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보내 드리는 주간 기획 '김씨 왕조의 실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수경입니다. 오늘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국방위원장 김정일에 대한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북한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군대를 의무적으로 다녀와야 합니다. 그것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긴 세월을 말입니다. 앞서 북한은 군징병제도를 '초모제'(招募制)로 부르는 형식상의 자원제도로 운영했으나 1990년대 말경부터 대상자 모두가 입영하는 징병제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또 1994년부터 시작된 식량난으로 인해 수많은 어린이들이 굶어죽는 바람에 군대에 모집할 대상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북한의 젊은이들은 군대에서 청춘을 다 바쳐야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당원도 못되고, 당원이 못 되면 출세 길이 막히기 때문에 군대를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묵묵히 참아내고 있습니다.
남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한은 의무병역제도 아래, 남한 국적의 모든 남자가 20개월 동안 군복무를 해야합니다. 따라서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은 취직할 때 혹시 건강이나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세심한 심사가 뒤따를 수도 있고, 특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공직자가 될 경우에는 상당한 비판을 받는 게 사실입니다. 만약 조사결과 일부러 군을 기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물론 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남한에서는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지도층에서는 그런 전통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이며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기도 한 김정일은 군복무를 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종합 대학에 재학시절 두달 간 군대에서 훈련이 받았던 것이 그의 군대 경험의 전부입니다.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한 직후 곧바로 중앙당에 들어가 정치 수업을 받았다는 경력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군복무를 하지 않은 김정일이 군대에서 받은 계급은 '원수'입니다. 즉 김정일은 소장, 중장, 상장, 대장 시절도 없이 곧바로 '원수' 계급장을 단 북한 유일한 인물일 것입니다. 김정일은 또한 북한 군대를 총 지휘하는 국방위원장의 직함도 가지고 있어서 북한 군대에서 최고 위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군대경험이 전혀 없는 김정일을 북한은 시대의 장군이며 전술가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군대에 가서 총 한번 제대로 잡아 본 적도 없는 김정일을 최고의 사격수라고 소개해 왔습니다. 김정일이 취미 생활로 즐기고 있는 사냥 기술이 뛰어나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김정일 일가에서 군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이 김정일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세 아들인 정남, 정철, 정은도 모두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이같은 사실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는커녕 처벌이 두려워 언급도 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의 말입니다.
고영환
: 김정일, 김정남, 김정철 다 군대 안 갔다 왔죠. 옛날에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말을 했던 사람들은 다들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금기사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예 말을 하지 않습니다.
김정일의 장남인 정남의 경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군대에서 계급이 보위부 소속 '대장'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정남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김정일이 계급장과 군복을 선물하며 진급을 시켰다는 설명입니다. 즉 정남의 21번째 생일은 소장, 22번째 생일은 중장, 23번째 생일에는 상장, 24번째 생일에는 대장, 이런 식으로 차례로 선물했다고 전해졌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김정남의 계급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비공식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김정일의 후계자로 유력한 올해 28살의 셋째 아들 정은도 스위스에서 유학한 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에 재학한 후 현재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군대 경험이 전혀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앞으로 정은이 후계 구축 과정에서 군대 장악을 위해 어떤 직함을 받을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몇년 전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자가 전쟁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 파병돼 군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비보도 약속을 어긴 미국의 한 언론사에 의해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해리왕자는 신변 안전의 이유로 즉시 영국으로 귀환해야 했지만 그의 짧은 아프간 복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모범을 보여주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에 비해 대를 이어 군복무를 기피하면서 일반 주민들에게는 10년 군대 복무를 의무로 하고 선군만이 살길이라고 강요하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에게는 적어도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도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