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의 실체] 김정일 비자금 관리인 리철의 퇴장
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2010.03.22
2010.03.22
사진-연합뉴스 제공
18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 본부에서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심사하는 UPR, 즉 보편적 정례검토 최종 보고서가 채택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스위스 주재 북한 대표부의 리철 대사는 이날 회의에 참석해
국제사회가 제기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북한 당국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때로는 조선어로 때로는 유창한 프랑스 어로 ‘북한은 모든 인민이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지난 30년 동안 유엔 무대에서 고립된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쌓은 노련함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리 대사가 어쩌면 이번 13차 유엔 인권이사회를 마지막으로 유엔 무대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 대사는 빠르면 이달 말 이임한다고 지난 10일 남한의 연합뉴스가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네바의 외교 소식통은 리 대사가 교체된다는 소식은 얼마 전부터 제네바 외교가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75살의 리 대사는 고령인 데다가 제네바 주재 각국 외교관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대사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시기상 이임할 때가 되어서 교체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 방송에 전했습니다. 그는 이어 리 대사가 이임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인 것 같다며 다만 언제 이임할 지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리 대사의 이임이 이처럼 언론이나 제네바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다른 나라에 주재한 북한 외교관과는 달리 김정일의 측근 중에 최측근이기 때문입니다.
리 대사는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과 자녀 교육, 그리고 건강까지 챙겨온 핵심 인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김정일의 비자금 관리인, 김정일 일가의 집사, 금고지기 등의 수식어가 뒤따랐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리 대사는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외화 40억 달러를 숨겨두었다는 소문과 관련해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아 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방문연구원은 철저하기 비밀에 가려져 있는 김정일의 비자금과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김정일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리 대사가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광진: 김정일 일가와 굉장히 가까운 관계에 있으니까 여러가지가 가능합니다. 리철과의 대화 내용을 김정일 방침으로 전달한 적도 있습니다. 정책적으로도 김정일이 의견을 듣고 있고 참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김정일과 특별한 관계라면 돈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란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 대사는 또 김정일이 자신의 세아들 정남과 정철, 정은, 그리고 딸 여정까지 리 대사가 대사로 있는 스위스에 유학보내고 뒤를 부탁할 정도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2005년 프랑스의 일간지 르탕(Le Temps)은 김정일의 아들들이 제네바와 베른 등에서 유학할 당시 북한 대사관 소속의 운전기사와 외교관의 자녀로 위장해 학교를 다녔으며 이 과정에서 스위스 대사관이 이들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리 대사는 또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김정일과 그 가족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프랑스 의료진을 접촉하는 핵심 창구 역할도 해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2008년 12월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리 대사는 1991년 당시 고 김일성 주석의 치료를 위해 프랑스 리옹의 심장병 전문의와 접촉하고 이들 의료진을 데리고 방북길에 올랐습니다. 또 2004년 김정일의 네번 째 여자로 정식으로 결혼한 적은 없지만 실질적인 부인 역할을 해온 고영희가 유방암을 치료받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도 리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르 피가로는 2008년 10월 프랑스 의사가 김정일의 뇌졸중을 치료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일도 제네바에서 프랑스 의료진과 연락망을 구축하고 있는 리철 대사의 관여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리 대사는 또 이집트의 통신회사 오라스콤 텔레콤의 지분 투자를 유치해 2008년 12월부터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시작될 수 있도록 했고 평양의 류경호텔 공사 재개와 합작 은행 설립 등 대북 투자유치 관련 사업까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언론에 알려진 리 대사의 역할만 봐도 그가 단순한 외교관 이상의 비중을 가진 인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한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은 이처럼 해외에서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충성했던 인물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데는 후계자 구축을 포함한 내부 사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즉 리 대사가 이임한 후에도 평양 권력구도에서 중요한 임무를 담당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고영환: 이철 대사를 소환하는 걸 보면… 자기가 공부시킨 사람이 지금 후계자가 됐는데, 그 후계자는 자신의 뒤를 봐 준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분명 있을 것이고, 김정일 위원장도 틀림없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후계자와 관련된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합니다.
한편, 리 대사는 김정일이 권력을 확립한 시기인 1980년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공사로 부임해 제네바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 전인 1987년부터 제네바 유엔사무국 상임대표국 대사로 임명됐으며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이후에도 대사직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리 대사는 1998년부터 스위스와 스와질랜드 대사를 겸임했고 2001년부터는 네덜란드와 리히텐슈타인까지 함께 맡아왔습니다. 이번에 리 대사가 이임하면 그의 후임으로 누가 임명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조선어로 때로는 유창한 프랑스 어로 ‘북한은 모든 인민이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지난 30년 동안 유엔 무대에서 고립된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쌓은 노련함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리 대사가 어쩌면 이번 13차 유엔 인권이사회를 마지막으로 유엔 무대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 대사는 빠르면 이달 말 이임한다고 지난 10일 남한의 연합뉴스가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네바의 외교 소식통은 리 대사가 교체된다는 소식은 얼마 전부터 제네바 외교가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75살의 리 대사는 고령인 데다가 제네바 주재 각국 외교관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대사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시기상 이임할 때가 되어서 교체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 방송에 전했습니다. 그는 이어 리 대사가 이임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인 것 같다며 다만 언제 이임할 지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리 대사의 이임이 이처럼 언론이나 제네바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다른 나라에 주재한 북한 외교관과는 달리 김정일의 측근 중에 최측근이기 때문입니다.
리 대사는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과 자녀 교육, 그리고 건강까지 챙겨온 핵심 인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김정일의 비자금 관리인, 김정일 일가의 집사, 금고지기 등의 수식어가 뒤따랐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리 대사는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외화 40억 달러를 숨겨두었다는 소문과 관련해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받아 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방문연구원은 철저하기 비밀에 가려져 있는 김정일의 비자금과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김정일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리 대사가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광진: 김정일 일가와 굉장히 가까운 관계에 있으니까 여러가지가 가능합니다. 리철과의 대화 내용을 김정일 방침으로 전달한 적도 있습니다. 정책적으로도 김정일이 의견을 듣고 있고 참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김정일과 특별한 관계라면 돈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란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 대사는 또 김정일이 자신의 세아들 정남과 정철, 정은, 그리고 딸 여정까지 리 대사가 대사로 있는 스위스에 유학보내고 뒤를 부탁할 정도로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2005년 프랑스의 일간지 르탕(Le Temps)은 김정일의 아들들이 제네바와 베른 등에서 유학할 당시 북한 대사관 소속의 운전기사와 외교관의 자녀로 위장해 학교를 다녔으며 이 과정에서 스위스 대사관이 이들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리 대사는 또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김정일과 그 가족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프랑스 의료진을 접촉하는 핵심 창구 역할도 해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2008년 12월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리 대사는 1991년 당시 고 김일성 주석의 치료를 위해 프랑스 리옹의 심장병 전문의와 접촉하고 이들 의료진을 데리고 방북길에 올랐습니다. 또 2004년 김정일의 네번 째 여자로 정식으로 결혼한 적은 없지만 실질적인 부인 역할을 해온 고영희가 유방암을 치료받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도 리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르 피가로는 2008년 10월 프랑스 의사가 김정일의 뇌졸중을 치료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일도 제네바에서 프랑스 의료진과 연락망을 구축하고 있는 리철 대사의 관여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리 대사는 또 이집트의 통신회사 오라스콤 텔레콤의 지분 투자를 유치해 2008년 12월부터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시작될 수 있도록 했고 평양의 류경호텔 공사 재개와 합작 은행 설립 등 대북 투자유치 관련 사업까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언론에 알려진 리 대사의 역할만 봐도 그가 단순한 외교관 이상의 비중을 가진 인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한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은 이처럼 해외에서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충성했던 인물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데는 후계자 구축을 포함한 내부 사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즉 리 대사가 이임한 후에도 평양 권력구도에서 중요한 임무를 담당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고영환: 이철 대사를 소환하는 걸 보면… 자기가 공부시킨 사람이 지금 후계자가 됐는데, 그 후계자는 자신의 뒤를 봐 준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분명 있을 것이고, 김정일 위원장도 틀림없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후계자와 관련된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합니다.
한편, 리 대사는 김정일이 권력을 확립한 시기인 1980년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공사로 부임해 제네바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 전인 1987년부터 제네바 유엔사무국 상임대표국 대사로 임명됐으며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이후에도 대사직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리 대사는 1998년부터 스위스와 스와질랜드 대사를 겸임했고 2001년부터는 네덜란드와 리히텐슈타인까지 함께 맡아왔습니다. 이번에 리 대사가 이임하면 그의 후임으로 누가 임명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