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새참-국수가 짜장면으로, 막걸리가 소주로 바뀌어

31일, 남쪽의 들녁에서는 만드리 축제가 있었습니다. 숨가빳던 김매기 철을 마무리하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입니다. 만드리는 만도리의 전라도 사투린데요, 김매기 중에 마지막, 세번째 김매기를 이렇게 부릅니다.
서울-이현주 xallsl@rfa.org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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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 참 끝이 없죠? 허리펼 짬도 없이 일해야하는 모내기가 끝나면 다시 김매기가 있고, 중간 중간 남새 밭 밭일도 해야하구요…

그렇게 쉽지 않은 농사일이여서, 우리 조상들은 힘든 일 끝엔 이런 잔치를 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잔치는 매일 매일 일하는 논밭 옆에서도 있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옆에 논, 앞에 논 함께 모여 한숨 돌리는 새참 시간. 논뚜렁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잔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즘 새참도 참 많이 변했다는데요, 남북 문화 기행 오늘 시간엔 새참 얘기를 해봅니다. 서울에서 이현주 기자가 전합니다.

여름철 농촌의 아침은 경운기가 지나가는 소리로 시작됩니다. 자는 사람 잠도 다 깨울 만큼 요란한 경운기 소리에 논에 물대는 양수기 소리까지. 동이 막 텄는데 농사일에 바쁜 농부들은 벌써 논으로 출동입니다.

여름, 김매기 철이 끝나갑니다. 북쪽도 5월부터 ‘전투’라는 이름까지 붙이면서 가열차게 달려온 농번기가 마무리될 즈음입니다. 때양 볕에서 쭈그려 앉아 하는 세차례의 김매기..정말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함북도 출신인 탈북 방송인 정영 기자의 말입니다.

“ 상당히 제 기억에는 땡볕..6월 10일 정도는 되는 데요 무척 더워요. 땀이 비오듯이 하면서 한줄씩 쭈욱 나가던 기억이 있거든요 북한에는 옥수수밭에 돌맹이가 많은데 이걸 치우다 보면 팔도 아프고 기진해서 옥수수밭 가장 자리에 누워서 허리쉼을 하던 그 생각이 나네요.”

논 일을 하면 아침 먹고 점심 사이, 또 점심먹고 저녁 사이 보통 하루 두번 새참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농번기에는 하루 5끼를 먹었다는 말인데요.. 그만큼 일이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새참을 먹는 풍습도 또 이런 새참에 먹는 음식이며 밥 입에 넣기 전에 고시레 하는 것까지 남북은 같습니다.

점심 전 새참이면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를 찌거나 지짐을 하기도 하고, 저녁 즈음엔 깨를 갈아 넣고 곱게 갈은 콩 국수, 멸치 국물에 호박을 곁들인 잔치 국수가 단골로 나왔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새참 나오는 것보고 분조장의 인심을 논하기도 했는데요.. 정영기자의 말입니다.

“새참을 잘해주는 분조장이 아주 좋은 분조장이죠. 잘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막 거기로 가고 싶어 해요. 새참은 안 주는 분조장 있으면 인색한 사람으로 찍히는 거죠. 고구마 감자 삶은 것 옥수수 뻥튀기 옥수수 가공 음식도 있구요 잘해주면 콩국을 주는 데 그러면 아주 신바람 나죠.” 또 남쪽에선 새참은 술참이라도 합니다. 목도 축이고 힘도 나게 하는 술 한잔이 새참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남쪽 시골엔 동네마다 술을 만들어 파는 양조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참 때면, 아이들이 맡은 몫은 이 양조장에서 한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받아오는 일이었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 젊은 농부, 최재용씨의 말입니다.

“심부름하면 옛날에 그 닷되짜리 큰 막걸리가 있어요. 들어보셨어요? 가서 네 되 달라고 하면 닷 되 막 퍼주고 그러죠. 그럼 그 재미에 막 가고 그랬는데, 인자 아주머니들 막걸리는 사카린을 타서 달달하게 만들구요 아자씨들은 그러면 안 드시고. 아주머니들이 그때는 또 힘들고 그럴때는 한잔씩 그리 드셨어요.”

이 술 때문에 남쪽에서는 새참하면 재밌는 일도 많았습니다. 장난꺼리가 어디 없나 찾는 낙으로 사는 사내 아이들이 막걸리 배달 사고를 자주 냈는데요, 냅다 뛰어오다가 반쯤 엎지르기도 하고 또 어떤 맛인가 한모금 두모금 마시다가 결국은 취해서 새참 먹는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농사를 짓는 김용일 씨의 추억입니다.

“갈적에도 조금씩 먹다가 비면 조금씩 물도 부어주고 양을 채워야 할꺼 아녀… 그래도 가져가면 왜 이렇게 싱겁냐고 다 알지..”


또 이 시절, 어머니들은 술값 아끼려고 집에서 술을 담그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직접 술을 담아 먹는 집이 많아 지자 허가 받고 술을 만들어 파는 양조장에서 밀주를 만든다고 신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집집 마다 갖가지 묘책을 다해 몰래 술을 만드느랴 야단 법석을 떨었던 시절도 있습니다.

새참은 끼니 중간에 간단히 먹어야 하지만, 사실 사람이 많다보면 준비하는 양이 많아 질때도 있습니다.

새참을 맡은 조가 밥을 따로 준비하는 북쪽과는 달리, 남쪽에서는 개인 집에서 준비하거나 동네 몇집에서 함께 준비해야 했는데요, 일손이 많이 필요한 모내기나 김매기를 끝낼 때 쯔음엔 준비해야하는 새참의 양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콩국수를 하나 해도 맺돌에 큰 소쿠리 가득 콩을 갈아야 했고, 마루에 밀가루 반죽하는 어른들의 손길이 바빴습니다.

이럴 땐 아이들은 또 얼마나 신이났는지 모릅니다. 경기도 안성이 고향인 정봉희 씨의 기억입니다.

“옛날에는 국수를 집에서 했지. 방앗간에서 빼지도 않고 아주 그냥 다들 대청 마루 앉아서 국수 밀고 콩 맺돌에 갈고 믹서가 어딧어..완전히 잔치야 잔치. 일하는 사람만 먹는 게 아니라 아줌마들 동네 얘들까지 다 와서 먹었다니까. 아우 그러니까 우리들은 좋지 꽹가리도 뚜들기도 ( 웃음 )”

식구들 밥도 챙기면서 새참 준비도 하고 밭일도 논일도 다 맡아 했던 어머니들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농촌에서 열심히 일해온 어르신들은 지금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에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지 지금은 그런 사람이 어딨어.. . ”

요즘 남쪽 농촌의 풍경은 놀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김매기도 거의 없어졌는데요, 잡풀 자라지 않게 하는 약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또 김매기 뿐 아니라, 모내기는 이앙기라는 기계가 맡고, 병충해를 잡기 위한 농약은 비행기로 하늘에서 뿌리기도 하고 기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가을 추수도 벼를 베고 낱알을 떼는 것도 콤바인이라는 기계로 한꺼번에 해결합니다.

이러니 남쪽의 농촌은 이제 많은 일손은 필요없습니다. 이렇게 기계화 되기도 했지만, 사실 요즘 남쪽 농촌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고 고향을 지키는 것은 거의 노인들입니다.

그래서 새참 먹는 풍경도 바뀠습니다.

논뚜렁 가운데서 갑자기 이런 소리가 난다면 웃음이 날 것 같습니다. 짜장면, 그러니까 춘장에 볶은 면 요리를 배달하는 소립니다. 이렇게 요즘은 새참을 집에서 내오지 않고 그냥 들에서 시켜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종류도 다양해서 맥주에 튀긴 닭을 먹기도 하고 짜장면을 시켜먹기도 하고 컵라면으로 때울 때도 있습니다. 최재용씨의 말입니다.

“ 옛날에 저희 어렸을 때 모내기를 손으로 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땐 새참을 먹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와서 먹었죠 요즘은 짜장면 칼국수 간단한 밥 종류 있자나요 잉 그런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농번기면, 집 부엌이 바쁜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중국 요리점도 덩달아 바쁘다는데요, 전라북도 남원 금지면의 한 중화 요리집 사장의 말입니다. “아 새참..모심굴 때 새참 많이 가요. 요샌 밥을 안하고 다 시켜 먹어요. ( 어떻게 시켜먹어요? ) 아이고 뉘집 논하면 다 알어.. 우리가 27년 되가는 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정신 나갔다고 이런 데서 뭔 장사가 되냐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지.”

그래도 아직도 시골 인심은 그대로여서 짜장면을 먹어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아직도 그런 건 있어요. 짜장면을 시켜고 옆에 계시는 분들까지 같이 시켜서 함께 드시고..간단히 소주하고 음료수 드시는 정도 그 정도..”


어머니가 부지런히 준비한 장떡이며 부침개, 고구마 감자 잘 익은 김치, 막걸리 한 사발 곁들이던 예전 풍경을 생각하면 서운할 정돕니다.

북쪽도 바뀠습니다. 몇년 전 조선 신보에 ‘새참에 에스키모가 유행’ 이라는 기사가 났는데요, 이걸보니 북쪽의 새참에도 새로운 음식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신문은 그렇지만 사실,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쪽의 새참은 이젠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농촌 동원을 나가도 넉넉하게 새참을 제공할 만한 식량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시점으로 이런 새참 제공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정영 기자입니다.

“새참…거의 없어졌어요 지금은. 삼시 끼니도 거르는데 새참 줄 것 있으면 끼니로 대체해주지…끼니 다음에 새참 아니겠어요?”


그래도 북쪽의 협동농장에서 일했던 함북도 출신 김영일 씨는 남쪽에 정착한 뒤에도 농번기에 들어설 즈음이면 예전에 먹던 새참이 기억난다고 합니다. 그럴때마다 시장에서 감자나 호박, 옥수수를 사다가 찌기도 한다는데..맛은 영 틀립니다. “그래요 어쩔때는 옛날 시골에서 새참 먹는 것처럼 생각하고 감자도 하고 호박도 사고 그래요. 그래서 가마에다가 찌어서 먹는데 근데 그 맛이 전혀 안나요. 그래서 내가 얘들 아빠한테 그 때는 이게 정말 맛있었는데 왜 지금은 이 맛이 안 날까 그러는데요..(웃음)”

일을 하고 난 뒤에 먹는 새참의 맛과 같을 리 없습니다.. 또 함께 땀흘리고 일한 동료들이 없이 그냥 먹는 것이여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땅에 다시 가면 그 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고향은 지금도 새참을 넉넉히 준비할 수 없을만큼 식량 사정이 힘듭니다.

저도 새참을 가끔 먹습니다. 제가 먹는 새참은 차 한잔입니다.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3-4시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마시는 물 한잔 차 한잔. 저에겐 이것이 새참입니다. 이렇게 남쪽에선 꼭 들녘이 아니라도 사무실에서 또 공장에서 길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새참의 여유를 갖습니다.

남쪽은 고유가에 원자재 값 상승..경제가 기지개를 펴지 못하는 날들입니다. 북쪽은 올해도 여전히 부족한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놓고 얘기가 오고 갑니다. 살기가 쉽지 않은 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시기를 우리가 잘 넘기고 잘 살기 위해서는 가끔 이렇게 이마에 땀을 식히는 새참의 여유도 가져야 할 것 같은데요.. 이런 여유가 청취자 여러분께 사치가 아니길 바래봅니다.

남북 문화 기행, 새참편 김건모 ‘시장풍경’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작 진행에 이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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