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깡통을 펴서 만든 허름한 필통. 그 안에 담긴 몽당 연 필 한자루 그곳에서 부터 학생들의 꿈과 희망은 커져갔습니다.
학생들 곁에서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필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과 어려웠던 시절 성공을 꿈꿨던 사람들의 희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필통' 입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미국 워싱턴 인근에 위치한 대형 문구점 형용색색 갖가지 연필에서부터 공책, 컴퓨터, 사무용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 여기있다.
진열장 한 쪽 편에 자리잡은 필통 플라스틱 필통, 봉제 필통. 가볍고 질 좋은 소재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색상과 모양도 가지각색입니다. 이제는 필통 하나도 단순히 연필을 넣고 다니는 기능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수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와요. 디자인도 작고 원색으로 예쁜 것 같구요.
미국에 살고 있는 최선문씨는 10년 전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필통을 잊고 살았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자신이 만든 필통안에 여러 필기도구를 넣고 다니는 것이 좋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지 오랩니다. 그러면서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까지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최선문: 저는 예전에 하드보드지라고 두꺼운 도화지로 필통을 네모낳게 만들어서 연예인 사진을 붙이고 다녔어요. 광택도 나게 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만들면 선생님들이 너무 싫어하셔서 혼내셨던 기억이 나요. 저희 중고등학교 때 유행이었죠.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자리잡은 한 문구회사 이 회사는 27년째 필통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회사를 세운 이수호 대표는 1980년 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철제 필통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한국 전쟁 직후 문구 회사에서 일하다가 일제 시대 때 학교를 다니면서 썼던 철제 필통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올해 나이 77세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의 어려웠던 시절을 겪었지만 그 과정속에서도 필통은 배움을 향한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다고 이수호 대표는 회상합니다. 버려지고 찌그러진 깡통을 망치로 펴고, 적당한 크기로 접어 만든 필통에 몽당 연필 한 자루 넣고 다닌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수호 대표: 깡통을 펴서 만들었어요. 잘라서 펴서 만들었죠. 그때만 해도 지금같이 재료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냥 좋지만… 깡통 자기고 만들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옛날에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었어요. 그 때도 필통은 가지고 다녔죠. 겉에 그림 같은 것은 없고…옛날에는 그림도 없었죠. 깡통이야 뭐… 겉으로 인쇄된 것 아닙니까.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필통속에 잘 깎여진 연필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은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다 다 어려웠던 시절 그 때는 필통이 빈부 차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대구에서 20년 넘게 연필을 만들고 있는 김현길 대표는 필통 하나, 연필 하나도 갖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다 보니 예전처럼 필통과 연필에서 빈부차를 느끼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냐고 반문합니다.
김현길 대표: 요즘은 연필의 소중함을 못 느껴요. 그냥 그림 보고 깎아 쓰고 내버리고…학용품이라는 것이 모든 제품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까 소중함을 모르는 거죠. 예전에 연필 한 타스 사면….한 타스나 사주기나 했습니까? 몇 자루 사줬지. 시대가 발전하니까 학용품 가격이 얼마 안하잖아요. 예전에는 필통, 학용품 하나도 빈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빈부가 차이가 없다니까요.
그렇게 70~80년 대를 거치면서 필통은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필통에 자석을 넣어 쉽게 뚜껑을 여닫을 수 있었던 자석필통. 쉽게 고장이 나긴 했지만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문이 열리고, 연필이 튀어나오고, 서랍장이 열리는 만능 필통도 인기였습니다. 자나 연필깎이가 함께 붙어있고, 구구단까지 그려진 필통을 볼 때면 필통은 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편이었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당시 남자 아이들에게는 로보트 태권브이나 마징가 Z , 여자아이들에게는 만화주인공 캔디나 소공녀가 그려진 필통이 인기였습니다. 필통의 그림은 이제 세월의 흐름속에 또 다른 유행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남한 생활 2년 차인 탈북자 지현아씨 어린 딸과 함께 단 둘이 살고 있는 현아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에게 필통을 사 줄 때 자신이 북한에서 썼던 필통이 떠올랐습니다. 필갑이라고도 불리는 북한의 플라스틱 필통에는 소년 평양궁전 그림에 구급표도 달려 있었습니다. 천편 일률적이고 별다른 특징 없던 북한 필통에 비해 부모님이 중국에서 구해다 준 필통은 다른 학생들의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지현아: 철판으로 된 필통인데 엄청 색깔도 이쁘게 해 놓고, 공주도 왕자도 그려있고, 예쁘게 그림도 그려있고, 북한하고는 다르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우리 학급에서 제가 제일 먼저 썼어요. 우리 학급에서 제가 인민학교 때 그 필갑을 자주 잃어버렸어요. 부러우니까…
남한에 입국에 하나원에서 받은 필통은 재질도 좋고, 색깔도 예뻐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끔 지각을 할까봐 학교 까지 허둥지둥 뛰어갈 때면 필통에 잘 깎아 넣은 연필심이 모두 부러져 버렸던 것도 남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현아: 하나원에 있을 때 필통을 받았는데 너무 좋고 이뻐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최선문: 필통하면 떠 오르는 거요? 예전에는 시험볼 때 책가방을놓고 시험을 봤는데 때로는 필통으로 문제를 가리면서 풀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헌 깡통을 펴서 만든 옛날 필통에서부터 예쁜 그림과 함께 질 좋은 요즘 필통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는 남한 사회의 발전과 함께 그 발전을 이끌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들의 노력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함께 했지만 지금은 책상 서랍 어딘가 깊숙히 넣어 둔 채 잊고 지냈던 필통.
필통에 대한 추억은 다 다르겠지만 지긋이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필통 속의 연필과 함께 키워갔던 꿈과 희망을 그리고 젋은 직장인들은 필통을 볼 때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할 수 있었던 학창시절의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이수호 대표: 너무나 행복하죠. 행복하죠. 그 때는 좋은 거 마음대로 가지고 다닐 수 있나요? 지금은 최 고급으로 만들잖아요.
최선문: 사실 새학기 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공책사고 필통에다 연필 가지런히 하고 다니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는데 지금도 가끔 이렇게 좋은 필통 나온 것 보면 사서 가지고 다니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필기도구를 갖고 다니지 않는 현대인이 많아져 필통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필통 속에 담겼던 학창시절의 꿈과 순수함을 기억하는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남북 문화기행 <필통> 편 이현석의 [학창시절] 들으시면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