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강의실에서 창업 교육을 받고 있다.
RFA PHOTO/노재완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가서 배우는 여성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할 수 없었던 공부를 하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오늘은 30대 후반의 남한생활 12년차인 유홍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유홍: 저는 2007년 한국에 입국했고요. 탈북 이유는 당연히 배고픔이었고요. 현재 한국에서 정착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유홍입니다.

먹거리가 너무 다양해 맛있다고 소문난 집 즉 맛집을 찾아 다니는 남한사람들에게 배가 고파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살길을 찾아 탈북했지만 유 씨는 지금도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이 그 어느곳보다 멋진 곳이라고 말합니다.

유홍: 북한 자강도 만포시가 저의 고향인데요. 많은 분들이 함북도나 평안도는 많이 아시는데 제가 산 자강도는 모르시더라고요. 일단 자강도 만포시는 중국 접경지역이고 압록강이 흐릅니다. 90퍼센트가  산으로 돼있습니다. 산이 많아서 공기가 좋고 꽃도 많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산좋고 물좋은 곳이었지만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했고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탈북했는데요. 10년 세월하고도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남한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은 생생합니다.

유홍: 제가 인천공항에 들어섰을 때 일단 설레였어요. 목숨걸로 위험한 순간을 다 견디면서 온  한국이라서 인천공항에 와서는 설레였고요. 그 다음에 국정원에 들어가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는  불안한 마음에 무서웠던 것 같아요.

조사기관에서 북한사람이 맞고 탈북자란 것을 확인 받고는 사회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 갑니다. 그때 다시 남한세상을 좀더 여유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유홍: 그냥 버스를 타고 차창밖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도시도 보이고 멋진 여성, 남성도 보였지만 아무도 아는사람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그런 걱정도 했던 것 같아요.

남한 사람들은 북한여성이 예쁘다고들 말합니다. 운동경기에서 남북단일팀이 구성됐을 때 북한  여성응원단의 집단공연을 봐서일까? 어쨌든 남한은 남성이 북한은 여성이 멋지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요. 정작 유 씨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유홍: 남남북녀라는 말을 듣기는 했었는데요. 한국에 와서 보니 사실 외적으로 봤을 때 한국여성이  북한여성보다 훨씬 사실 이뻐요. 아무래도 생활환경이 좋아서 그런지 한국여성이 훨씬 이쁜 것 같은데…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북한여성은 순수한 미인이 많은 것 같아요.

기자: 본인은 어떤가요? 남쪽에 와서 머리도 하고 화장도 하고 꾸미게 되실텐데요. 어떤면에서 남한여성과 다르고 따라하기 힘들던가요.

유홍: 그건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옷은 텔레비전 보고 드라마를 보고 따라할 수 있는데 화장법은 어렸을때부터 제가 봐온게 있어서 안되더라고요. 얼마전에도 탈북민들의 모임에 갔는데 딱 알아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같은 탈북민이라는 것을요. 저는 남한생활도 10년이 넘고 나름데로 꾸미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아봤지 했는데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눈썹 그리는 모양이 딱 북한여성의 눈썹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화장법은 고칠수가 없구나 하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20대 후반 시작됐던 남한에서의 새로운 생활.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 아이를 키우는 육아의 문제도 있었지만 유 씨는 대학입학을 결정하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합니다.

유홍: 저는 11년동안 처음 한국와서 3년동안은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살았던 것같아요. 그리고는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저희는 한민족이잖아요. 한국오면 그냥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민족이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많은 것이 다르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 일상대화는 가능한데 뉴스를 보거나 전문체널에서 말씀을 하시면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 좀 잘살려면 공부를 해야겠구나 생각을 해서 대학공부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대학생이라고 하면 20대 초반의 나이 그리고 중반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 됩니다. 그런데 유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적지않은 나이에 대학에 간겁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유 씨를 격려하거나 응원하기 보다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유홍: 제가 대학공부를 4년제를 나왔지만 6년을 공부했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이 고등학교 졸업이 돼야 하는데 저는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다 못끝내고 왔거든요. 그래서 검정고시부터 공부를 했거든요.  공부를 제 아이가 13개월때부터 시작 했거든요. 검정고시부터 해야 해서 어려웠고 또 아이를 데리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어려웠고 또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공부를 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기자: 보통은 당장 먹고 살고 아이 키우는데 시간을 쏟는데 왜 그렇게 공부를 하셨어요.

유홍: 중요한 것이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음식에 취미가 있고 한데  저는 공부에 취미가 있었고요. 두 번째는 북한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먹을 것이 없다고 내일부터 학교를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울면서 학교를 못갔던 아픔이 있거든요.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아서 공부를 하게 됐죠. 제가 뉴스를 보거나 한국분들과 얘기할 때 잘 알아듣지를 못해서 한국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그 두 가지 생각 때문에…

유 씨를 아는 사람들은 유 씨에 대해 이쁜 아이엄마가 배우는 것에 아주 열성적이다. 적극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시간 여유가 될 때마다 좋은 강의가 있으면 들으러 가고 배우려고 합니다. 유 씨는 아는 것이 곧 힘이다라는 것을 신조처럼 여기며 살고 있는데요.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남한생활에 매우 만족한답니다.

유홍: 자유롭다는 것이요. 어떤 분들은 10년이 됐다면서 아직 자유인가 하시는데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  바쁘게 살다보니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북한과 비교 하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 그리고 내가 노력한만큼 열매가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아요.

기자: 살면서 문득문득 잘왔다고 평소에도 느끼십니까?

유홍: 네, 왜냐하면 북한에서 저희 집이 적대계급으로 하위 계급이었거든요. 그랬는데 한국에 와서 대학을 갈 수 있고 공부하고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니까 가능했어요. 그래서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한국에 온 것이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고 감사한거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길을 꿋꿋하게 걷고 있는 유홍 씨.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하는 성경구절을 사랑한답니다.

유홍: 공부를 시작할 때 이렇게 힘든줄 모르고 했지만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공부를 할 꺼예요. 공부한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일단 6년 공부하면서 애를 키우면서 학업을  병행하느라 어려웠지만 힘든 것을 견뎠으니까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잘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요. 또 하나는 엄마니까 아이에게 엄마가 와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공부한 것에대한 후회는 전혀 없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자강도 만포시 출신의 유홍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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