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의 실체] 주목되는 김정남의 운명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2009.10.19
2009.10.19
매주 보내 드리는 ‘김씨 왕조의 실체’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수경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일가와 관련한 소식은 말해서도 들어서도 안되는 일급 비밀입니다.
‘김씨 왕조의 실체’ 시간을 통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는
북한 지도자들의 권력 유지와 사생활 등과 관련한 소식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7월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인 포린 폴리시(FP)가 세계 국가지도자의 아들 가운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골치아픈 아들 5명 가운데 하나로 선정해 화제가 됐습니다.
잡지는 정남을 골치아픈 아들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정남이2001년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도미니카 가짜 여권으로 입국하려다 체포된 사건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김 위원장의 위신을 깎아 내렸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정남은 일본 경찰에게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남이 그 일로 큰 위기를 당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일부의 분석대로 정남은 최근 수년 동안 베이징을 근거지로 해 홍콩, 마카오, 유럽, 동남아 등의 별장과 호텔 등에 머물며 해외를 떠돌았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 위원장의 생일 등 ‘북한 명절’과 기념일에만 평양을 방문했고 그의 평양 체류기간은 길어야 한달을 넘기지 않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정남이 평양을 떠나있는 사이 그의 배다른 동생인 정은은 북한의 유력한 후계자로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후반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정은의 후계자설은 최근들어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들이 보도되면서 더욱 기정사실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고위 외교관 출신으로 남한 통일정책연구소 고영환 연구위원은 셋째 정은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남이 해외를 떠도는 것은 아버지의 신임을 잃고 후계자 경쟁에서도 밀려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영환: 김정일이 과거 권력을 장악하면서 김일성의 다른 아들들을 다 해외로 내보냈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면 일단 사람들을 자꾸 만나고 자기 사람을 심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 바깥에 내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김정남이 해외에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정남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정남은 김 위원장이 1971년 배우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얻은 첫 아들입니다. 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은 김 위원장과 만날 당시 이미 딸 하나를 둔 유부녀였습니다. 성혜림은 김 위원장과 만나면서 남편인 이평과 이혼하고 정남을 낳았지만 김 위원장의 정식 부인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성혜림은 김 위원장이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과 정식 혼인을 하자 그 충격으로 줄곧 우울증과 당뇨 등 병에 시달리다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일찍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자랐던 것처럼 어릴 적부터 생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정남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정남은 어려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대장’ 칭호를 받았으며, 생일 때면 늘 수만달러에 달하는 값비싼 선물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정남과 아버지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1989년 정남이 러시아와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평양에 돌아온 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은 만수대 예술단 출신 무용수인 고영희와 살면서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과 딸의 재롱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남 정남에게 쏟았던 애정이 다른 자식들에게 옮겨간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정남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주 평양을 떠나 마카오에 머물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정남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금도 여전히 평양이 아닌 중국과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7년 일본의 TBS 텔레비전 방송이 정남의 호화로운 마카오 생활을 취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TBS 텔레비전 방송은 정남이 마카오에서 둘째 부인과 자녀, 그리고 경호원과 함께 값비싼 주택에 살며 밤이면 주로 마카오의 카지노나 술집 등 유흥가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정남은 오랜 해외 생활의 영향 탓인지 가끔 해외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해 북한 유일의 자유인, 김삿갓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남은 지난 4월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인 기자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견해를 묻자 유창한 영어로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김정남: 개인적으로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 긴장이 더욱 높아지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점이 매우 걱정됩니다. (I think more tension will be in North Korea and around this country. I'm quite worried about this.)
폐쇄사회인 북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가계에 대한 소식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남의 이러한 언행은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나타내줍니다. 북한의 후계자 문제를 연구해 온 정성장 세종연구소 박사입니다.
정성장: 과거에 스위스나 소련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 북한 주민이나 엘리트와 다르게 자유분방하게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정남이 완전히 후계 구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 8월 중국 관영 언론인 인민일보는 장남인 정남이 여전히 동생인 정은에 비해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민일보는 정남이 2001년 위조 여권 사건으로 후계자에서 멀어지는 듯했지만 계모 고영희의 죽음으로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인민일보는 정남은 노동당 호위총국 요직도 거쳤고 컴퓨터와 정보통신 산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데다 국제정세에도 밝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정남은 현재 노동당 중국재정경리 부부장으로 당의 자금줄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또 북한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사회로 후계자 결정에 있어서 장남의 우선권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7월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인 포린 폴리시(FP)가 세계 국가지도자의 아들 가운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골치아픈 아들 5명 가운데 하나로 선정해 화제가 됐습니다.
잡지는 정남을 골치아픈 아들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정남이2001년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도미니카 가짜 여권으로 입국하려다 체포된 사건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김 위원장의 위신을 깎아 내렸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정남은 일본 경찰에게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남이 그 일로 큰 위기를 당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일부의 분석대로 정남은 최근 수년 동안 베이징을 근거지로 해 홍콩, 마카오, 유럽, 동남아 등의 별장과 호텔 등에 머물며 해외를 떠돌았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 위원장의 생일 등 ‘북한 명절’과 기념일에만 평양을 방문했고 그의 평양 체류기간은 길어야 한달을 넘기지 않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정남이 평양을 떠나있는 사이 그의 배다른 동생인 정은은 북한의 유력한 후계자로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후반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정은의 후계자설은 최근들어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들이 보도되면서 더욱 기정사실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고위 외교관 출신으로 남한 통일정책연구소 고영환 연구위원은 셋째 정은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남이 해외를 떠도는 것은 아버지의 신임을 잃고 후계자 경쟁에서도 밀려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영환: 김정일이 과거 권력을 장악하면서 김일성의 다른 아들들을 다 해외로 내보냈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면 일단 사람들을 자꾸 만나고 자기 사람을 심게 되는 것을 우려해서 바깥에 내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김정남이 해외에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정남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정남은 김 위원장이 1971년 배우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얻은 첫 아들입니다. 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은 김 위원장과 만날 당시 이미 딸 하나를 둔 유부녀였습니다. 성혜림은 김 위원장과 만나면서 남편인 이평과 이혼하고 정남을 낳았지만 김 위원장의 정식 부인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성혜림은 김 위원장이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과 정식 혼인을 하자 그 충격으로 줄곧 우울증과 당뇨 등 병에 시달리다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일찍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자랐던 것처럼 어릴 적부터 생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정남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정남은 어려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대장’ 칭호를 받았으며, 생일 때면 늘 수만달러에 달하는 값비싼 선물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정남과 아버지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1989년 정남이 러시아와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평양에 돌아온 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은 만수대 예술단 출신 무용수인 고영희와 살면서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과 딸의 재롱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남 정남에게 쏟았던 애정이 다른 자식들에게 옮겨간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정남은 1990년대 중반부터 자주 평양을 떠나 마카오에 머물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정남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금도 여전히 평양이 아닌 중국과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7년 일본의 TBS 텔레비전 방송이 정남의 호화로운 마카오 생활을 취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TBS 텔레비전 방송은 정남이 마카오에서 둘째 부인과 자녀, 그리고 경호원과 함께 값비싼 주택에 살며 밤이면 주로 마카오의 카지노나 술집 등 유흥가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정남은 오랜 해외 생활의 영향 탓인지 가끔 해외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해 북한 유일의 자유인, 김삿갓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남은 지난 4월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인 기자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견해를 묻자 유창한 영어로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김정남: 개인적으로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 긴장이 더욱 높아지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점이 매우 걱정됩니다. (I think more tension will be in North Korea and around this country. I'm quite worried about this.)
폐쇄사회인 북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가계에 대한 소식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남의 이러한 언행은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나타내줍니다. 북한의 후계자 문제를 연구해 온 정성장 세종연구소 박사입니다.
정성장: 과거에 스위스나 소련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 북한 주민이나 엘리트와 다르게 자유분방하게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정남이 완전히 후계 구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 8월 중국 관영 언론인 인민일보는 장남인 정남이 여전히 동생인 정은에 비해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민일보는 정남이 2001년 위조 여권 사건으로 후계자에서 멀어지는 듯했지만 계모 고영희의 죽음으로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이같이 주장했습니다. 인민일보는 정남은 노동당 호위총국 요직도 거쳤고 컴퓨터와 정보통신 산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데다 국제정세에도 밝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정남은 현재 노동당 중국재정경리 부부장으로 당의 자금줄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또 북한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사회로 후계자 결정에 있어서 장남의 우선권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