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남한 말 배우기 힘들어요"-탈북자동지회 ‘말하기 강좌’ 성황

남한에 정착한 1만 6천여 명의 탈북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남한 사람들의 말투와 발음을 익히는 일입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탈북자들은 서울 표준어와 발음을 익히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서울-변창섭 xallsl@rfa.org
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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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탈북자동지회가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남한말 말하기 강좌’를 무료로 실시해 탈북 수강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남한의 탈북자동지회가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남한말 말하기 강좌’를 무료로 실시해 탈북 수강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RFA PHOTO/ 변창섭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남한의 탈북자동지회가 지난 4월부터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말하기 강좌’를 무료로 실시해 탈북 수강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배움의 현장을 서울통신이 찾아가봅니다.

(강의실 현장음)

황연신 강사: 자, 다시 한 번, 한 번만 더 천천히.

학생: 세종대왕이 궁궐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모 건물의 2층 소강의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최근 찾은 이 강의실에는 20여 명의 탈북자가 모여 남한 표준말과 발음을 익히려고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말하기 강좌’는 탈북자동지회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사회 적응을 위해 마련한 ‘하나교실’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강의를 맡은 황연신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나 수업을 듣는 탈북자 모두 진지한 표정입니다. 이날 황 강사는 남한 발음 가운데 특히 어렵다는 모음의 구조에 관해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했지만, 탈북자들은 여전히 쉽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강의를 들으러 온 탈북자 수강생들은 대부분 직장인입니다. 남들처럼 토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이처럼 말하기 강좌를 굳이 들으려는 까닭은 자명합니다. 하루빨리 남한의 표준 말투와 억양 등을 익혀 남한 사람의 차별이나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강의를 기획하고 준비한 탈북자 동지회의 이철민 이사의 말입니다.

이철민: 서울, 경기 지역에 거의 70-80%가 사는데 북에서 쓰다 온 원래의 언어표현이 나쁜 건 아니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과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을 때 뭔가 기회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이나 여러 사회활동을 할 때 말이다. 말투가 이상하거나 서울에 사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라는 편견이나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각 때문에 기회를 잃고,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강생 가운데 한 사람인 탈북자 김 모(35) 씨도 말투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여러 번 실망과 좌절을 느꼈습니다. 김 씨는 지난 2006년 11월 탈북했습니다.

김 모: 아무 데 가서도 우리가 제일 많이 상처를 받는 게 현실이다. 같은 말을 하고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하느라 애써도 그 사람들이 듣고는 ‘아, 조선족인가요?’하고 묻는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는 사람을 낮춘다는 거죠. 쇼핑에 가서도 매장에 가서도 우리한테는 서비스도 없고 눈길을 덜 돌린다. 그렇지만, 다른 한국분이 오면 좀 더 잘해주려고 하고 친절하려고 하고...

실제로 김 씨는 얼마 전 옷가게에 들렀다가 자신의 생김새와 말투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김 모: 제가 쇼핑하러 갔는데 ‘저 옷 좀 보자’ 해서 보고는 안 사고 돌려줬더니, 점원이 대뜸 ‘조선족인데’라며 하더라. 그래서 ‘저 조선족이 아니라 북한에서 왔다.’고 했더니 말을 피하더라. 단번에 조선족이란 말을 서슴없이 우리 앞에서 하니까. 우린 같은 민족인데 한국사람들은 미국사람은 올려다 만보고 우리가 못살다 오니까 그런가 보다. 말도 크게 차이가 없는데 말 억양보고 사람 높낮이를 나누니까 서럽기도 하다.

김 씨와 같이 탈북한 수강생 강 모 씨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3천 원 나올 만한 거리인데 8천 원을 달라고 해서 의아해 물어봤더니 택시 기사가 다짜고짜 ‘이건 모범택시라서 그렇다’고 강변했다는 겁니다. 강 모 씨는 택시 기사가 자신의 말투에서 탈북자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고 요금을 물렸다고 믿고 있습니다.

탈북자 수강생들이 이를 악물고 남한 표준 말투와 발음, 억양을 익히려는 것도 바로 이런 차별 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섭니다. 이들이 배우면서 특히 어렵게 느낀 대목은 모음 발음입니다. 황연신 강사가 모음을 발음할 때 혀와 입술, 턱을 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수강생 대부분은 북한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다 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터득하는 게 그다지 쉽지가 않습니다. 황연신 강사는 모음 가운데서도 특히 ‘오’와 ‘어’, 또 ‘우’와 ‘으’ 의 발음을 탈북자들이 구별해서 익히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황연신: ‘오’하고 ‘어’의 발음이 남한 발음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 모음도 어렵고 자음도 어렵다. 억양도 좀 차이가 난다. 남한 쪽 억양은 높낮이가 덜한 데 북한이 조금 높낮이가 심하다. 어릴 때부터 말하기 교육에 차이가 있다. 북한 사람이 긴장돼 있고 높게 발성하는 데 그런 부분이 남한 사람이 듣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강생 강 씨도 모음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강 모: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아’는 괜찮은데, 어와 오의 차이, 우와 으 그 발음이 너무 어렵다.

그러나 수강생 김 씨는 모음 못지않게 억양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김 모: 크게 어렵다는 게 그저 억양 부분이다. ‘안녕하세요’를 배운 대로 말하려는 데, 나도 모르게 북한식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순식간에 몸에 밴대로 하게 된다. 그렇게 주의하고 확실하게 하느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럴 때면 결국 우리는 북한 사람이라는 걸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 황연신 강사는 모음은 연습을 주기적으로 하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북한식 억양을 하루아침에 남한식으로 고치기는 무척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 일은 마치 전라도와 경상도 어투를 가진 사람이 서울식 억양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울지 모릅니다. 강 모 씨는 그 원인을 탈북자의 자신감이 부족한 데서 찾습니다.

강 모: 내 생각으론 북한 사람들의 억양이나 악센트가 차이가 있는데, 이는 자신감이 부족해 입술 모양과 얼굴 근육량을 적게 쓰는 것 같다. 그런 데서 아마 발음이...

그러나 김 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냥 북한에서 배운 말투와 억양을 남한에서도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다는 겁니다.

김 모: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대로 배우고 습득한 대로 살고, 조선족대로 살고,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대로 살고. 한국 사람은 다문화 프로그램도 많이 하는 데 왜 자기 한 동포하고는 선을 긋는지 그게 안타까워요.

황연신 강사도 김 씨의 이런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점은 결국 남한 사람들이 어투나 발음이 자기들과는 다른 북한 사람을 좀 더 이해하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황연신: 옳은 말이다. 서로 ‘내 발음이 틀리다, 네 발음이 맞다.’가 문제가 아니라,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발음으로 하고 표준말 쓰는 사람은 표준말로 하고 북한 말 쓰는 사람은 북한 말로 해야 하는데, 당연히 한 민족표준말문제가 되긴 한다. 한국사람도 미국에 가면 차별을 받는다. 미국 교사들이 다민족 프로에서 한국사람에 대한 인상을 쓰라고 했더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떨어지는 것 같고, 적응을 못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차별하고 받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극복을 해야 한다. 표준말을 하세요가 아니라 알고 못하는 것과 알고 않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서로 이해하면 조금씩 바뀔 것이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남한 사람들이 준비가 안 됐다. 서로 조금만 더 기다리자.

한편, 최근 4회를 끝으로 하나교실 2기의 ‘말하기 강좌’를 수료한 탈북자는 지난 4월 이후 약 60명에 달합니다. 탈북자동지회의 이철민 이사는 “취업과 컴퓨터 강의 등 하나교실이 마련한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수강생들이 말하기 강좌에 큰 관심을 보일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 강좌가 앞으론 서울 지역 외에도 다른 지역에 설치돼 더 많은 탈북자가 혜택을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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