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삶도 중요해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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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_gyungju_b.jpg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순희 씨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 때는 여가 생활이란 것이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매일 일어나서 일터로 가서 해가 지면 들어오고 다음 날이면 같은 일의 반복이죠. 하지만 좀 생활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뭔가 마음이 즐거운 일을 찾게 됩니다. 오늘은 열심히 살면서 정서적으로 즐기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이순희(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순희: 이제 남한 사람이 되어 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얼마 전 이 씨는 단풍구경을 다녀왔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나뭇잎이 다지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급하게 친구들과 함께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왔는데요. 남한생활 10년이 되니 여러모로 마음의 안정도 찾고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씨는 고향을 떠난 지난 2006년 북한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순희: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배낭을 메고 장사를 다니던 사람들 그리고 장마당에 앉아서 음식을 해가지고 앞에 상을 놓고 술도 팔고 하면서 서로 자기 것 사라고 여기 와서 잡수라면서 국수나 떡을 팔고 하면서 팔던 거 그리고 장마당에서 중국에서 밀수로 들어온 낡은 옷을 놓고 팔던 생각나요.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땐 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말투가 달라서 쉽게 남한사람과 어울릴 수가 없었는데요. 이제는 세월이 흘러 옛말이 됐습니다.

이순희: 차이라는 것은 남한 사람들 언어가 우리하고 좀 달라요. 우리는 말투가 좀 억세고 여기 사람들은 말도 좀 차분하고요. 그래서 어떨 때는 욕을 해도 욕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자신이 살던 익숙한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꼭 탈북자여서가 아니라 모든 이에게 낯설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스며들며 아는 사람끼리 만남을 갖게 되면서 생활은 안정을 찾습니다.

이순희: 전에는 좀 두려움이랄까요? 아직 이 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겁이 났죠. 여기가 어딘지 가도 되는지 그런 것을 몰랐는데 이젠 여기가 어디고 아름다운 곳이 어딘가 다 알게 되고 생활의 경제적인 것도 괜찮아지니까 정서적인 생활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좋은 곳을 찾게 되고 또 여기 친구들 중에 차가 있는 사람이 여럿 있어요. 친구 중 한 명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지금 팔공산에서 단풍축제를 한단다 하면 정서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찾아가게 되는 거죠.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라도 네비게이션을 찍고 가면 딱 거기 목적지 도착했습니다 하니까요.

대구에 사는 이 씨는 근교에 있는 산을 다녀왔는데요. 늦가을 빨간 단풍에 흠뻑 취해서는 고향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씨가 모르는 길도 네비게이션을 찍고 간다고 말한 것은 자동차에 설치된 위성지도가 알려주는 데로 운전을 해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기자: 운전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이순희: 운전면허는 하나원에서 땄으니까 10년이 됐는데 직장생활 초기에는 급여도 별로 많지 않고 유지비가 드니까 생각을 못하다가 2017년에 차를 타서 3년째 운행을 하는데 이제는 어디든 운행을 하고 있어요.

기자: 직접 자기 차를 몰면서 생활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이순희: 차가 없을 땐 거기로 가는 버스가 있을까?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하고 했는데 지금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차를 가지고 가니까 좋죠. 예전에는 차편을 알아보는데 한참 걸렸는지 이젠 바로 가니까 얼마나 좋아요.

자: 코로나 19 때문에 나라에서 여행도 금지하고 한다고 하던데 친구들과 단풍구경을 다녀오셨네요?

이순희: 이전에는 코로나 사태로 해서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단계를 낮춰서 10명 까지는 모여서 갈 수 있으니까 친구들에게 단풍철이니까 가자 해서 맛있는 것 각자 해서 잘 놀고 왔죠.

기자: 이번에 간 곳이 어디라고요?

이순희: 팔공산 국립공원 가서 단풍을 보고 왔어요. 두부밥, 순대 이런 것을 해서 갔다 왔고 그리고 저번에는 문경새재를 다녀왔어요. 거기에 사과가 유명한데 5kg을 사왔고 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경주에 은행나무 잎 숲이 멋있다고 해서 또 갔다 왔어요. 빽빽한 나무숲에 노란 은행잎을 보니까 공기도 좋고 멋있었어요.

기자: 경주는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요?

이순희: 아니에요.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려요. 고속도로로 100km 달리니까 1시간 안 걸려서 도착했어요.

기자: 남한생활 10년이 됐는데 이전에도 여가 생활을 즐기고 하셨습니까?

이순희: 안 했죠. 안 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좋으니까 정서적인 즐거움을 느끼려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보고, 듣고, 느끼는 그런 즐거움이 있잖아요. 예전엔 일하느라고 언제 그런 구경할 생각을 했겠어요. 이젠 생활에 여유가 있으니까 어디 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구경을 가니까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저기 봐라, 나이 들어도 영감 노친 둘이 와서 서로 사진 찍어 주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니 그런 말을 했거든요.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고 여름이면 강가에 나가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은데 항상 북한은 헐벗고 굶주린 사진만 보여준다. 항상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데요.

기자: 남한 이웃이 왜 고향을 떠났어요 하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십니까?

이순희: 여기 같은 생활이었으면 안 오겠죠? 이렇게 말해요.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서 힘들어서 왔어요. 이렇게 말해요.

기자: 그렇게 말하면 반응이 어떤가요?

이순희: 놀라요. 북한이 진짜 그렇게 먹는 것도 못 먹어요. 어떤 분들은 이해 못하겠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면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해요. 풀죽을 먹어서 얼굴이 퉁퉁 붓던 거, 장사하겠다고 기차 칸 꼭대기에 올라가 다니던 이야기를 해주면 세상에나 하고 말해요.

50세에 남한에 도착해 대학공부를 시작했던 이 씨.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또 공부해서 간호 조무사로 5년 넘게 일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그를 보면서 직장 동료들도 놀랐는데요.

이순희: 제가 처음에 회사에 배치를 받아서 3년이 지나서 회사동료들과 허물없이 지내게 되니까 동료들이 그래요. 저희는 남한에서 태어나 살았는데 왜 선생님처럼 간호조무사 할 생각을 못하고 공부할 생각을 못했을까 그래요. 북에서 온 사람이 간호 조무사 자격을 따서 일하는데 왜 우리는 요양 보호사로 선생님 밑에서 힘든 일하는가 그래요. 그런 말 을 들으면서 내가 한국 생활 잘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죠.

성공적인 남한생활 정착에 대해 정답도 특별한 비결도 없다고 말하는 이 씨.

이순희: 생활은 역시 자기가 마음 먹고 개척하기 나름이에요. 가만히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 나가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하늘도 보면서 정서적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갖는 것이 자기 마음 먹고 활동하기 나름이더라고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가자 하면서 의식적으로 자기 생활을 꾸려 나가려는 생각이 있으니까 간 거죠.

이제 남한사람이 부러워하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이 씨는 더 재미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이순희: 내년에는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첫째로 봉사단체에서 제주도 가려고 회비도 모았는데 올해 못 간 것을 가려고요. 또 국내여행은 했으니까 내년에는 외국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해외 여행도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생활 10년이 되는 청진 출신의 이순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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