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 한국사회 적응 10주년 세미나 (1)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즉 탈북자 수가 지난 10년간 1만 6천명을 넘어서 2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특히 지난 2000년 이후 여성과 가족을 동반한 입국자가 늘어나면서 급격히 불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2천 809명이 남한에 입국했고, 올해는 이보다 훨씬 많은 3천 5백 명이 입국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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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펼쳐질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앞두고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 정착하면서 부딪치는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심층적으로 짚어보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30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서울통신에서는 오늘과 내일 두 차례에 걸쳐 탈북자의 적응에 따른 문제점과 탈북자와 남한 주민 간의 상호인식 문제에 관한 토론회 내용을 각각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실태와 탈북자 지원에 관한 정부의 문제점에 관해 살펴봅니다.

남한의 홍사덕 국회의원과 민간 통일운동 단체인 새조위,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이 '북한이탈주민 한국사회 적응 10년, 현주소'란 주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토론회는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탈북자와 일반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하는 등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습니다.

먼저 '북한이탈주민 정책 변화와 방향 모색'이란 주제로 발제에 나선 고려대학교의 윤인진 사회학과 교수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의 유형과 특징, 나아가 역대 남한 정부의 탈북자 지원책을 시대별로 설명했습니다. 윤 교수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지난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귀순 용사'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90년대 초에도 탈북자 수가 10여 명 정도로 적은 데다 남한 정부의 관대한 대우로 별 어려움 없이 남한 사회에 적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1990년 중반 최악의 식량난을 겪으면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특히 2000년대 들어선 여성과 가족을 동반한 탈북자들이 주를 이루면서 지난 몇 년간 2천명 이상씩 남한에 입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탈북자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남한 정부는 탈북자 지원법을 만들고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돕기 위한 시설인 하나원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펼쳤다고 말했습니다.

윤인진: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의 수라든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한 기간을 고려해볼 때 정착지원의 수와 내용은 결코 부족함은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다른 취약계층에 비교해 더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이 결코 우리 사회에서 홀대를 받고 있지 않다.

윤 교수는 남한 정부의 이 같은 지원 배경에는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남한에 입국한 데 대한 보상적 차원도 있지만, 이들의 사회적응이 남북한 통일과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요인도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남한 정부, 나아가 탈북자와 관련한 시민단체들의 대폭적인 지원에도 탈북자들은 경제, 사회, 심리적으로 여전히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인진: 우리가 외관상 볼 때 아주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이런 제도가 실질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데 역부족이다...

윤 교수는 그 이유로 현재 남한의 노동 시장이 남한 주민들조차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대단히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빠져 있어 탈북자들이 직업 훈련을 받고 고용 지원금을 받아도 고용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고용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접근이 아닌 사회적인 접근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윤인진: 북한 이탈주민들이 갖고 있는 능력, 잠재력에 있어 단지 경제적인 가치만 평가할 때 이분들은 노동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적 일자리라든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는 노동시장에서 발을 붙이기가 어렵다...

윤 교수는 탈북자가 매년 2천명 이상씩 남한에 입국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정착제도의 틀을 변경할 필요가 있으며, 앞으론 중앙 정부는 물론 지방 정부와 시민 단체, 나아가 탈북자 간의 협치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탈북자 동지회의 홍순경 회장도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지난 10년 동안 1만 6천명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아직도 성공적인 정착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홍 회장은 특히 최근 몇 년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의 78%가 여성인데다 대부분 중장년 혹은 미성년이라 남한에서 직장을 구하거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홍 회장은 탈북자의 순조로운 정착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넘어올 때 드는 ‘입국비’를 꼽았습니다.

홍순경: 올해에는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숫자가 3천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입국비를 가장 먼저 부담하게 됩니다. 특별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하나원을 나와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는 초기에 지급되는 정착금 중에서 입국비를 지불하다보면 한국 사회의 적응 시작부터...

홍 회장은 또 남한에 대한 탈북자들의 편향된 정보와 외로움, 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인 차이, 탈북자를 바라보는 남한 사회의 배타적인 시각과 전문성 결여 등도 탈북자의 성공적인 재정착을 가로막은 요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홍 회장은 남한 정부가 기존의 탈북자 지원정책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단적인 예로 정착금 지원 문제를 꼽았습니다.

홍순경: 지금 현재 가족 1인의 경우 천 9백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홍 회장은 실제로 탈북자 10명 가운데 6명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활을 할 정도로 궁핍한 데다, 대부분은 임시직이나 단순 노무자여서 고용이 불안하고 월급도 50만~100만원으로 남한 일반 근로자가 받는 평균 월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탈북자의 생활 보장책을 강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홍 회장은 또 탈북자의 취업 문제에 관한 남한 정부의 무관심을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례로 홍 회장은 탈북자에 대한 취업 장려금은 해당 탈북자가 소위 4대보험이 가능한 기업에 취직했을 때나 효력을 볼 수 있지만 탈북자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이처럼 엄격한 제도 때문에 탈북자에게 돌아가는 현금 지원이 그만큼 줄어들어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통일부 서정배 정착지원과장은 남한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그간 취업 문제와 생계 문제에 닥친 현안을 처리하느라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들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자리 매김을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반성’이 적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서 과장은 남한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탈북자 자체의 정체성 문제와 탈북자를 바라보는 남한 주민의 인식과 함께 어울려야 정책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서 과장은 특히 현재 남한 정부가 1만6천명에 달하는 탈북자를 제대로 끌어안지 못하면 2천5백만 북한 동포를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일 자체를 ‘통일의 모의실험’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고, 탈북자 지원 정책과 관련해 제기된 여러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