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의 실체] 김정일의 친인척 등용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2010.06.14
jangsungtack-305.jpg 북한은 7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를 열어 장성택 국방위원회 위원을 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정일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지난 7일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장성택은 김정일과 처남 매부간입니다. 김정일의 유일한 혈육이라고 할 수 있는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며 김일성의 사위가 바로 장성택입니다. 그동안 장성택은 김일성 일가의 사람이라는 출신 배경을 바탕으로 1970년대부터 줄곧 북한에서 최고 권력가로 세력을 떨쳐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성택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김정일이 2004년 장성택이 파벌을 만든다는 이유로 그의 지위를 모두 박탈하고 장성택을 따르던 측근들도 함께 숙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 장성택은 북한의 공식석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6년 장성택은 근로단체 및 수도 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돼 복귀를 알리더니, 2007년 10월 당내 핵심부서인 노동당 행정부장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권력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은 이번에 장성택을 다시 한번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키며 그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김정일이 한때 자신의 손으로 내쳤던 장성택을 다시 북한의 최고 실세로 복귀시킨 것은 결국 김정일 사후의 후계구도 구축 문제를 장성택. 김경희 부부에게 맡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해외지도부연구담당 국장은 김정일이 건강이 악화된 이후 가족인 김경희와 장성택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으며, 최근 김경희의 현지지도 동행 횟수가 높아진 점도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습니다.

켄 고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셋째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보호자(Protector)가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그 후보로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김 위원장은 가족들에게 의존하려는 의지가 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장성택이 정치적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었던 데는 부인 김경희의 영향력이 컸다는 설명입니다.

현재 노동당 경공업부 부장직을 맡고 있는 김경희는 당 간부로서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가 가진 권력만큼은 막강합니다. 김정일은 평소 ‘경희의 말은 나의 말과 같다’. ‘나와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친동생 김경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자 김씨는 경공업 분야에서 실적이 없는 김경희가 여전히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이유는 김경희가 김정일의 혈육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김경희는 능력은 전혀 없고 일은 실무 일군들이 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공업 사업이 일반 인민들의 먹고 입고 쓰는 문제와 직접적인 생활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경공업 부문에 장군님이 얼마나 관심이 있으면 친동생을 이 분야에 책임자 세웠을까 이런 심리전을 쓰고 있습니다.

김경희는 남편 장성택이 한때 실각됐을 당시 그 충격으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최근 김경희는 건강을 다시 회복하고 올들어 김정일의 공개활동을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로 꼽히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심 계층에는 김경희와 장성택 부부처럼 김정일과 친인척 관계를 맺어 권력를 누리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김정일의 사촌 고모부인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일의 외사촌 매부인 리용무 국방위 부위원장, 김정일의 외사촌의 아들인 강관주 노동당 대외연락부장, 김일성의 외사촌인 강영섭 조선기독교도연맹 위원장, 김일성의 고종사촌 김정숙의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위원장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망했지만 김정숙의 남편으로 김일성의 외사촌 매부인 허담 전 외무상과 장성택의 형인 장성길 중장과 장성우 차수도 김정일이 권력을 잡기 이전부터 친인척으로 맺어져 오랫동안 부동의 권력을 누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면 김정일은 과거 자신과 권력다툼을 벌였던 계모 김성애와 배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는 등용은 커녕 곁가지라고 분류하고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하게 배격해 왔습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사망한 후 비서였던 김성애와 재혼해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현재 폴란드 주재 북한 대사로 나가있는 김평일과 그리고 독일에서 병으로 사망한 김영일, 그리고 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의 부인인 김경진이 그들입니다.

김평일은 1980년대 중반부터 줄곧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등 해외 북한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1998년부터 폴란드 대사를 맡으며 20년이 넘도록 해외에 머물고 있습니다. 김평일의 누나 경진 역시 김광섭 주 오스트리아 대사의 부인으로 15년째 오스트리아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막내 영일은 2000년 현지에서 병으로 객사했습니다.

김정일의 계모 김성애는 김일성이 살아있을 당시 조선여성총동맹 중앙위원회(여맹) 위원장으로 승승장구 했으나 김정일이 권력을 잡은 후부터는 근황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1994년 6월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평양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과 함께 카터 전 대통령 부부를 맞이했던 김성애는 그로부터 한달 뒤 김 주석이 숨지자 장례 행사에 얼굴을 잠깐 비춘 것이 공개석상에서 보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김정일과는 숙부 조카 사이인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도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김정일에게 최고 지도자 자리를 내어준 후부터 세상에 나오지 않고 칩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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